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비 출판사 한소원 대표가 알려주는 그래픽 노블과 1인 출판사 이야기
도서관 행사에서 처음 접한 그래픽 노블을 그림책, 만화책, 소설 그 사이 어디엔가 위치하는 장르로 이해했다. 『심야 이동도서관』을 읽고 상상력의 세계와 그래픽 노블의 매력에 빠졌지만 이후 찾아 읽지는 않았다. 그래픽 노블 1인 출판사인 우리나비 한소원 대표가 말하는 그래픽 노블과 출판사의 철학을 들으며 내 글쓰기를 돌아보았다.
그래픽 노블은 사회현상이나 미시적인 측면에서 개개인을 바라보는 틀
"그래픽 노블이란 무엇인가? 그래픽 노블의 용어 정의에 논란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미국형과 유럽형으로 나눌 수 있다. 미국형이 『엑스맨』, 『아이언맨』과 같은 마블 코믹스 시리즈라면 유럽형은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그래픽 노블이라는 형식에 담아 예술성 있는 작품으로 완성한 것이다. 그래픽 노블은 사진과 같은 연상 작용을 준다. 어느 날 우리가 그래픽 노블의 한 페이지를 펼쳤을 때 각인된 이미지는 우리에게 힐링을 준다.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의 중간점에 있으면서 내 맘 같지 않은 인생에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서사와 그림의 균형감각이 주는 소장 가치가 있는 예술작품이다."
그래픽 자체의 예술성과 글이 주는 문학적 감성이 그래픽 노블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내 글이 독자에게 각인된 이미지를 제공하여 힐링을 줄 수 있을까? 내 글은 독자에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가? 소통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일방적으로 쏟아붓고 내 주장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내 글 역시 균형감각을 고려하면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인생이 내 마음처럼 되던가요? 웃픈 상황을 포착하는 그래픽 노블
"『엉클어진 기억』에서는 열정적이고 논리적이던 엄마가 서서히 기억을 읽어가면서 두려운 존재로 변해가는 비극에 대처하는 딸의 이야기를 그렸다. 과연 슬픈 상황만 있을까? 슬프지만 순간의 유머와 웃음이 존재한다. 그런 요소가 그래픽 노블의 힘이다."
나의 글은 너무 긍정적이어서 공감이 어려운 약점이 있다. 슬픈 현실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유머 코드가 있거나, 긍정 속에서도 발견하는 숨겨진 슬픔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의 다양한 면을 담는 작가가 되어 공감을 이끌고 싶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멍
"상처이거나 트라우마일 수 있는 구멍. 그게 과연 나쁜 것일까? 다른 사람의 상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창이다."
나의 구멍은 무엇일까? 구멍을 애써 막으며 없는 듯 사는 건 아닐까? 저자 오사 게렌발은 부모에게 신체적 학대는 아니지만 정서적 방치로 상처받았다. 성인이 된 저자가 어린 시절 자신을 껴안아 주는 모습이다. 표지 그림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래픽 노블만의 힘이다.
강조하지 알아도 알아보는 독자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적인 도구에 잘 담아내는 것, 그게 천재 아닌가요?
"소재주의 작가와 작가주의 작가가 있다. 소재주의는 유행하는 소재를 쫓아 글을 쓰는 작가이고 작가주의는 하려는 이야기가 분명한 작가를 의미한다. 진정성이 있는 작품은 결국 독자가 알아본다."
나는 하려는 이야기가 분명한가? 내 글에는 진정성이 있는가? 나는 어떤 이야기를 쓰려 하는가? 꾸준히 진정성을 가지고 글을 쓰면 언젠가 독자가 알아볼까? 나만의 이야기를 글이라는 예술적인 도구에 잘 담아내는 것, 작가의 숙명이다.
작가는 발굴하는 게 아니라 인연으로 만난다
한소원 대표와 홍연식 작가는 우연히 프랑스 앙굴렘(Angoulême) 국제 만화 축제에 참여하는 길에 만났다고 한다. 진정성 있는 만남이 인연이 되어 예술작품을 탄생시켰다. 나는 어떤 인연을 만날까? 작가로 발탁되기만을 꿈꾸기보다 사람들과 더 진정성 있는 만남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가지 않은 길은 가보면 된다
한때 프랑스 도서 번역 판권 에이전트로 잘 나갔던 한소원 대표는 직장인이라면 해봄직한 고민을 했다.
'나는 뭐 하고 있는 건가?'
'월급을 받으려 일해야 하나 아님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나?'
1인 출판사 대표로 기획부터 출판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한다. 그럼에도 매월 한 권씩 출판하고 100권 출판을 꿈꾼다. 도서전이 있는 곳은 직접 찾아가서 홍보한다. 유행을 따르기보다 사회현상이나 가족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는 외국 작가의 노블 그래픽을 수입하여 국내에 출판한다. 또한 울림이 있는 국내 그래픽 노블 작품을 수출하여 해외에 널리 알린다.
가지 않은 길. 두렵고 알 수 없어 주저하는 길. 그렇다 가보면 안다. 그녀의 도전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응원한다. 나에게 말을 건네는 그래픽 노블을 찾아 액자처럼 서재에 진열해야 겠다. 누군가 미치도록 그리울 때 펼친 한 페이지가 나를 위로해 주겠지? 언제가 만들어질 내 책 역시 위로가 필요한 독자에게 손을 내밀어 주겠지?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해준 역삼푸른솔 도서관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