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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28. 2020

엄마의 화통한 웃음이 남긴 뭉클한 깨달음

'아픔을, 슬픔을 웃음으로 가릴 수 있다는 사실'


늘 위태로운 마음을 가슴에 품은 탓에
마음껏 기뻐하며 웃지 못했다.


엄마는 지난 5월 폐암 3기 수술을 받았다. 11월까지 4차 항암30회 이상의 방사선 치료를 끝냈다. 가족 모두가 가슴 졸인 7개월 간의 여정이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온 가족이 단합해 병마와 싸웠다. 일상의 평온을 되찾는 중이다.


처음 병 진단을 받았을 때 엄마는 시골로 가고 싶 했다. 우리 집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 반만 시골틱한 곳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다시 새 삶으로 복귀한 엄마는 낯선 환경, 익숙하지 않은 불편한 일상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엄마는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모두가 만에 하나를 외면할 수 없기에 늘 조심을 명심하며 산다. 족과도 자주 만나지 못한다. 병과의 싸움이 끝나니 적적함과 외로움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지만 씩씩한 엄마는 늘 바빴던 일상에서 벗어나 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최근 아이들과 엄마 집을 찾았다. 엄마는 항암 치료 부작용 탈모로 수개월 동안 모자를 쓰고 다. 털모자 사이로 하얀 머리칼이 져나온 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엄마, 머리  자랐?"

"그럼 많이 자랐지!"


우연히 맨머리 엄마를 마주하고 눈물 흘린 경험이 있기에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는 갑자기 모자를 훌렁 벗었다. 짧게 자 흰 머리카락이 엄마 머리를 살었다. '이 들면 흰머리만 자라는구나' 뭉클했다. 엄마가 큰 병과 사투 중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시니어 모델 헤어스 같?"라며 방긋 웃었지만, 이놈의 사십춘기. 목에서 무언가 올라온다.


아이들과 하루 밤 묵으며 엄마와 오랜만에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아 아이들은 할머니를 더 자주 만나게 됐고, 할머니는 아이들 일상에 금세 스며들었다. 허물없이 내 엄마를 대하는 모습이 늘 짠하고 뭇하고 고맙다.


돌아오기 전 엄마가 치킨을 시켜줬다. 아이들과 만찬을 즐기는 중 엄마가 박장대소했다. 오랜만이었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만들어낸 웃음이었다. 잊었던 소리였다.


순간 '아, 우리 엄마  많?'라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많이 웃다. 학생 때 엄마와 함께 웃다가 눈물까지 흘리던 절이 기억났다. 닮고 싶을 만큼 기분 좋은 소리였고 보기 좋은 얼굴이었다. 그런 엄마의 호탕했던 웃음소리가 낯설었다. 또 한 번 울컥했다.


병마와 싸운 7개월의 여정으로 모두가 평온을 되찾았지만, 가족은 여전히 살얼음 위를 걷는다. 큰 산을 넘었는데도 늘 위태로운 마음을 가슴에 품은 탓에 마음껏 기뻐하며 웃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되찾은 일상지만 전히 마음은 조심스다.


아이들 덕에 웃음꽃이라는 훈훈한 여운을 엄마 집에 남기고 돌아왔다. 누나랑 있는 단톡방에 엄마가 메시지를 남겼다.


"애들 때문에 한바탕 턱 빠지게 웃었다."


침울함이 일상을 잠식했다. 웃을 일 하나 없는 요즘이라는 시대. 나 역시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건강해진 기분이었다. 나게 으니 상쾌했다. 잠시나마 행복했다.


하루가 다르게 늙는 엄마를 보면 매 순간 뭉클하다. 항상 그대로일 것만 같았던 엄마가 난생처음 보는 흰머리 뒤집어쓴 모습이 슬다. 하지만 엄마가 아픈 덕에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애틋한 마음이 무럭무럭 자란다.


모든 그늘의 이면에는 밝음이 존재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웃음이 말라붙은 요즘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강력한 웃음 바이러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픔을, 슬픔을 호탕한 웃음으로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행복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라는 말을 십분 체감한 따듯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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