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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14. 2020

머리카락 다 빠진 엄마와 1초 동안 마주했습니다

엄마와 아들 사이 서먹한 장벽의 눈물


엄마가 머무는 방에 들어갈 땐 항상 노크를 한다.
응답을 듣고 약 5초 정도 기다린다.


엄마는 항암치료를 마치면 일주일 정도 아들 집에 잡혀있다. 항암 주사도 별거 아니라며, 다 적응했다며 집으로 가겠다는 엄마를 붙잡는다. 자라면서 엄마의 보살핌을 실컷 받았으니 당연히 이제 내 차례다. 


어릴 적부터 딸 같은 아들이었다. 많은 얘기를 나누고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런 엄마와 나 사이 노크라는 장벽이 생긴 건 2차 항암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일반적인 노크는 장벽이 아닌 예의다. 하지만 엄마와 주고받는 노크에는 각별한 의미와 특별한 슬픔이 담겼다.


똑똑


"응, 잠깐만"


엄마가 머무는 방에 들어갈 땐 항상 노크를 한다. 엄마 목소리를 듣고 약 5초 정도 기다린다. 아침 문안차 무심코 문을 열어젖힌 어느 날 머리카락이 다 빠진 엄마를 마주했다. 1초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서로 놀랐고, 눈이 젖어 버렸다. 


막연한 상상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노크와 5초의 기다림은 엄마가 두건을 쓰는 시간이다. 종일 두건을 쓰고 있다가 주무실 때 문을 잠그고 두건을 벗는다. 촉촉한 눈빛을 마주한 그날엄마가 새벽에 화장실에 다녀온 뒤 문 잠그는 걸 깜빡한 날이었다. 엄마는 매일 두건을 고쳐 쓰며 덤덤하게 말한다.


"니들 기겁할까 봐. 그런다"


이 말의 의미는 이미 당신은 기겁을 했다는 뜻이다. 자식들보다 더 충격받았을 엄마의 심경을 과연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항암치료 부작용 중 하나는 탈모였다. 의사는 99.9% 탈모가 진행될 거라고 했다. 모두가 가슴 졸이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2주가 다 되도록 엄마 머리카락은 건재했다. 엄마는 내심 '나는 머리가 안 빠지나 보다'라는 생각했던 거 같다. 스치듯 염색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곧 탈모가 시작됐다.


2주가 지난 어느 주말 엄마 집에 갔을 때 안방 구석에 놓인 봉투를 발견했다. 아이 머리만 한 머리카락이 담겨있었다. 당황스러움과 놀란 마음으로 봉투에 머리카락을 쓸어 담았을 엄마가 떠올라 입술을 물었다. 못 본 척했다. 아들한테 말하기 어려웠는지, 누나가 이미 두건을 보내다.


가족에게 엄마의 탈모는 머리가 빠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건강에 늘 자신 있던 엄마는 주변에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 마음을 헤아려 서둘러 엄마 거처를 옮겼다. 엄마는 친구들에게 관절 수술해서 아들네 집 근처로 이사했다고 둘러댔다. 


많은 사람이 드나들던 엄마 집에는 이제 아들네 식구만 찾아온다. 엄마 친구들은 서운해 하지만 엄마는 말한다. "이 꼴로 어떻게 만나"라고. 머리가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대게 항암치료 후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지나야 머리카락이 회복된다고 한다. 길고도 짧은 기다림이 될 것이다.


어떤 상황도 코에 걸면 불행, 귀에 걸면 행복


어둠이 있으면 이면에는 빛도 존대한다. 엄마가 아프니 엄마 행복이 반짝거린다. 일 년에 몇 번 보지 못하던 손주들과 수시로 만나며 거리감이 없어졌다. 낯설던 할머니 침대에서 같이 뒹구는 모습은 행복 그 자체다. 


엄마가 아프니 19년 전 출가한 딸네 집에서 20여 일을 함께 머물렀다. 남들처럼 딸과 티격태격할 찬스도 얻었다. 아들 집에도 수시로 드나들며 효도할 기회를 주다. 반면 며느리는 바빠졌다. 하지만 든든한 며느리 덕에 온 가족이 끈끈해졌다. 


이로써 또 하나 깨달았다. 어떤 상황도 코에 걸면 불행, 귀에 걸면 행복이라는 걸. '행복한 일을 생각하면 행복해진다'는 작가 데일 카네기 말이 정말 명언다.


엄마가 투병과 탈모로 외부와 잠시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 아들이, 며느리가 손주들이 엄마 친구 노릇을 톡톡히 해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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