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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n 16. 2020

전세 역전, 아들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인생은 참 얄궂으니 효도는 선불제여야 한다'


감회憾悔 : 한탄하고 뉘우침


엄마는 새벽에 깨면 가끔 내 방에 들어와 이불을 고쳐 덮어줬다. 공부한다고 깨워달라면 새벽에도 반드시 깨웠다. 아침에도 학교 가라고 남매의 몸을 연신 흔들었다. 매일 아침 식사도 챙겼다. 새벽에 출출하다면 라면도 끓여줬다.


누나와 내가 아프면 더 아파했다. 결혼 전까지 아침마다 물 한 컵을 내 입에 붓고, 연이어 과일을 쑤셔 넣었다. 건강에 좋다는 이유에서다. 비몽사몽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엄마가 반복하던 일상은 직장인들이 는 일보다 까다롭고 귀찮은 일이었다.


당연한 세월은 무서운 줄 모르고 잘도 흘렀다. 그 흐름에 자식을 위한 부모의 치열한 삶과 고난한 인생이 함께 묻혀 버렸다. 오랜 세월 잊고 있을 때 즈음. 고맙게도 세월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만드는 일을 벌인다. 직접 보고, 듣고, 겪으면서 깨닫게 하고, 감당하기 벅찬 상처로 가슴에 사무치게도 한다.


엄마가 큰 병에 걸려 아픈 모습을 지켜볼 때, 아빠가 하루아침에 비명횡사했을 때가 그랬다. 예기치 못한 사건은 까맣던 기억을 수시로 소환한다. 특히 부모가 돼 내 부모가 겪었던 일을 반복하면 부모 자식 사이의 문이 스르륵 열린다. 부모 자식 간 어긋났던 세월의 조각이 서서히 제 자리를 찾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세월의 뜻에 따라 난 아저씨가 됐다. 수시로 드잡이 하던 누나는 아줌마다. 슬프지만 아빠는 고인이, 엄마는 할머니가 됐다. 동시에 엄마의 신체 메커니즘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부조화를 일으켰다. 자식 뒷바라지에서 시작된 고난은 축난 건강으로 귀결됐다.


이제 내 차례가 왔다. 보답해야 할. 자식이 부모를 챙기는 건, AI가 자동으로 제 역할을 수행하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효도라는 말로 포장하면 안 된다. 당연한 일이니까, 당연하게 이뤄져야 하는, 당연한 기회일 뿐이다.


세월의 단계별로 엄마를 대하는 마음은 늘 새롭다. 세월이라는 스승이 시나브로 엄마 마음속에 나를 집어넣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늘어나는 나이만큼 애틋한 마음도 커진다. 엄마의 선명한 주름과 빠져나가는 칼슘, 건강 악화보다 서글픈 건강했던 마음이 점점 시들어 갈 때다.


엄마는 폐암 수술을 하고 2주간 입원하고, 열흘간 우리 집에 머물렀다. 살을 째고 폐를 도려 냈으니 그 아픔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저 고통을 참으며 수시로 찌그러지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음 소리 때문에 쪼그려 자는 아들이 잠 못 잘까 봐, 한 밤중이 돼서 병실에 들어오는 엄마다.


건강에는 늘 자신만만했던 사람이었다. 병들어 자식들 힘들 게 안 한다며 수십 년 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아프니 가족은 놀랐고, 본인에게는 충격이었다.


씩씩한 엄마는 큰 수술을 잘 이겨 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약해졌다. 항암 치료가 무섭다고, 방사선 치료를 버틸 수 있을까라며 겁을 낸다. 노인네 하나가 아들, 딸, 며느리까지 극기 훈련시킨다며 미안해한다. 자식은 당연한 일을 하는데 엄마 마음은 힘들기만 하다. 우리는 엄마를 종처럼 부리면서도 하나도 안 미안해하며 살았. 그래서 마음이 더 요동친다.


엄마랑 3주 넘게 붙어 지내면서 새벽녘 엄마가 걷어 찬 이불을 여러 번 덮어줬다. 쌔근쌔근 잠든 모습이 자식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아침에 녹즙을 짜서 챙기고, 십 수년 만에 아들과 마주 앉아 며느리가 차려주는 아침밥도 실컷 먹었다.


엄마는 평생을 안팎에서 일하면서 지금껏 누군가가 차려준 밥을 먹지 못했다. 여든 가까이 돼 몸이 아프니 아침 식사를 대접받고, 산책도 함께 가고, 가족이 살갑게 대하기 시작했다. 아프다.


엄마가 그랬다. "얼마 전에 '내 인생 참 무탈하다'라고 생각했는데... 화근이 됐네."   


아들이 답했다. "자식들한테 정신 차리고 엄마한테 효도 좀 하라는 하늘의 뜻 아니겠어?"


엄마를 생각하면 늘 짠했다.


'엄마는 고생을 먹고, 희망을 품고, 고난에 맞서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 아닐까'


대부분의 자식이 엄마를 생각하면 울컥한다고 말한다. 그 말을 한 순간부터 울컥하지 않게 잘하는 게 맞다. 인생은 참 얄궂으니 효도는 선불제여야 한다.


감회憾悔 : 한탄하고 뉘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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