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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May 29. 2020

도쿄에 가면 자전거를 타세요

도쿄에 살면서 내가 아직도 가장 좋아하고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 중 하나는 자전거를 타고 골목골목을 누비던 순간이다.

도쿄는 사람도 많고 번화한 도시이지만, 주택가로 들어가면 우리나라와 다르게 큰 아파트 단지들이 거의 없다. 낮은 주택 (一個建て)들과 개별적 맨션들이 잘 정돈된 골목에 다닥다닥 모여있는 풍경. 오래된 시골같기도 하고, 너무 조용해서 사람이 안 사나 싶기도 하고, 오래된 듯 하면서도 전선 하나 삐져나오지 않게 깨끗이 정돈되어 있어 너저분하거나 보기 싫지도 않은 잘 정돈된 도심의 주택가이다.

처음 도쿄에 주재원으로 파견을 나가 근무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자전거 타고 도쿄의 골목을 누비던 그 순간들을 그리워 하게 될줄 몰랐다. 신주쿠 서쪽 오피스지역의 높은 회색 건물들 사이를 검정색 정장 치마를 입고 불편한 듯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여성들을 보며 문화 충격을 받곤 했으니 말이다.



내가 도쿄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은 남편과 결혼하면서 부터이다. 남편은 싸이클링 쫄바지 까지는 안 입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도쿄의 도로를 누벼 1-2시간 거리의 빡센 산책(?)을 즐겨 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결혼을 하면서 본인이 수퍼 갈 때 쓰던 낡은 아저씨자전거?를 나에게 내어주었다. 우리가 얻은 신혼집에서 역 근처의 슈퍼나 교회까지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시간도 에너지도 단축할 수 있었기에 나는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 당시 나는 교회의 새벽기도 봉사자로 섬기는 중이었다. 매일 아침 5시 30분 텅빈 거리의 새벽공기를 홀로 독차지하며 자전거 패달을 밟아 달렸다. 그 새벽 도쿄의 골목을 자전거로 슝슝 누비는 것은 나의 큰 행복이었다. 도쿄는 유난히도 아침이 빨리 찾아온다. 새벽안개가 흐뭇하게 섞인 햇살을 받으며 저 멀리 도쿄타워를 바라보며 자전거를 달려 교회에 도착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남편은 가끔 나를 자전거 뒤에 태워주곤 했다. 신혼의 달달함을 극대화 시키는 데에 자전거데이트 만큼 로맨틱한 것은 없을테다. 특별한 공원이나 한강고수부지가 아닌, 일상에서 자전거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도쿄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남편은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일부러 먼 곳에 있는 수퍼마켓을 찾아간다. 야식거리를 잔뜩 사서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밤 골목을 유유자적 달리면 머릿속의 무거운 고민들이 사라지는 듯 했다. 남편이 속도를 내고 달리기라도 하면, 나는 꺄악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남편의 탄탄하고 듬직한 허리를 핸들 삼아 붙잡고 우리를 지나쳐가는 도쿄의 풍경을 감상하곤 했다.  

어느 날은, 지나가던 경찰아저씨가 (お巡りさん) 우리를 순찰 중 발견했다. 일본에서는 어른들이 자전거를 함께 타는 것 (2人乗り)은  금지이다. (엄마들이 애들을 앞뒤로 태우고 달리는 것은 되면서, 성인은 왜 안되는지 아직도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그때 마침 우리는 언덕 내리막길을 달리던 중이었는데, 너무 속도가 나 있다보니 마주편에서 멈추라고 손짓하는 경찰관아저씨를 지나쳐 내달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 분도 자전거 방향을 휙 돌려 우리를 따라오면서 마치 추격전을 하는 듯한 분위기로... 우리는 그냥 로맨틱하게 둘이 자전거 타고 수퍼 다녀온 거 뿐인데, 그렇게 까지 열정적으로 우리를 추격(?)해주시다니,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음이 나는 추억이 되었다.




딸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여느 도쿄의 엄마들처럼 용감하게 전동자전거에 앞뒤에 아이를 앉히고 달리지는 못했다. 남편은 아직 도쿄사람 되기엔 멀었군 하며 웃는다. 소심한 나는 행여 아이가 날아갈까, 울퉁불퉁한 도로에 허리가 혹시 잘못되지는 않을까, 내가 혹시 운전을 실수해 넘어져 다치지는 않을까 싶어서 미루어두어 왔었다.

언젠가 다시 도쿄에 돌아간다면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어 보고 싶다.


리로케이션/ 해외살기의 즐거움은 이런 소소한 것들에 있는 것 같다. 문화적 이질감도 불편함도 처음에는 많이 있다. 모든 불평의 터널을 지나 결국 우리는 그 곳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문화 속에 나를 접어 넣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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