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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Dec 05. 2018

내 친구를 찾습니다

이제는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에드워드 호퍼의 "케이프코드의 아침" 그림을 보고 쓴 에세이 





'사랑하는 뽕. 어떻게 살았니? 이젠 괜찮은 거지?’

드디어 봉향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며칠 전부터 지켜봤는데 공부하시는 옆모습이 너무 아름다우세요. 전 컴퓨터공학과 졸업반 김서준이라고 합니다. 쉬는 시간에 잠시 커피 한 잔 어떠세요? 오른쪽 테이블 자리입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메모가 있다. 살짝 옆을 돌아보니 덧니가 두드러진 곱슬머리의 복학생 같은 남자가 아는 체를 한다. 내 스타일은 아니다. 멋있는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기분이 확 상한다.


“뽕 가자.” 애꿎은 단짝에게 짜증을 낸다. 봉향이와 나는 운명적으로 만났다. 1학년 때 영어 학습 동아리 설명회에 갔다. 공식적인 시간이 끝나 모두가 사라지고 강의실에 봉향이와 나만 남았다. 처음 접하는 수업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많았는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질문하고 대답했다. 처음 만났는데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익숙했다. 무엇보다 영어를 좋아하는 공통점 때문에 그날을 계기로 급속도로 친해졌다. 서로 다른 과였지만 같이 영어 수업도 듣고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다. 


학창 시절 단짝처럼 우리는 늘 붙어 다녔다. 특이한 이름만큼 봉향이는 개소주를 즐겨 마시며 나에게 권했던 유별나고 긍정적인 친구였다. 그녀의 별명은 이름을 강조한 ‘뽕’이다. 난 그녀를 ‘강뽕’ 혹은 ‘뽕’이라고 불렀고 그녀도 그 별명을 좋아했다. '뽕'이라는 말 한마디에도 '까르르' 웃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내가 누구보다 뽕을 최고의 친구로 꼽는 것은 그녀에게서 받은 위로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 3월이었다. 쌀쌀한 꽃샘추위가 남아있음에도 캠퍼스는 봄을 맞아 들썩거렸다. 신입생을 유치하기 위해 동아리 회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발랄한 신입생들이 날씨와 상관없이 화사한 복장으로 캠퍼스를 누볐다. 대학생활 2년 동안 뭐하나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 없이 시간은 훌쩍 가버렸고, 어느덧 3학년 봄이 왔는데 내 마음은 사막처럼 황량하고 추웠다. T. S. 엘리엇에게 4월이 잔인했다면 나의 3월이 그랬다. 봉향이와 함께 햇볕을 쬐기 위해 도서관 앞 잔디밭에 있었는데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답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핑크빛으로 아름드리 물든 캠퍼스.


그녀는 나의 손을 잡아 학교 앞 옷 가게로 이끌었다. 봄과 어울리는 화사한 민트색 재킷으로 우울한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순간 나는 봄은 이미 와 있었는데 혼자 겨울 속을 헤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알려준 봄소식에 나는 곧 기분이 좋아졌다. 봉향이는 라이오넬 리치 노래를 들려주며 힘들 때 위로가 될 거라고 했다. 우리는 그의 노래를 외울 정도로 많이 들었다. 


봉향이와 내가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옆으로 오더니 멈춘다. 남자는 꽃다발을 건넨다. 

“사귀고 싶습니다. 저와 만나 주세요.”

앗! 그 덧니다. 키도 작고 볼품없는 복학생 아저씨.

“아뇨. 됐거든요. 전 남자 사귈 생각이 없어요.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뽕! 빨리 가자.”

오토바이가 계속 따라온다. 짜증 난다. 난 잘생기고 키 큰 남자가 좋다고. 너 같이 짜리 몽땅한 덧니는 싫다고.

“야, 그래도 성의가 있는데 꽃은 받아주지 그러니? 안 됐잖아.”

눈치 없는 강뽕. 그렇게 안 됐으면 니가 받아주던가. 난 아니올시다.


그러고 몇 번 더 덧니는 나에게 이래저래 선물 공세와 편지를 보냈지만 나는 변함없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갑자기 봉향이가 나에게 고백을 한다.

“나 있잖아…”

“응! 말해.”

“나, 사귀기로 했어.”

“누구랑?”

“김서준 씨”

날 그렇게 쫓아다니던 그 덧니. 그 사람이 뭐가 좋다고. 착한 내 친구 뽕. 마음이 약해서 나에게 차인 그 남자를 달래 주다가 정이 들었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인연도 있구나!


그렇게 시작한 봉향이와 서준씨의 사랑은 불타올랐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까지 이어졌다. 서준씨가 삼성전자에 입사했는데도, 봉향이는 젊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며 학습지 교사를 했다. 


이들 부부 집들이를 갔었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봉향이는 어떻게든 절약해 보겠다고 서준 씨의 반지하 자취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정말 조그만 방에 소꿉놀이하듯 알콩달콩 사는 모습은 딱했지만 보기는 좋았다. 다만 반지하여서 화장실이 없었다. 1층의 공용 화장실을 다른 사람들과 사용한다고 했다. 어떻게 신혼의 새색시가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봉향이는 행복해 보였다.


“학습지 교사는 할 만하니?”

“가방이 너무 무거워 힘든데 할 만해.”

“그렇게 힘들게 살 필요 있니?”

“무슨 소리야. 주변 아줌마 선생님들이 그러는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애 낳기 전에 돈을 모아야 한대. 그래야 나중에 편하게 산대.”


이후 나는 강북에서 직장 생활하느라 바빴고, 그녀의 집은 강남이었기에 멀다는 핑계로 자주 왕래하지 못했다. 나도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도 했다. 가끔 부부동반으로 만나기도 했지만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살다 보니 자주 만나지 못했다. 흘러간 시간만큼 우리 사이도 점점 멀어졌다. 


“네 서준씨. 안녕하세요?” 그러고 보니 봉향이 부부를 만난 지 꽤 오래되었다. 왜 봉향이가 아니고 서준씨가 전화했을까?

“최근에 봉향씨 만난 적 있나요?”

“네? 아니오. 봉향이에게 무슨 일 있나요?”

“봉향씨가… 봉향씨가….” 갑자기 서준씨가 흐느낀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실은 몇 달 전부터 봉향씨가 좀 이상했어요. 매일 저녁에 늦게 오길래 수상해서 캐물었더니 사이비 종교에 빠졌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하고, 혼도 내고, 가서 데려 오기도 했는데 말을 안 듣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부부싸움도 많이 했어요.”

“사이비 종교요? 설마요? 왜 그랬대요?”

“아무래도 학습지 교사 일도 너무 힘들고, 서울에 혼자 있다 보니 친구도 없고, 많이 외로웠나 보더라고요.”

“봉향이가 너무 착해서... 그래서요?”


봉향이가 착한 것도 맞지만, 내가 많이 만나지 못했던 미안함도 컸다. 겉으론 씩씩해 보여서 잘 사는 줄 알았는데 많이 외롭고 힘들었구나! 왜 말하지 않았니?

“그렇게 몇 번 싸우고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그냥 뒀어요. 그런데 어제 퇴근하고 집에 오니 제 통장과 현금을 가지고 사라졌어요. 그놈의 사이비 종교 사람들과 미국에 살러 간다고 자기를 찾지 말라는 메모를 남겨놓고요...” 

“네? 진짜요?”


말도 안 된다. 봉향이가 그렇게 사랑하던 서준씨까지 버리고, 재산을 챙겨 도망 가다니…. 내가 알던 뽕이 맞을까? 봉향이에게 전화를 하니 결번이라고 나왔다. 그렇게 멀지도 않은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있었는데 너무나도 미안하고 화가 났다. 그렇게까지 밖에 할 수 없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당당하고 낙천적인 그녀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남편은 봉향이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는 말을 듣자마자 정색을 하면서 나에게 앞으로 봉향이를 찾지도 말고, 이름도 부르지 말라고 하였다. 계속 봉향이와 연락하면 이혼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비겁하게도 나에게 그렇게 큰 위로를 주었던 봉향이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다. 남편의 반대는 핑계에 불과했다.


서준씨는 백방으로 봉향이를 찾아보고 수소문하여 미국까지 가서 설득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이혼을 요구했다. 서준씨는 차라리 봉향이가 불륜을 저질렀다면 이혼하겠지만, 나쁜 길에 빠져있는 그녀를 차마 버려두고 이혼을 못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끈질긴 요구로 결국 몇 년 후 이혼을 했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서준씨를 만났다. 그는 다시 처녀장가를 갔으며, 새로 맞은 신부를 위해서 반지하도 아닌, 공용 화장실도 없는 강남의 은마아파트에 산다고 한다. 그렇게 돈이 없어서 힘들어했는데 어떻게 아파트를 샀냐고 물었더니, 부모님께서 재혼인 만큼 잘 살라고 무리해서 사주셨다고 한다. 


순간 봉향이의 고단한 얼굴이 떠올랐다. 반지하에 사는 게 오히려 아기자기하다고 애써 웃으며 말했고, 공용 화장실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던 뽕, 제 몸무게보다 무거운 학습지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가끔은 힘들다고 귀엽게 투덜거리던 그녀. 


회사와 가깝다는 이유로 서준씨가 구매했던 은마아파트. 몇 년 후 재개발 붐으로 아파트값이 급등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왜 그녀와 살 때에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고, 상처받고 떠난 후 다른 사람이 그녀의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걸까? 둘 만남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그녀가 떠난 후 5년이 지났다.

“네, 여보세요.”

“….”

“말씀하세요. 누구세요?”

“나야… 뽕”

“정말 뽕이니? 강뽕? 어떻게 살았니? 이젠 괜찮은 거지?’

“나 미국 생활 정리하고 한국에 왔어.”


남편의 경고 때문에 차마 그녀에게 만나자고 말하지 못했다. 그녀도 나에게 만나자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좋은 사람을 알게 되어 같이 살 거라고 했다. 나이가 좀 많지만 그녀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해서 안심이 되었다. 그녀가 행복하길 바랄 뿐 더 이상 해줄 게 없었다. 


대학교 3학년 봄에 그녀에게 받았던 위로는 언제 갚을 수 있을까? 언제나 3월이 되면 도서관 앞 잔디밭과 그녀가 떠오른다. 생각만 해도 미소가 떠오르는 그녀의 유쾌한 별명과 함께. 


뽕! 지금이라도 이 글을 읽는다면 나에게 알려주렴. 이제는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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