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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27. 2021

생의 마지막 순간에 전하는 행복의 무게

'행복이라는 신기루에 굴복하지 말자'


삶이 그다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가족과는 하루 중 떨어져 있는 시간 더 많다. 각자의 일상이 바쁘니 한 자리에 온전히 모일 시간도 별로 없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조금씩 가족과 흩어지겠지 라는 생각 다. 가정을 꾸리기 전 함께 살던 가족과 시나브로 멀어졌듯이. 엄마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인생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행복했던 순간을 한 번쯤은 떠올렸을까.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


추사 김정희 살아생전 마지막 휘호이다. '최고의 반찬은 두부와 오이, 생강, 나물이며 최고의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그리고 손자를 만나는 것'이란 뜻이다. 본문 옆에 "이것은 촌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다.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 한 큰 황금도장을 차고, 밥상 앞에 시중드는 여인이 수백 명 있다 하더라도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고 기록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언급한 행복은 소소함과 당연함 그 자체였다.


먼저 떠난 엄마는 가족과 함께 보낸 몇 개월 동안 행복했을까. 그럴 겨를이 있었을까. 병세가 깊어진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소박한 반찬만 드셨다. 살림을 합쳤기에 자식, 손자 손녀와 늘 마주했다. 매일이 추사 김정희가 말한 최고의 반찬을 곁들인 최고의 모임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아프기 전에도 "엄마 행복해?"라고 물어본 적 없다. 아픈 다음에는 입에 올리기 어려운 말이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 삶이 그다지 대단치 않다는 걸 깨닫는다. 삶이 덧없고 부질없다는 말은 괜히 생겨난  아닐 것이다. 주말 저녁 가족이 둘러앉아 치킨과 피자를 시켜 먹는 순간에 행복함을 느낀다. 맛 때문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끈이 식탁 주변을 동그랗게 이어주는 느낌 때문이다. 


친구나 직장 동료와 만끽하는 술 한 잔에 정겨움이 담기면 행복이 넘친다. 소소함이 거창함을 능가할 때가 있다. 요즘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 건수 없나 기웃거리며 밖으로 향했던 마음을 집으로 돌려 가족과 행복을 나누는 건 어떨까. 당장은 별게 아닌 거 같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무치게 그리운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행복 따위 별 아니다. 기준 없다. 추운 겨울날 따듯한 이불과 하나 되는 포근함도 일종의 행복이다. 관점을 바꾸는 도 행복을 찾는 지름길이다. 


넷플릭스나 쿠팡플레이 같은 OTT에서 네버엔딩 시리즈를 시청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치부했다. 책 한자를 더 보고 말지라는 허세에 빠진 적도 있다. 휴일에 침대와 소파에 파묻혀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게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 소소하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지천에 널렸다. 고개를 쭈욱 빼고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찾느라 현실의 행복을 놓치고 살아갈 뿐이다.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들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대게 닫힌 문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리를 향해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호스피스 병동을 파라다이스 병동이라고 표현한 엄마의 마음, 병원에 누워 호텔이 따로 없다고 했던 엄마의 말을 행복했던 감정이라 여기고 싶다. 내 마음에 위안을 얹고 싶은 이기적인 욕심도 담겼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는 추사 김정희가 말한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역사 속 그가 마지막에 남긴 휘호는 공허한 마음속에 따스함과 평점심을 채워주었다. 덧없이 흘러가는 삶의 군데군데 머물고 있는 행복을 두고 굳이 멀리서 찾으려고 발버둥 칠 필요 있을까.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들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대게 닫힌 문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리를 향해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가 전하는 지혜의 말이다. 이미 닫힌 문을 불행이라 여기는 것은 지천에 널린 행복을 모두 놓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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