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리더십 강의를 마치고
작년 이맘때 더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감성 리더십 강의에 필요한 감성 지능 진단(EQi) 자격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영어로 외국인들과 함께 강의와 코칭을 받고 진단 디브리핑 시연까지 한 후 시험을 봐서 통과했습니다. 10월 말에는 싱가포르에 가서 나흘 동안 감성 리더십 강사 양성 과정과 2개 과정을 듣고 참관했습니다. 올 7월쯤에 우리말로 강의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너무나 시간이 빨리 지나 어느덧 강의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습니다.
바쁜 일상에 시달리며 6월이 되었을 때 과연 한 달 만에 준비해서 강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그냥 휴가 다녀와서 마음을 다잡고 올가을에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유혹도 느꼈습니다.
강사 양성 과정 참여 이후 거의 들여다보지 않던 내용이라 처음 접하는 것처럼 낯설었습니다. 이번에 하지 않으면 다음에 더 어려울 것 같아 예정대로 강의하기로 했습니다.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며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강사 양성 과정에서 들은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제 경험과 학습의 결정체를 담으려 노력했어요. 슬라이드를 번역하고,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감정 어휘》, 《몰입》, 《공감은 지능이다》, 《당신이 옳다》 등 도움이 될 만한 책 소개도 잊지 않았습니다.
주말에 계속 일했고, 어제는 밤 10시가 넘어까지 슬라이드를 고치고, 고민하고, 다듬었습니다. 오늘 강의를 하기 직전까지 계속 감성 리더십 고민만 했습니다. 간만에 느껴보는 긴장에 짜릿하기까지 했습니다.
최근 《몰입 합본판》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10년 전에 읽은 줄 알았는데 2008년에 읽었으니 16년 전이군요. 그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읽었을 것 같은데요. 다시 읽으니 제가 몰입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가 싶더군요. 책 내용도 제가 강의하는 감성 리더십을 다루고 있어서 의도하지 않게 강의 준비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드디어 4시간의 감성 리더십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하는 동안 18명의 리더가 적극적으로 몰입하고, 참여했습니다. 제 강의는 늘 좋아서 믿고 들으러 왔다는 리더도 있었습니다. 중간에 박수도 치고, 많이 웃기도 하고, 인사이트도 얻는 것 같았습니다. 월요일부터 어떻게 바뀔 건지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강의를 끝내고 집에 오니 쓰러질 듯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나이를 무시하지 못하나 봅니다. 20분 타이머를 맞추고 잤는데 한 번 더 연장해 40분을 잤습니다. 사실 더 자고 싶었지만, 밤의 숙면을 위해 간신히 일어났습니다.
계획상으로는 강의를 마친 후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헬스장에 가려 했습니다. 40분을 자고 일어났더니 조금 늦은 시간이라 운동을 하러 갈지 말지 망설여졌습니다. 지금껏 헬스장에 가는 걸 망설인 적이 없는데 그만큼 힘들었나 봅니다. 피곤하지만 운동하면 에너지가 충전될 거라는 기대로 집을 나섰습니다.
헬스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성찰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강의 내용 중에는 '가장 코칭하기 어려운 리더는 성찰하지 않는 리더다'라는 내용도 있었는데요. 다행히 저는 성찰하는 리더였네요. 강의를 복기하며 작년부터 준비한 과정을 떠올렸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왜 리더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기억났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영업 강의를 했는데 결정적인 결함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아무리 준비하고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는데요. 영업 경험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유사한 경험은 있었지만, 실제 영업하는 직원에게 실질적인 팁이나 조언을 할 수 없었어요. 아마도 확신이 부족해서였겠죠. 그래서 영업 강의는 점점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 있게 강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계발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글쓰기인데요. 글쓰기 강의는 개인적으로는 할 수 있지만 일에서는 할 수가 없으니, 회사에서는 리더가 되어 리더십 강의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현직 리더로 강의하면 경험도 공유할 수 있고, 다른 리더를 이해하기도 쉽고, 무엇보다 제가 확신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마음을 잊고 바쁘게 살았네요.
운동을 하며 오늘이 제 꿈을 이룬 날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리더들을 대상으로 일부 강의를 한 적은 있지만 리더십으로 승부를 본 강의는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뛰면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의 만족도 결과에 상관없이 저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제가 바라던 리더십 교육을 깐깐한 우리 회사 리더들을 상대로 강의했다는 게 중요합니다. 강의 준비는 작년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리더가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였던 거죠. 긴 인고의 시간 끝에 꿈을 이루었어요. 술을 끊었지만, 오늘 밤에는 축배를 들고 싶습니다.
집으로 와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회사 노트북을 열어 강의 만족도 결과를 봤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여야지 생각했는데 5.0 만점에 5.0이 나왔네요. 설문에 참여한 14명의 리더가 모두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 주셨습니다. 더 많은 토론을 원한다는 개선점은 다음 강의에 적용하면 되겠더라고요.
귀찮아서 운동하러 가지 않고 조금 더 잤다면 이런 엄청나 행복의 순간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이런 글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역시나 성찰이, 운동이, 일이, 글쓰기가 제 삶에 중요하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한 번의 결과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압니다. 넘어지고, 비틀거리고, 다시 일어나며 배우고 성장하겠지요. 일요일에 또 다른 강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함정이 있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즐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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