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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31. 2021

엄마의 호강, 호스피스 병동

'엉뚱하게 흐르는 삶의 오묘한 비극과 행복'


하루를 붙잡아. 왜냐하면 믿건 아니든 간에,
여기 있는 각각의 모두가 언젠가 숨쉬기를 멈추고,
차갑게 변해 죽을 거야.


호스피스 병동에 정착한 지 28일째다. 이제는 집만큼 편하다. 내 집 돌아다니듯 병동 곳곳을 어슬렁거린다. 코로나19 사태로 병원 밖을 나갈 수 없으니 자연스러운 자가격리다. 엄마가 머무는 병실 옆방 앞오가다 우연히 38이라는 낯선 숫자를 발견했다.


ㅇㅇ★

38 / M


그동안 병동에는 대부분 50대부터 80대의 환자만 있었다. '30대 젊은이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안을 슬쩍 들여다봤다. 4인 병실에 서른여덟 살 젊은 남자가 홀로 누워있다. 커다란 발이 침대 끝부분에서 넘칠 듯 솟아있었다. 발만 보였지만, 건장했던 남자일 거라고 상상했다. '건장했던'이라고 여긴 건 커다란 발이 너무 앙상했기 때문이다.


휴게실에서 얘기를 들으니 꽤 유명한 축구선수다. 2년 간의 암 투병 끝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3일 뒤 병실 앞 선수 이름표가 사라졌다. 검색해 보니 부고 기사가 떠있다.


삶의 오묘함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장난 같은 비극. 그 누구보다 건강했을 사람이다. 평소 운동은 기본이고 체력단련, 식습관 관리도 철저했을 텐데 왜 이곳까지 왔을까.


병실에 돌아와 곤히 잠든 엄마를 바라봤다. 늙어서 자식 고생 안 시킨다는 다짐으로 건강관리에 철저했던 엄마다. 자전거를 타고, 산을 타고, 춤을 추고, , 반찬, 물까지 신경  마셨는데.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하며 정신 건강도 열심히 챙겼던 엄마. 늘 자신만만하던 엄마.


살림을 합치기 위해 엄마 집을 정리하던 중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대장암, 유방암, 자궁암, 위암 모두 '이상 없음'이라고 적힌 수년간의 결과지가 차곡차곡 모여 있었다. 분한 마음이 끓어올랐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꾸역꾸역 배우는 중이다. 더불어 '사소함에 집착하며 살지 않겠노라' 다짐도 반복했다.


엄마는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호스피스 병동 침대에 누워 껌을 씹고 있다. 회진 돌던 의사가 물었다.


"엄마 비결이 뭐야. 왜 그렇게 행복한 표정이야?"

"그냥 먹고 누워있으니까. 좋네. 호텔 같고. 호강이지."


엄마는 하루하루를 꽈악 붙잡고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외친다. "하루를 붙잡아. 왜냐하면 믿건 아니든 간에, 여기 있는 각각의 모두가 언젠가 숨쉬기를 멈추고, 차갑게 변해 죽을 거야."


삶의 미묘한 현실, 모든 순간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뻔한 진리를 잊을만하면 알려준다. 차갑고 긴박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평범한 말 한마디가 진리가 돼 가슴에 박힌다.


'내가 어쩌다가 이지경이 됐다냐' 절망하던 엄마 모습은 점점 희미해진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장 많이 웃는 사람, 여유 넘치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엉뚱하게 흐르는 삶의 신기한 비극과 행복이다. 말기암 환자의 고유한 표현력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하다. 달관자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아픔조차 관대하게 받아들여 웃음으로 풀어내는 엄마 모습이 아름답다.


의사도 간호사도 엄마가 좋다고 한다. 내 마음도 포근하다. 조금 더 오래 껌을 씹으며 행복하게 미소 짓는 엄마 표정을 보고 싶고, 또 배우고 싶다.(2021년 7월 28일, 엄마와 함께 호스피스 병동에서)



병원에서 엄마와 함께한 순간을 매일 글로 남겼다. 엄마는 결국 떠났지만, 엄마를 잊고 싶지 않았다. 남겨진 사람은 떠난 사람을 추억으로 밖에 만나지 못하니까. "엄니,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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