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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Sep 24. 2018

뮤지컬 마틸다 후기

그건 옳지 않아

[스포일러 약간 있음]

나를 위한 추석 명절 선물로 뮤지컬 마틸다를 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모른 채 어린 소녀 마틸다가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찾아간다는 기사만 보고 예약했다. 더군다나 LG아트센터에서의 공연이라 더 보고 싶었다. 2번 정도 LG아트센터에서 다른 뮤지컬을 보았었는데 그리 크지 않은 공연장이고 앞뒤 간격도 적당해서 어느 자리에 앉아도 잘 보이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취향과 비용의 문제로 친구와 함께 가기가 쉽지 않아 주로 혼자 가는 편이다. 이번 공연의 경우 네이버 예약을 이용하면, 등급을 선택하고 비지정석으로 예매하는 경우 30%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A석 비지정석을 예매해서 완전 구석자리로 배정받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만석이 아니어서 그런지 A석 중 무대와 가까운 가운데 좌석으로 배정받았다.


뮤지컬 마틸다는 로알드 달(Roald Dahl)의 소설 <마틸다(Matilda)> 을 뮤지컬로 만든 것이고 아시아 최초, 비영어권 최초로 국내에 올려졌다. 주인공 마틸다 역을 9살에서 11살의 아역 배우가 맡아서 하는데 160분 동안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다 외우고, 노래와 춤을 다 소화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다만 너무 어린 배우가 뮤지컬을 하다 보니 노래 부를 때 가사가 정확하게 잘 들리지 않는 단점이 있다.


놀라운 것은 <스쿨송>의 경우 “에이(A)구, 근데 지금부터 삐(B)지고 울지는 마라." 이런 식으로 영어 알파벳을 한글 가사에 다 반영하여 개사를 한 점이다. 그런 정성에 비해 아이들이 불러서 가사가 잘 들리는 않아 아쉬웠다. 반면,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에 대해 마틸다가 부르는 <약간의 똘끼 (Naughty)>송은 '똘기'라고 번역하는 게 맞나 싶었다. 영어의 운율을 재치 있게 살렸다고 극찬을 한 기사도 있지만, naughty는 개구쟁이 같은 귀여움의 느낌이 있는 반면, 똘기는 또라이의 의미로 뭔가 부족함이 느껴진다. 시작 전 "극 중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는데 '옳지 않다'라는 표현에 사람들이 웃었다. 그런데 왜 그런 표현을 했는지 뮤지컬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마틸다가 부르는 노래 중 '그건 옳지 않아'라는 가사가 많았다. '옳지 않아' 역시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라 어색함이 조금은 묻어났다.

 

공연시작 전 무대


아들을 원했지만 딸로 태어난 마틸다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구박만 받았다. 심지어 아버지는 마틸다를 늘 머슴애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그럴 때마다 마틸다는 수용하지 않고 "전 여자아이라고요."라고 반박한다. 학교를 가기 전부터 어른들이 보는 책을 읽는 마틸다를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TV를 보라고 할 정도다. 그런 불우한 환경에서도 천재적인 소녀로 성장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좋지만, 아버지를 염색제와 접착제로 골탕 먹이는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바른 행동으로 당당하게 주장했다면 어땠을까? 마지막에 아버지가 딸이라고 부르는 순간이 조금만 더 강조되어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스꽝스럽게 나오는 미스 트런치불 교장은 늘 원칙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원칙에 아이들을 가두고 벌을 주는 모습은 현 시대상에 대한 풍자가 아닐까 싶다. 2막이 시작하기 전 마틸다의 아버지가 책을 읽는 사람들은 독서충이라고 놀리는 부분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책을 읽지 말고 테레비를 보라.'는 그의 메시지는 역설적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웃음을 제공한다.


뮤지컬 마틸다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마틸다가 허리에 두 주먹을 올린 당당한 모습으로 한 채로 막이 내린다. 그 자세 하나만으로 앞으로 펼쳐질 마틸다의 자신감 있는 인생을 느낄 수 있다. 풍자적이고 직설적인 대사, 춤과 노래, 그리고 화려한 무대는 영화나 독서로 채울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뮤지컬을 보는 게 아닐까? 뮤지컬 상으로는 마틸다가 자아는 찾았지만 행복을 찾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다 느끼지 못한 감동을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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