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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pr 04. 2022

엄마의 마지막 봄과 아들의 첫 봄

혹독한 겨울을 난 가지에서 씩씩하게 새싹이 피어나듯


주말마다 내달리는 도로 가로수에 새싹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맑은 연둣빛을 뽐내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참 예쁘다. 하루가 다르게 싱그럽게 변해가는 자연을 바라보며 생명력이 참 신비롭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도 오늘도 시간은 아무 거리낌 없다. 눈치도 보지 않고 잘도 흐른다. 어쩌면 시간은 인간에게만 의미가 있는 형벌일지도 모르겠다. 혹독한 겨울을  가지에서 씩씩하게 싹이 피어나듯 엄마도 냉혹한 시련을 견디고 싱그러운 미소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엄마 집으로 출동한다. 아이들은 TV도 실컷 볼 수 있어 좋고, 나는 엄마를 곁에서 실컷 볼 수 있어서 좋다. 특별하게 엄마를 챙기는 건 없다. 같이 밥 먹고 얘기하다 보면 엄마는 금세 피로를 느낀다. 시끄러운 와중에도 방에서 잠을 청한다. 한 공간에서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자체가 서로에게 위안다.


주말 동안 수시로 녹즙을 짜고, 버섯 가루 다. 식단도 주로 맛없는 야채 등 건강식으로 준비한다. 온갖 야채를 짜거나 삶는 나날의 연속이다. 엄마는 약 같다고 말하곤 했다.


가망 없다는 의사 말이 왠지 틀린 것만 같다. 의학을 뒤로 미룬 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각이다. 엄마 혼자 있으면 제대로 챙기지 않으니 주말이라도 엄마를 찾아 함께 병마와 싸운다.


운이 좋게 집 문제도 순식간에 해결됐다. 이제 한 달 정도 지나면 엄마와 살림을 합친다.  그 시간이 한없이 길다. 조금 더 빨리 곁에서 엄마와 마주하고 챙기고 싶지만 얽히고설킨 삶의 복잡함은 쉬운 게 하나 없다.


일요일 아침, 기운 없다는 엄마와 산책을 나갔다. 움직여야 암을 이길 수 있다는 말에 의지해 엄마를 이끌었다. 산에 갈 때도 폴대가 필요 없던 엄마였는데 걷는 게 버거운가 보다. 누가 버린 우산을 집어 들고 지팡이 대신 사용을 했다. 지팡이를 주문하고 엄마를 부축했다.


반만 시골틱한 동네를 천천히 한 시간 가량 돌았다. 군데군데 개나리가 피었고, 듬성듬성 피어 화려하지 않은 벚꽃도 여기저기서 봄기운을 풍겼다. 가라앉은 기분을 업 시켜 사진을 찍으며 아들과 호들갑을 떨다.


엄마는 외진 구석에 핀 초라한 개나리 몇 구루, 볼품없는 벚꽃 나무에도 감동다. 아마 당신 고생하는 동안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구나 하는 한탄이자 감탄일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푸릇푸릇한 가로수를 보며 생각했다. 맛없는 녹즙, 맛없는 반찬, 힘겨운 산책. 엄마를 위한 일인지, 내 욕심인지. 헷갈렸다.


어쩌면 드시고 싶은 거, 하시고 싶은 거 다 드시게 는 게 어떠냐는 아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정답이 없기에,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기에, 오늘도 가슴이 뻥 뚫린 마음으로 하루를 보다.      


집에 와서 아들과 엄마와 꽃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봤다. 엄마가 이렇게 꽃에 감동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 '우리 집 테이블 위 꽃을 보며 곱고 예쁘다고 했었지' 문득 떠올랐다. 은 시간이었지만 엄마 집에 갈 때마다 꽃을 사 갔다.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엄마 일기장에 적혀있던 시. 엄마가 좋아하는 꽃. 김소월의 시 제목 <산유화>는 한자로 山有花이다. 산에 있는 흔한 꽃이란 뜻이다.


평범한 인생을 사는 우리 인생 같아 정겹고도 소중하다. 꽃이 피고 지는 것, 사람이 나고 떠나는 것 모두 자연의 섭리이지만, 바람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못내 아쉬운 인생이라는 생각에 서운하고 서러운 요즘이다.(2021년 4월 4일, 엄마와 함께 맞은 마지막 )


엄마와 함께한 중한 순간을 틈틈이 글로 남겼다.




2021년 4월 4일 오후 1:43 : 토요일 손자 데리고 아들이 와서 어미 간병한다고 동분서주다. 5월 아들네로 들어간다. 한집에서 살잔다. 점점 숨도 가빠지고 힘도 빠지는 게 몇 달이나 버틸까 모르지만, 이사하고 합치기 까지만 하고 내 인생 끝나면 좋겠다. 산책 나가자고 하여 따라나가 보니 개나리에 벚꽃에 봄 꽃이 만발했네 그려. 세월이 참으로 잘도 흐르고 있다. 이 상태로 일 년 더 살면 무엇하며 무의미한 삶을 사느니 일찍 북망산에 가면 좋으련만…     <떠난 엄마의 일기 中>


엄마는 가끔씩 개인 카톡에 자신의 심경을 남겼다. 늘 씩씩하던 엄마의 진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소중하면서도 아프다.


이날 엄마는 2021년 마지막 봄을 보았고, 여름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내다 북망산으로 떠났다. 유독 차가웠던 겨울이 지나고 다시 새 봄이 찾아왔다. 엄마는 아들과 함께한 마지막 봄을 보냈고, 나는 엄마가 없는 첫 봄을 맞았다.





2021년 엄마의 마지막 봄 이야기다. 엄마는 같은 해 8월 떠났다. 글의 힘이 위대함을 새삼 느낀다. 가끔씩 들추는 슬픈 기억이지만, 희미해진 엄마와 함께한 추억이 한 올 한 올 되살아 난다. 세상의 모든 자식이 곁에 있는 엄마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엄마와의 추억이 허무한 눈물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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