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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May 03. 2022

항상 웃음 띤 얼굴로 말하니까 짜증 낼 일이 없었다

'평생 기억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


2013년 2월, 눈이 지독하게 많이 내리던 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평소 40분이면 다다를 거리를 5시간을 달려왔다. 결혼 전까지 함께 살던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들은 그제야 나타나 상주 노릇을 했다. 가식적인 그 가족의 모습에 화가 치밀었지만, 매사 침착하고도 착한 우리 엄마는 요하지 않 장례를 치렀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어머니를 모셨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는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한 집에 모시고 살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0여 년 동안 엄마는 한 집에서 친정엄마를 돌봤다.


96살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아흔 넘어 양쪽 고관절 골절 수술을 했다. 뒷바라지는 엄마 몫이었다. 고령에 뼈도 약해 수술 후 할머니는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결같이 할머니를 보살폈다.


할머니와 헤어진 엄마는 '엄마랑 싸울 만큼 싸우면서 오랫동안 같이 살아서 후회도 미련도 없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자신이 떠나야 할 날이 다가오자 후회스럽다는 말을 꺼냈다.


"할머니 돌아가실 때 손이라도 한번 잡아드릴 걸. 얘기라도 한마디 더 해줄걸.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네."


엄마는 암 진단을 받자마자 몇몇 옷가지와 그동안 써온 일기장을 다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인생에서 가장 큰 마음의 풍파가 아니었을까 싶다. 살아남은 일기장 한 권을 우연히 발견해 엄마 몰래 집에 가져왔다. 들춰보지 못하고 책상 한편에 고이 간직했다.


엄마가 떠난 후 열어본 일기장에는 엄마의 상념이 가득 담겨있었다. 러 글 사이에 할머니를 보내던 순간의 음이 적혀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일 년 여가 흐른 어느 봄날의 일기. 수목장 한 할머니 무덤가에 개나리를 심고 와서  글다.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글로 적으면서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고이고이 간직했다. 내 엄마의 모든 순간을 담아 남기고 싶었던 내 마음이 바로 우리 엄마의 마음다.


침대에 누워만 사는 엄마는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엄마가 제일 좋아요"라고 하면서. 울 엄마는 말도 노래조로 했다. 항상 웃음 띤 얼굴로 말하니까 엄마에게 짜증 낼 일이 없었다.

돌아가시던 날, 일요일이라 친구랑 목욕탕 가는 날인데, 집에서 각자 하자고 했다. 어쩐지 가고 싶지가 않았다.

빨래하고 씻으려고 하는데, 새벽 6시경. 엄마가 나를 부른다. “엄마, 엄마, 엄마”라고 세 번. "응"하면서 가보니까 엄마 숨소리가 가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동생을 부르니 일하다 바로 달려왔다. 두 시간 동안 몰아 쉬던 숨이 8시에 멈추고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엄마, 엄마, 엄마라고 나를 아니 딸을 마지막 부르고 그러고 떠나셨다. 보고 싶은 우리 엄마.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 모셨다. 봉분도 없이 편편하게.

4월 4일 개나리를 심었다. 엄마 무덤은 개나리가 표시되도록 하려고. 잘 자라 주기만 바란다.

<엄마의 일기 中>


"항상 웃음 띤 얼굴로 말하니까 엄마에게 짜증 낼 일이 없었다"라고 엄마가 남긴 말은 내가 우리 엄마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은 말이다. 몹쓸 병에 걸려 아픈 와중에도 늘 웃음 띤 얼굴로 자식을 대하니 짜증 낼 일이 없었다. 철딱서니 없던 시절에는 왜 그렇게 할머니랑 엄마에게 짜증을 냈는지 모르겠다. 점점 더 선명해지는 쓰디쓴 기억이다.


각박한 삶을 살면서 수시로 무너지고 시커먼 감정이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들곤 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밝은 마음을 떠올린다. 엄마가 남긴 커다란 유산이다. 나보다 100배는 더 힘든 인생을 살았을 엄마는 떠나는 순간까지 모든 사람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늘 웃으며 말해서 짜증 낼 일이 없었다'는 엄마의 착한 마음을 평생 기억하며 배우고 싶다.


엄마가 덤덤하게 할머니를 보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엄마도 남몰래 얼마나 눈물 흘렸을까. 같이 살던 엄마가 떠나 얼마나 적적했을까. 일흔 넘은 엄마가 100살 가까이 살다 간 할머니가 보고 싶다일기를 썼다. 엄마이기 때문이다. 나도 여전히 엄마가 보고 싶다. 좋은 기억만 남기고 떠난 엄마가 너무 고맙고 그립다. 세상 모든 이에게 고맙고도 그리운 존재 바로 엄마다.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 딸에게서 19살에 헤어진 꿈에 그리던 엄마를 보았던 게 아닐까. 2021년 봄, 엄마 건강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면 할머니 무덤에 함께 가기로 했다. 엄마가 정성스레 심은 개나리가 활짝 피었을. 하지만 엄마는 개나리 만개한 친정 엄마의 무덤 가지 못했다. 지금은 이미 할머니를 만나 하늘나라 별장에서 신나게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개나리처럼 활짝 웃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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