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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Dec 14. 2019

나의 임신이야기 (3) 오늘 수술 해야 합니다

임신 31주. 우리는 분리되어야 둘다 살 수 있다

(전편에 이어)


난생 처음 타보는 구급차. 119 아저씨들이 나를 들것에 실어 옮긴다. "나 걸어갈수 있는데.... 구지..? " 내 정신은 내가 온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위중한 환자에 속했다. 구급차가 지나가며 사이렌을 울리고 길을 양보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쉬지 않고 달려 5-7분 남짓 새로운 병원에 도착했다. 작은 규모의 오래된 중형 병원이지만 나름 출산 및 신생아 케어에 특화된 병원이었다. 이번엔 절대 긴장하지 말고 새로운 병원에서   보내보자 하며 긍정의 기운을 마구마구 북돋고 있던 중이었다.

태양의 후예 송중기가 총에 맞았을 때 들것에 실려 이송되듯한 속도로, 구급대원 아저씨들이 달렸다. 음, 이건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가 아닌데? 뭔가 잘못 전달받으셨나.... 나는 조용히 새로운 icu병실에 다시 이동되 누울 줄 알았는데...

 날은 임신 31주째가 되던 .

(그렇다 입원 후 고작 5-6일을 버텼을 뿐)

순식간에 7-8명의 의료진들이 나를 둘러싸더니 각종 검사를 시작했다. 갑자기 바지를 후루룩 내리더니 양수가 어떻다느니 초음파에 아기가 어떻다드니, 이런 저런 정보들을 긴급하게 서로 주고 받았다. "저기요, 저 의식이 멀쩡하거든요, 예의를 좀 차려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들에겐   맞은 응급환자와 다름 없었으니, 예의 따윈. 그와 동시에 나의 새로운 세번째 주치의가 등장했다. 이런 저런 내용을 보고 듣더니 그는 남편을 들어오라고 했다. 철렁.

"오늘 수술하시기를 추천합니다"  
"저는 여기 병원에서 바로 수술할 줄은 모르고 여기 왔는데요.......  아직 안되요. 아기가 아직 너무 어리고 작자나요. 하루라도  버텨보고 싶어요"
"주말이 되면 NICU 소아과 전문의나 간호 인력도 적어지고, 아기에게 무슨 일이 혹시 있더라도 바로바로 대처하기 어려울 수가 있어요. 지금 상태로는 버텨도 하루이틀입니다. 혈압이 너무 높아요"

지당하신 말씀. 모두 다 논리적으로 매우 옳은 말씀이다. 남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남편이 입을 뗐다.

"선생님, 저희가 논의를 좀 해볼께요"
"네 오후 5시 전에 알려주세요" (현재시각 4시 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저 운명의 때가 왔구나. 우리의 신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자. 나는 이미 정신줄을 놓은지 오래였고, 일사천리로 모든게 통제불능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그저 넋을 놓았다. 남편이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 엄마로 말하자면, 의료계에 나름 오랫동안 종사하신 강인한 여성으로, 이런 위기의 순간에 사위에게 이런 부탁을 하셨다.

"흉터  남게 가로 절개해달라고 . 세로절개 하지 말고"

그 말 곧이 곧대로 의사선생님에게 전달한 귀여운 남편. 선생님 표정이 묘하다. 울고 불며 수술 안한다더니 가로세로 따지는 한국인 부부?

"아기가 위험하지 않게 바로 꺼내야 합니다. 가로 절개는 아이에게 위험부담이 있어요"

"네, 세로든 가로든 애만 살려주세요"

출산을 경험해보신 분들은 다 알겠지만, 고통과 두려움에 앞서 이런저런 수치심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거의 벌거벗겨진  같은 느낌. 구멍  뚫린 수술복과 어디가 어떻게 지금 노출된 상태인지  모르는 통제불능 상황은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인 우리를  긴장되게 했다. 불안함에 눈물만 뚝뚝 흘리는 나. 나와 다른 문화와 국적을 가진 의료진들. 그날 처음 만난 간호사샘 오ㅇㅇ은 걱정 말라며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고마웠다. 아기가 제발제발 크게 울어주기를 기도하며, 나는 그 손을 꼭 쥐고 놓지 못했다.

아직 뱃속에서 실컷 놀아야   아가가 세상에 일찍 나왔다. 임신 31, 1.19 키로. 너무나도 너무나도 갸냘픈 몸이었지만, 우렁찬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인사해주었다.

안녕 아가야?

엄마에게 와주어 고마워

엄마가 부족해서...

우리는 서로 분리되어야 서로 살수가 있대.

미안해 너를 더 오랫동안 품어주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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