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수술 날이다. 휴가 시작부터 엄마와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렸다. 처음에는 한쪽 무릎 관절 수술을 위한 가벼운 방문이었다. 그런데 정형외과 진료가 호흡기 내과 진료로 번지더니 결국 흉부외과 수술대 위에서 멈췄다.
암 수술 후 4일 후면 나는 33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향해야 한다. 병마와의 싸움은 이제 시작인데, 큰 수술한 엄마를 두고 출근한다. 코로나19 덕에 병실에서 벗어나면 면회도 할 수 없다. 곁에서 지키면서 챙겨야 함이 마땅한데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이라는 현실의 족쇄에 묶여버렸다. 입에서는 '회사 가기 싫다', '그만두고 싶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줄줄 흘렀다.
나 하나 없어도 그만인 회사에 꾸역꾸역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을 것 같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복잡한 심경으로 휴가 마지막 주를 보내는 중이다. 현대인의 숙명, 직장인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의 무거움이 너무 크다. 선택권은 나에게 있는데 쉽게 굴복하는 내가 초라하기 그지없다. 수단 방법을 잘 활용해 이겨낼 거지만, 지금 내 심경은 비참 그 자체다.
휴가 기간 동안 엄마도 나도 아내도 바빴다. 엄마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차 안과 병원에서 보냈다. 회사에 나가면서 시어머니와 남편, 아이까지 챙기는 아내도 가장의 무거움을 나눠가졌다. 단순 검사에서부터 수술하기까지 20여 일의 피 말리는 시간을 가족이 함께 감내했다. 모든 걸 알면서도 입에서는 자꾸 걱정과 근심, 고민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가장 큰 불편함은 멋대로 할 수 없는 출근이었다.
회사 가기 싫다는 말을 며칠 묵묵히 들어주던 아내가 한마디 내밀었다.
"회사에서 승진한 덕에 한 달 휴가를 받았고, 그때 맞춰서 어머니 무릎 수술하려다 큰 병 발견한 거고. 관절 수술은 원래 코로나 지나고 연말에 하려던 거잖아. 회사에 고마워해야지."
<이미지 출처 : pixabay>
맞는 말이었다. 단순한 논리인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비참하다는 생각에 심취해 비관의 늪에서만 헤매고 있었다. 지옥 같던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정작 내 상황을 1도 모르는 회사에 대한 시커먼 마음도 조금 가셨다. 웃기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흔해 빠진 말에 심드렁했던 마음이 갑자기 심대해졌다.
오늘 엄마가 수술한다. 암이라는 말에 좌절했고, 초기라는 말에 감사했다. 정밀 검사 후 3기라 수술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에 좌절했다. 조직 검사 후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에 감사했다. 아픈 엄마를 뒤로하고 출근해야 하는 현실에 좌절했다. 하지만 회사가 아니었다면 엄마의 병을 키웠을 거라는 아내의 말에 마음이 바뀌었다. 뒤죽박죽 황황했던 마음이 이제야 조금 안정세로 돌아섰다. 나를 겹겹이 얽맨 족쇄가 느슨해진 느낌이다.
시커멓고 불편한 내 마음을 아내가 해체해 감사를 담아 조립해 주었다. 덕분에 피할 수 없는 현실에 안정을 곁들여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때로는 이렇게 단순한 진리가 커다란 위안이 된다. 놀랍다. 감사한다.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