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에서 친구들끼리의 대화가 한창이었다. 퇴근길 대화 내용을 훑어봤다. "미워하는 마음 너무 힘들 텐데"라는 말이 눈에 담겼다. 미움 가득한 부부 이야기가 가없이 펼쳐져 있었다.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1도 없는 친구들, 아무리 절친이라도 그저 남 일이다. 싱거운 조언, 위로 아닌 위로가 난무했다.
"헤어질 거 아니면 그냥 살아. 남편이 너를 더 싫어할 수도 있어."
십 대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모두 결혼하고 애 낳고 개인의 삶에 충실했다. 그러다 6-7년 전 친구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우정과 의리라는 명목 하에 결성된 단톡방이다. 명목과는 달리 하루하루 가볍게 증발하는 이야기가 넘친다. 오늘은 웬일로 깨달음을 주는 문장이 몇 개 보였다. 친구들의 막말 대잔치에서 교훈을 건지다니. 놀라우면서도 정겨운 기분이 들었다. 당사자인 A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B: "밉다. 밉다 하면 점점 더 미워지는 거야. 남편 욕 좀 줄여."
C : "미운 게 아니라. 싫은 거겠지. 점점 더 싫어져 그럴수록. 치 떨리게 싫은 거. 내 얘기는 아니고."
A : "사람을 억지로 좋아할 수 없고, 노력으로 싫어할 수도 없는 거지. 스무 살 때 너 따라다니던 S.J 억지로 좋아할 수 있었냐?"
B : "그러네. 끔찍하네. 진짜 싫었어. 걔가 들고 있는 인형도 싫었어. 갑자기 이해되네."
"사람을 억지로 좋아할 수 없고, 노력으로 싫어할 수도 없다"라는 말이 가슴에 들어와 내려앉았다.더불어 엄마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일기장에 적혀있던 글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용서야 말로 사랑의 완성이라고.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랑은 용서하는 것. 나를 해롭게 하는 자를 용서한다는 것이다. 용서야 말로 사랑의 완성이라고. 누구나 받은 상처만큼 보복을 생각하지만 확실한 보복은 그를 용서하는 것이라고. 상처를 받았을지라도 상처 준 자를 용서해 주시길. 나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
<용서는 사랑의 완성>이라는 긴 글을 엄마가 요약해 놓은 거였다. 엄마는 누군가를 용서하고 싶었던 걸까. 누구를 용서해야만 했을까. 엄마는 마음이 너그러워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용서하곤 했다. 미워하는 마음이 더 곤욕이라는 걸 진작에 깨달았던 걸까. 경험과 연습과 노력으로 터득한 것일까.
"미워하는 마음 너무 힘들 텐데"라는 친구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혀 저녁 내내 마음을 흔들었다. 미움 앞에서 많은 사람이 쉽게 무너진다. 자존심이 앞선 증오 때문에 쌍방이 비참해지기도 한다. <용서는 사랑의 완성>이라는 글을 곱씹어 읽었다. 마음이 단단해지고 너그러워짐을 느꼈다.
'소소하고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말자. 쉽게 미워하지 말자. 섣부른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말자. 순간의 분노로 나 자신을 망치지 말자. 넉넉한 마음으로매 순간 용서하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단톡방에 <용서는 사랑의 완성>이라는 글을 공유했다."상처 준 이에게 가장 확실한 보복은 용서하는 것이래. 꼭 기억하자.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