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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Dec 10. 2019

나의 자존심, 나의 영어 인생

나는 그런 영어 배운 적이 없는데요 ?

중학교 1학년 때 였다. 학교를 다녀온 나는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엄마, 왜 친구들은 다 영어를 잘하는 거야?” 중학교 1학년 때 교과과정의 영어라고 해보았자,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정도 였으리라 짐작된다. 중학교 입학 첫 영어수업 시간, 친구들은 다 아는 것을 나는 몰라서 나는 너무 창피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엄마가 내 생애 최초의 사교육 “윤선생 파닉스”를 시켜주었다.

대학에 들어가, 친구들이 하나 둘씩 휴학을 하고 해외연수를 갔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집안 사정을 아는 나는, 차마 보내달라고 철없이 말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네가 학교에서 교환학생에 선발되면 보내주도록 해볼께” 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원서를 무리 없이 쫓아가긴 했지만, 나는 토플/토익은 쳐본적도 없었고 인터뷰를 위한 회화는 더욱 자신이 없는 토종 한국인이었다. 학원에 가봤지만 1대 다수의 시스템이 단기간에 큰 도움을 주진 못했다. 무기력한 나는 실패했다. 스스로 공부해서 길을 개척하는 훌륭한 토종한국인 후배들도 많지만, 나는 그렇게 훌륭하지 못했다.

졸업을 앞두고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고학력 고스펙자들이 많은 전쟁터 같은 청년 구직시장. 외국계 엘레베이터 회사의 인터뷰 기회를 운좋게 얻었고, 나는 그 날을 또렷히 기억한다.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앞 커다란 창문이 있는 멋진 회의실이었다. 서너명의 면접관들이 짙은 양복을 입고 앉아 있었고, 나를 포함한 5명의 지원자들은 잔뜩 긴장된 모습으로 나란히 면접관을 바라보고 앉았다. 첫 질문은,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하라는 것이었다. 내 앞의 후보자들이 열심히 진땀을 뻘뻘 흘리며 영어 자기 소개를 할 때, 나의 심장은 미친듯이 고동쳤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저는 영어를  못합니다. 하지만 업무에 필요하다면 빨리 배울  있고 다른 업무들을 잘할 자신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참말로 대책 없는 인간 이었다. 너무 기본적인 준비도 안된 나. 못하더라도 대충 외워서 갈 수는 있었자나. 뭔가 외우기는 했던 것 같지만, 편안하게 내 언어로 말할 자신이 전혀 없었고 잘하지 못할 것이면 그냥 하지 말자 하고 나는 포기했던 것 같다. 면접에 들어가기 전 항상 운에 나를 맡겼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내면에 지독히도 삐딱한 반감이 있었다. 아빠의 친구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비슷한 또래의 딸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던 우리들,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며 우리는 서로 다른 인생을 갔다. 그들은 해외의 인터스쿨에 다니며 가끔 한국에 들어와 만날 때면 유창한 영어로 내 기를 죽였다. 나는 우리 나라 교육 과정에 성실히 임해왔다. 최상위권은 아니었어도, 학교에서 하란 대로 열심히 공부하며 나름  살아왔단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업무를 수행할  있는 유창한 영어실력을 요구하는  사회가 정말 싫고 이해가 안되었다. 한국의 직장에서 제대로 일하고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 그렇게 “유창한 영어실력 중요했으면, 그렇게   있는 교육과정을 넣어야   아닌가? 너무 불공평한  아니야  아무도 몰라주는 나만의 속끓는 반감.

한국에 지난 초중고대학 교육 과정, 총 20여년을 거치면서, 유창한 영어를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기회 및 교육환경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사교육이나 해외연수 등의 기회를 찾아 (쉽게 해외 교육 과정에 노출된 자들보다) 처절하고 힘들게 노력해서 영어를 잘하게 된다   그들보다 후진 발음과 실력일텐데, 그렇게까지 내가 해야 하나? 괜시리 자존심이 상했다. 구직자 신세에 자존심이나 따지고 있다니 부모님이 들으면 배가 불렀다 하겠지만, 그 당시 나는 그랬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10년째 해외 노동자가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어로 회의를 진행하는 글로벌 리더로 살고 있다.

그리고 내 자녀에게 내가 겪은 그 대물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해외노동자로 버티고 버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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