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Nov 04. 2021

자식이 하나라도 덜 해야 할 일

'비겁해지지 않는 방법'


 있잖아,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제목이 '암 전이'였다. 신속하게 클릭했다. 사회초년생 직장인이 올린 글이었다. 아빠의 암이 재발했고, 아빠가 서울에 올라와 치료받는 동안 자신의 집에 머문다고 했다는 내용.


엄마가 암투병 중이기에 마음이 동했다. 계속 읽어 내려갔다. 보통 암 환우 가족끼리는 공감하는 마음을 위로건넨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회에 나와 자리를 잡지도 못했는데, 눈치 보여 죽겠는데 왜 하필 이때 아픈지 슬프기보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고 했다. 서울에 와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간병할 수도 없는데, 왜 좁아터진 내 집에 들어오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병수발 들 생각이 없다는 결론. 내 삶도 힘든데 자꾸 날 죽이는 일들만 일어난다는 분노 가득한 글이었다.


글 한편으로 얽히고설킨 가족 간 내막을 알 수 없다. 가정에서 그 아빠의 입지, 가족 간의 유대 관계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부정할 수 없는 둘의 관계다. 피할 수 없는 가족이라는 끈. 어느 누구도 슬쩍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의 고리.


어쩌면 아빠의 투병보다 직장 일이 더 급한, 살얼음 위에 놓인 사회초년생의 일회성 넋두리였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 하는 현실이 버거워 부린 역설적인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같은 글의 결말은 알 수 없다. 회사 일이 밀렸다는 무미건조한 얘기로 끝난다.


상황에 나를 대입해 봤다. 아빠 입장, 자식 입장에서 모두 슬픈 일이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한 직장에 15년 정도 다 상황이라 눈치 안 보고 실컷 휴가를 내 엄마 곁에 머물렀다. 여차하면 가족 돌봄 휴가를 내고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있을 생각도 했다.


사회초년생이었다면 어땠을까? 큰 시험을 앞뒀다면, 당장 딸린 가족 생계가 걸렸다면 나 역시 원망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원망은 결국 후회로 남아 평생 내 주변을 맴돌 거라는 것쯤은 안다.


영화 <올드보이>에 "있잖아,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라는 대사가 나온다. 불필요한 상상력,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으로 소중한 현실을 쉬이 내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회 없는 삶은 없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그런데 부모라는 인물은 사라진 후 더욱 빛나며 가슴을 파고드는 보물이 된다. 아빠가 떠난 후 깨달았고, 15년 후 엄마가  병마와 싸우두배로 가이 아다.


후회하지 않을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후회할 일을 단 하나도 덜 했으면 좋겠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건 부질없고 무모할 뿐이다.(2021년 7월 29일, 엄마와 함께 병원에 있을 때 쓴 글)



이전 09화 내 인생 가장 슬픈 생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