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4년, 공무원 대상 강의를 했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니 별의별 일이 다 생기네요

by 이드id


글을 쓰면서 가장 커다란 사건은 강의 요청을 받은 일이다. 책 한 권 출간하지 않은 사람에게 강의 요청이라니. 당시 파워블로거의 '파워'가 실로 대단했다는 증거다. 블로그 운영 4년 만에 강사 데뷔전을 치렀으니 말이다.


2010년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포스팅을 발행했다. 주제는 내가 오감으로 체험 중인 직장생활 이야기였다. (글을 쓴 지 14년인데 직장에서 날아다니는 소재는 끝이 없습니다)


한 분야의 글을 수년간 썼다. 종종 기업 블로그나 사보 등에 실을 직장생활 관련 원고 요청이 들어왔다. 부담 없이 청탁 쓰기를 즐겼는데, 난데없는 강의 요청은 '놀람' 그 자체였다.


어느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 교육담당자의 메일을 받았다.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을 토대로 <직장생활과 자기계발>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7급 이하 공무원 50~60명을 대상으로 한 2시간짜리 강의였다. 그것도 무려 3회. 강의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무대 공포증이 있어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 망신당할 자신밖에 없었다.


기회라는 걸 잘 알지만, 극도의 스트레스를 수반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칼에 거절했다. 승낙한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대타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한 작가를 섭외했는데 펑크가 났다는 거다. 시간이 촉박해 직장생활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를 택했다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만큼 기대가 덜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20여 일의 준비 기간이 주어졌다. 강의 관련 책 2권을 사서 주말에 단숨에 읽었다. 이론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작정 스피치 학원에 찾아갔다. 상황을 설명하고 속성 교육을 부탁했다. 받을 예정인 강의료가 약 100만원이었는데, 시작도 전에 학원비로 반 정도를 썼다. 그만큼 잘하고 싶었고 절박했다.


학원 강사님이 영화 <킹스 스피치>의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처럼 보였다.


"효과를 보시려면 저를 믿고 따라야 해요."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따라 했다.


퇴근 후 스피치학원에 들렀고, 집에 가서는 강의 자료를 만들었다. 주말에는 자료를 정리하고, 강의 연습을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떨리는 시간을 보냈다. 그 대단한 스티브 잡스도 중요한 PT에 앞서 수십 번 리허설을 했다니 나는 천 번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강의 내용은 블로그에 썼던 자기계발 글을 토대로 준비했다. 여름휴가는 강의 연습에 바쳤다. 학원 강사님 코칭대로 열심히 배웠고, (강사님이 팁을 줘) 강의 시간에 나눠줄 선물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첫 강의 날, 생각보다 넓은 대강당에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도면밀하게 준비한 청심원 한 병을 원샷했다. 그리고 60여 명 앞에 섰다. '이젠 피할 수 없다'는 생각, 될 대로 되어야만 했다. 첫 강의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실수해도 마음을 활짝 열고 경청해 달라고 포문을 열었다.


넉살 좋게는 못했다. 하지만 스타벅스 카드, 패션 양말, 선크림, 비비크림 등 선물을 마구 남발하니 좋아했다. 준비한 만큼, 연습한 만큼 최선을 다해 인생 첫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두 시간이 참 짧았다.


동일한 강의를 3번 하니까 점점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첫 강의를 마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 담당 주무관은 "죄송한데 교육생이 중복이 되니 두 번째 강의 내용은 바꿔 주세요"라고 했다.


일주일 만에 또 다른 강의 내용을 준비해야 했다. 내용을 바꾼 두 번째 강의도 세 번째 강의도 (내 기준에서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강의의 질을 떠나 강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180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완수했다는 사실이 더없이 뿌듯했다.


스피치 학원비에, 선물 남발에 남는 강의료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글쓰기에서 비롯한 인생 첫 강의는 무엇보다 나를 한 단계 성장하게 한 도전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글 쓰는 사람이 되었고, 어느 순간 강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족이지만,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번째 강의 쉬는 시간에 한 청년이 다가와 물었다.


"강사님처럼 남 앞에서 말을 잘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저는 남 앞에서 말을 잘 못해요."


말도 안 되는 기분 좋은 말을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제가 다닌 학원입니다." 스피치 학원 이름을 적어주었다.


블로그를 통한 '첫 강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면서 다시는 느끼지 못할 가장 가슴 벅차고, 자신감이 넘쳤던 순간 아니었나 싶다.


첫 강의를 발판 삼아 가끔씩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내 인생에서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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