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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Dec 22. 2018

쇼팽, 발라드 제1번

음악을 듣고 주관적 느낌 글쓰기

쇼팽, 발라드 제1번 (Chopin,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제1주제는 부드러운 왈츠처럼 움직이지만 줄곧 우울하고 어둡게 진행된다. 


서울에 두 번째로 간다. 얼마 전 생전 처음으로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다. 다행히 합격하여 이번에는 면접을 본다. 잘 할 수 있을까? 경쟁률이 높다는 데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살고 싶다. 내 방도 없고 찬물만 나오는 고향 집의 답답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 새로운 환경에서 나 혼자 살고 싶다.


33마디부터 오른손의 화려한 패시지가 펼쳐지며 이어 36마디부터는 같은 멜로디를 왼손의 옥타브, 오른손의 아르페지오 진행을 보여주며 제2주제를 끌어낸다.


"저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네? 아 네...." 

"서울분이세요?"

"아 아니요..."

"서울은 어떤 일로 가세요?"

"..."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자꾸 물어봐서.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는 부스럭거리며 명함을 꺼낸다. 

"전 S사 법무팀에서 일하고 있고 멀쩡한 사람입니다. 혹시 기차에서 말 걸었다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마세요. 전 고향이 마산인데 부모님 뵙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전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이어요. 이렇게 처음 보는 분에게 말 거는 사람 아닙니다. 제 신분증도 보여드릴게요."


그는 명함과 신분증을 대조해 보이며 진심으로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손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기차나 버스를 타면서 옆 사람이 말 거는 것은 처음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대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명함과 신분증을 보여주는 거로 봐서 이상한 사람은 아니겠지?


이후 우수에 찬 제1주제와 화려하고 열정적인 제2주제가 교차하며 클라이맥스를 향해가는데, 발전부인 94마디부터는 한층 풍부한 내용을 전개하며 곡의 예술성을 높여주고 있다.


"책도 읽으시고 참 인상도 좋으셔서요. 무슨 좋은 일로 서울 가시나 봐요?"

"아 네. 면접 보러 가요."

"아 분명 잘 될 겁니다. 제가 사람을 좀 보는 눈이 있는데 참 성실해 보이고 면접관들이 좋아할 인상이세요."

그냥 그의 아부가 싫지 않다. 웃음이 나왔다. 그는 계속 자기 이야기를 한다. 


특히 126마디부터는 카덴차 같은 형태로 긴장감을 조성하며 오른손의 자유로운 패시지가 연결되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다이나믹도 커진다. 


"저는 K대를 나왔고 일을 더 잘하려고 대학원까지 다녔어요. 집안, 학벌, 회사 다 좋은데 왜 장가를 못 가는지 모르겠어요. 이 정도면 잘생기지 않았나요? 제 나이가 좀 있다 보니 선보러 나가면 제 스타일의 여자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돼요? 정말 제 스타일이거든요. 이런 분만 선 자리에 나오면 바로 결혼할 텐데. 하하. 저 정말 이런 사람 아닌데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이어 138마디부터는 E 플랫 장조의 아주 재빠른 왼손의 아르페지오를 반주로 깔고 노래하듯 오른손이 연결된다. 


얼떨결에 이름을 말하고 말았다. 좀 나이는 들어 보이지만 그가 싫지는 않다. 말도 잘하고 매너도 좋아 보인다. 대학원도 나왔고 좋은 회사 다니는 것을 보면 열심히 사는 사람인 것 같고 일도 잘할 것 같다. 서울 남자들은 다 이렇게 부드러운 말로 처음 보는 여자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댈까? 


나는 서울말이 좋았다. 고등학교 때 윤리 선생님은 서울에서 오셨다. 윤리 선생님은 키도 작고 퉁퉁하고 잘 생기지도 않았다. 서울말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인기 1위였다. 나 역시 윤리 선생님을 짝사랑했다. 책상에 매일 꽃도 올리고, 편지도 썼고, 초콜릿도 가져다 놓고, 책상도 닦았다. 단지 감미롭고 다정한 서울말 하나 때문에.


194마디부터는 다시 차분하게 격한 감정을 정리하지만 왼손 코드의 깊이는 더 깊어진다. 


거의 4시간 동안 그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서울에 두 번째로 간다고 하니 서울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분명 합격할 테니 서울에서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하고, 서울 사람들은 어떤지, 어떻게 여자 혼자 자취생활을 해야 하는지, 알뜰히 오빠처럼 챙겨준다. 처음 만났지만 믿음직스럽다. 


"혹시 합격하게 되면 서울에서 이것저것 알아볼 것 많으니까 전화 주세요. 제가 법무팀이니까 많이 도움이 될 거예요.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다면서요. 제가 짐 나르는 것도 다 도와드릴게요. 꼭 연락하세요."

서울에 연고가 없던 나는 도움을 준다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전화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마지막 엔딩으로 연결되는 208마디부터는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장엄하게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그는 영등포역에서 먼저 내렸다. 나는 서울역에 도착하여 내리려고 짐을 챙기면서 전율을 느꼈다. 그가 좌석 앞주머니에 놓고 내린 책을 보면서 이 면접에서 합격할 거라 예상했다. 내가 합격해서 서울에 다시 올 것이고, 그때 그에게 책을 전달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참고내용: [네이버 지식백과] 쇼팽, 발라드 제1번 [Chopin,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두산백과)

제1주제는 부드러운 왈츠처럼 움직이지만 줄곧 우울하고 어둡게 진행되다 33마디부터 오른손의 화려한 패시지가 펼쳐지며 이어 36마디부터는 같은 멜로디를 왼손의 옥타브, 오른손의 아르페지오 진행을 보여주며 제2주제를 이끌어낸다.
우수에 찬 제1주제와 화려하고 열정적인 제2주제가 교차하며 클라이맥스를 향해가는데, 발전부인 94마디부터는 한층 풍부한 내용을 전개하며 곡의 예술성을 높여주고 있다.
특히 126마디부터는 카덴차같은 형태로 긴장감을 조성하며 오른손의 자유로운 패시지가 연결되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다이나믹도 커진다. 이어 138마디부터는 E 플랫 장조의 아주 재빠른 왼손의 아르페지오를 반주로 깔고 노래하듯 오른손이 연결된다. 또한 194마디부터는 다시 차분하게 격한 감정을 정리하지만 왼손 코드의 깊이는 더 깊어진다. 마지막 엔딩으로 연결되는 208마디부터는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장엄하게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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