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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Dec 15. 2019

나의 임신이야기 (4) 니큐의 희노애락

임신 31주, 아기와 만나다

(전편에서 이어짐)


나는 출산 이틀 후에야 아가를 정식으로 만날 수 있었다. 혈압이 떨어지는데 꾀 시간이 필요했고, 폐까지 들어찬 물은 호흡을 힘들게 만들었다. 산소호흡기로 이틀을 보내야 했다.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살아왔던 삶이, 하루 아침에 하루 왠 종일 천장만 바라 보며 슬픈 시나리오를 쓰고 있게 되었다. 내 모습이 참 새로웠다. 매우 친밀했다고 믿었던 나의 신에게 "저한테  그러셨나요" 라며 몇번이고 되물었고, 답을 찾았다. 위중한 산모의(?) 독실 문밖에서 들려오는 갓난아가들의 울음소리와 산모들의 즐거운 웃음소리는 나를 더욱 외롭고 서글프게 했다.

남들은 다 평범하게 하는 출산, 남편에게 탯줄 자르는 기쁨은 커녕 큰 걱정만 주어 미안했다. 나는 병원에서 쉬고라도 있지, 남편은 짧은 출산휴가 뿐, 내가 처음 입원했을 때부터 대부분 출근을 해야 했다. 업무 스트레스와 동시에 이 어두운 터널을 함께 지나야 했었다. 혹시라도 병원에서 나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연락이 오지 않을까 늘 조마조마 했다고 했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고 가장이 되는 , 반드시 지켜야  사람이 생기는 일이다.

#1. 엄마보다 강한 아기, 기적을 선물해주었다


인큐베이터 속 아가는 첫날 만났던 때보다 더 작았다. 아직 눈도 뜰수없는 핏덩이 같은 아기였다. 마음이 저려왔다. 앞으로 괜찮은걸까? 더 험난한 시련이 오지는 않을까? 나는 앞이 캄캄했다.

NICU 주치의 선생님은 아직 몇가지 검사들이 남아 있지만, 현재까지 모든 것이 정상이고 건강하다고 말해주었다. 몸무게와 신체부분들이 꾸준히 정상적으로 자라기만을 기다려 봅시다 했다. 다행히도 첫날만 호흡기의 도움을 받고, 그 이후부터 자가 호흡도 할 정도로 강인했다. "고마워 아가야, 감사합니다 나의 신이시여"


때로는 감사로, 때로는 절망과 두려움으로, 때로는 원망으로, 내 눈은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아기가 40주 가깝게 성장한 후에 실시한 시신경 검사, 뇌 검사 등 몇가지 관문들은 매번 우리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상이었다. 아기에게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시신경 검사. 안과 전문 의사선생님은 검사 전 아직 시기 상 아직 완벽히 자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우리의 기대치를 먼저 낮추었지만, 검사 후 놀라운 얼굴로 "완벽해요 추가 검사 필요하지 않아요" 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기적과 같았다.

아무리 의료기술이 발전했다 한들, 임신 31주 1키로의 조산아에게는 여전히 다양한 종류의 큰 위험이 동반된다. 우리 남편은 최근에야 나에게 고백했다. 그때 아무런 의심스러운 말도 꺼낼 수는 없었지만, 검사 결과를 백프로 신뢰하진 않았다고. 혹시나 무언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늘 염두해 두고 있었다고. ㅇㅇ이가 제 시기에 제대로 말을 하고 문장을 구사하는 것을 보고나서야 마음을 놓았다고 했다.

#2. 아가는  곁에 없어도 엄마의 미션이 시작되었다


아기를 만나러 간 날부터, 한 간호사선생님이 인적드문 내 중환자 독실에 들어섰다. 초유를 짜야 한다며 설명을 시작하셨다. 민망시럽게 내 가슴에 직접 시범을 보이시며.

"양이 적어도 좋으니, 여기 용기에 담아서 여기 보관냉장고에 이름을 쓰고 넣어두거나, 직접 NICU에 가져다 주세요."

드디어 내가   있는 일이, 목표가 생겼다. 가슴이 마르고 닳도록 초유를 생산하는 . 회사에서 목표  성과 달성만 전문으로 달려온 커리어우먼의 모성애가 반짝였다.  이후로 나는 젖소부인의 역할을 기쁨으로 감당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주기적으로 시간을 정해 모유를 만들고, 매일 양을 기록하고, 아이에게 수시로 배달하고... 남편에게 자랑을 했다. 나만의 병원 루틴을 만들어나갔다.


#3. 두번째 엄마뱃속, NICU 니큐에서 태교를 이어가다 


한국과 달리, 이곳의 NICU 시스템은 엄마와 아이의 정서적인 연결을 가장 중요시한다. 부모의 출입과 아이와의 스킨쉽을 적극 권장했다. 아이가 안정궤도에 오르면서, 기저귀 가는 것, 수유 등 모두 다 직접 하게 해주었다. 캥거루 캐어도 자주 하라며 권유를 받았다. 면회는 오전 11시부터 저녁 9시까지 허용되었고, 나는 매일 오랜 시간 아기와 함께 있을  있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때부터 불러주던 노래를 불러주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기도해주고 함께 울고 웃으며... 내 아이를 보러 병원에 가는 길이 나의 행복한 산후조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극히 제한된 시간의 면회만 가능하다고 들었다. 위험에 처한 아기들이 살기 위해선 엄마아빠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시스템으로 바뀌길 부디..

비록 우리 몸은 분리되었지만, 지난 8개월을 일심동체로 함께 했듯이, 모자랐던 2개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니큐 선생님들과 이렇게 매일 함께 하자며 우린 힘을 냈다. 남편도 회사를 마치고 매일 병원에 달려 왔다. 아이에게 안정감 있는 아빠 목소리는 중요하다며, 그는 성실하게 시간을 만들어 달려와주었다.

#4. 니큐의 희노애락 


니큐에는 세상에 나가기엔 준비가 더 필요한 사연 많은 아가들이 모인다. 많이 아픈 아기도 있었고, 너무 일찍 나온 아기도 있었고, 너무 몸무게가 적은 아기도 있었고... 황달끼로 잠깐 들린 아기도 있고 사연은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아기가 제일 작은 것은 분명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사랑으로 매일 사진을 찍어주고 몸무게를 재고 아이의 몸을 구석구석 살핀다. 매일 성적표를 받아보듯, 나는 매일 아침 아이의 몸무게가 적힌 차트를 확인하고 울고 웃었다. 초반에는 아이의 입에서 위로 연결된 가느다란 호스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게 된다. 얼마나 불편할까.. 미안해 아기야... 양수가 아닌 분유/초유를 먹어야 하니.... 소화능력이 미숙한지라 초반은 몸무게가 마니 늘다가도 갑자기 푹 주저않기도 하고... 오늘은 몸무게가 늘었을까, 엄마의 마음은 평안할 날이 없었다.
매일매일 오늘보다  나은 성장하기를,  나쁜일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이곳에도 서열(?)이 있다.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조금 성장하면 반쯤 지붕이 있는 바구니로 나가고, 홀로 온도조절 능력 등이 완벽히 성숙되면 일반신생아들처럼 일반 바구니로 진출. 여보, 우린 저 바구니에 언제쯤 갈 수 있을까. 니큐의 시계는 유독 천천히 흐르는 듯 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나와 비슷하게 매일 출근해 하루종일 함께 보냈다. 우린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에, 사연을 묻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의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5. 니큐의 의료진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NICU 간호사선생님들은 사연 많고 굴곡 많은 이 아기들을 정말 사랑해주었다. 아이들의 작은 반응에도 바로 반응하고, 항상 다정히 말을 건내주는 것이 보였다. 태어나자마자 생사의 관문을 통과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기들에게 따뜻한 엄마가 되어주고 있는  분들의 삶은 사명감없이는 불가능해보였다.

이 곳에서 보낸 2개월, 나는 인생의 큰 교훈, 생과 사, 생명의 신비를 배웠다. 어떤 잘난 인간도 자만해서는 안될 이유를 배웠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지금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고귀한 일을 하는 신생아실 의료진들. 그들의 직업의식, 사명의식을 존경하게 되었다. 다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을 만큼.


혹시라도  글을 보고 있을 니큐의 의료진들! 정말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나도 당신들처럼  직업을 통해 사랑을 베풀고 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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