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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n 11. 2021

내 인생 가장 슬픈 생일

'함박웃음 띤 엄마와 마주한 생일상'


오늘 내 생일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거라는 걸 알아버렸다.


오늘은 내 생일.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도 슬프고 의미 있는 날이다. 15년 전 결혼과 함께 출가 후 처음 엄마와 마주한 생일날이었다. 퇴근하자마자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았다. 가족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다. 눈이 자꾸만 뜨거워져 조마조마했다.


엄마가 누나에게 보낸 "아들 생일은 보고 가야지"라는 카톡이 자꾸 떠올라 감정에 균열이 생겼다. 내년에는 함께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생글생글 웃는 가족 틈에서 자꾸표정이 삐뚤어졌다. 감정을 계속 짓눌렀다.


배터리 방전되듯 점점 약해지는 우리 엄마, 아들 생일상 앞에서 아이들보다 행복한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니 목이 메었다.     




"이제 말기로 보면 됩니다."


엄마에게 폐암 재발과 전이 부위를 상세하게 전하지 말라고 병원 측에 부탁했다. 엄마는 지난해 5월 폐암 3기 수술 후 수개월 간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씩씩하게 마쳤다. 하지만 2개월 뒤 정밀 검사에서 암세포는 다른 쪽 폐와 뼈, 뇌까지 전이돼 있었다. 재발이라기보다는 항암제가 전혀 듣지 않았다는 게 맞다.


"그럼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나요?"

"약을 바꿔서 두 번 정도 치료해 보고 효과가 있으면 더 고…"


엄마가 겪을 항암치료의 괴로움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어쩌면 기적이라는 기대를 품고,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고 싶은 욕심이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다 빠졌던 머리가 다시 나자마자 지독한 치료를 또 시작다. 지옥 같은 두 번의 항암 치료를 마치정밀  검사 결과를 확인한 지난 3월 25일. 의사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신호를 보냈다. 엄마가 모르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배려한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항암 치료는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네… 엄마 잠깐 나가 계세요. 조금만 더 얘기하고 갈게."


태연한 목소리로 엄마를 내보냈다. 악마 같은 암 덩이는 더 커졌다. 3개월 뒤면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갈 정도로 악화될 거라는 말을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사형 선고였다. 여명. '어떻게 이렇게 태연하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지독한 약이 엄마에게는 듣지 않을까' 마음대로 움직이는 얼굴 근육을 마스크에 숨기고 엄마한테 갔다.


"얼마나 더 산데?"


엄마는 태연한 척 미소 지었다. 아는 듯 모르는 듯한 표정.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어쩌면 씩씩한(척하는) 엄마는 운명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내 눈에 엄마는 정신도 육체도 너무 멀쩡했다. 정말 엄마가 중병에 걸렸는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항암치료에 시달리며 체력이 조금 고갈됐을 뿐 내 엄마는 그대로였다.


첫 항암 때는 매일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니며 방사선 치료를 받을 만큼 했다. 두 번째 항암 이후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집에서만 생활했다.


엄마와 합치기로 마음먹었다. 합가에 늘 완고했던 엄마도 마지못해 승낙했다. 바로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하늘이 도왔는지, 양쪽 집 모두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임자가 나타났다.


지난 5월 새로운 곳에서 두 집 살림을 합쳤다. 이제 내가 엄마 주치의다. 온 가족이 함께 부대끼며 아직은  견디고 있다. 엄마 바람대로 아들 생일 상을 마주하면서.




엄마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목이 메는 슬을 반복해서 떠올리기 싫었다. 아고 슬픈 이야기라 그저 외면하고 싶었다. 오늘 엄마와 생일상을 마주하면서 현재이고 현실인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후회가 더 커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 결혼 후 언제 엄마와 생일상을 마주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내 생일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거라는 걸 알아버렸다. 앞으로 더 잊지 못할 일들을 마구마구 만드는 게 주치의이자 아들인 내 임무 아닐까. 오늘부터 엄마 목소리를 틈틈이 녹음하기 시작했다.


내년 생일에도 엄마가 함박웃음을 보이며 생일을 축하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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