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불확실함의 연속이자, 은근한 기대를 산산조각 내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나이 들어도 겁은 줄지 않았다. 씩씩해지거나 강해지지도 않았다. 성격은 여전히 급하다. 마음은 그대로, 몸이 나이에 따라 변해갈 뿐이었다. 인간은 불혹이라는 대격변을 겪고도 쉽게 철들지 않는 존재라는 걸 오늘도 깨닫는 중이다.
팀장이 못마땅할 때, 친구가 열 받게 할 때, 아내랑 다퉜을 때, 아이들 때문에 힘들 때 엄마와 누나한테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편이다. 나이 먹고도 철없이 가족 단톡방에 줄줄이 떠들어 댔다. 그리고 답변이자 결과나 조언, 충고를 기다리곤 했다.
따끔한 충고는 든든한 위로이자 사랑이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엄마는 쿨한 성격이라 별 고민 없이 답을 내려줬다. 누나도 쿨하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답변을 건넨다. 쿨하지 못한 나는 늘 엄마와 누나의 조언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들. 아들과 동생의 내밀하고 치졸한 성격까지 속속들이 알기에 현명한 답변을 내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과는 대부분 뻔하다. 철없는 아들과 동생에게 전하는 따끔한 충고로 마무리된다. 별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걸 반복학습 덕에 나도 잘 안다. 그런데이게 커다란 위로가 된다. 그저 힘들다는 투정을 부리고 따끔한 위로라도 받고 싶기 때문이다. 거창한 조언이나 의미 있는 답변은 필요 없다.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다는 자체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어쩌면 산다는 게 그런 사람 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지. 아프다, 힘들다, 말할 수 있는 사람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네임>에 나오는 대사다. 잠시 화면을 멈추고 받아 적었다. 당연히 떠난 엄마 생각이 났다. 힘들 때 제일 먼저 찾던 사람. 철없는 아들을 끝까지 품어준 엄마. 아들을 잘 알기에 일방적인 감정에 치우지지 않는 위로를 건네던 엄마였다. 이제 엄마는 없다. 아프다 힘들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떠났다.
대학교 4학년 때 모시고 살던 외할머니한테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고 나온 적 있다. 나 자신이 싫고, 할머니한테 미안하고, 속상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울면서 아빠를 찾아갔다. 일종의 고해성사였다. 아빠는 내가 무슨 사고라도 친 줄 알고 화들짝 놀랐지만, 내막을 알고는'찾아와 줘서 고맙다'라고 했다.
운전면허를 갓 땄을 때, 운전에 맛들려 밤마다 안방에서 차키를 훔쳐 아빠 차를 끌고 나갔다. 어느 날 좁은 도로를 지나다 갓길에 주차된 차를 쭈욱 긁어버렸다. 당황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빠에게 전화했다. 아빠는 쏜살같이 달려와 묵묵히 사건을 수습해줬다. 몇 년 뒤, 아프다 힘들다 말할 수 있던 아빠가 곁을 떠났다.
내가 받은 위로를 돌려주는 것이 내 임무가 아닐까.
"어쩌면 산다는 게 그런 사람 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지. 아프다 힘들다 말할 수 있는 사람" 대사 한마디에 잊었던 기억이 줄줄이 딸려 나왔다. 힘들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소중한 두 명이 이젠 곁에 없다. 인생, 알다시피 힘든 일은 점점 더 많아진다. 그렇다고 힘겨운 마음도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부모님께 받은 위로의 기억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 온기를 전할 때도 있다. 남겨진 사람에게 떠난 사람의 기억이 힘이 되기도 한다.
엄마 핸드폰을 이제야 해지했다. 얼마 뒤 엄마 번호를 누군가 사용하게 되었고, 엄마 카톡도 이제는 먹통이다. 예상했지만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날에 대비해 백업해 둔 카톡 내용을 들춰봤다. 2019년부터 엄마와 나눈 대화가 가득했다. 장성한 아들놈 투정이 많기도 하다. "다 그러고 사는 거다"라는 엄마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이제는 엄마 없는 단톡방에 누나와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여전히 누나는 엄마 몫까지 내 얘기를 들어준다. 이 글로나마 슬며시 고마움을 전한다.
드라마 대사 한 줄에 엄마와 아빠를 떠올리고, 이렇게 다시 한번 엄마, 아빠를 글로 각인할 수 있으니 축복이고 행복이다. 이제는 내가 받았던 풍성한 위로를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할 때다. 아프다 힘들다 말할 사람이 필요할지 모르는 가족에게 그리고 나보다 힘든 친구에게. 내게 주어진 작은 임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