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과삶 May 07. 2019

엄마 건강하세요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어린 시절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는 늘 집에 없었다. 거창한 커리어 우먼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늘 바빴다. 계 모임의 계주를 도맡아 하고, 각종 모임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여장부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사람을 몰고 다녔다. 그런 역할에서 오는 약간의 활동비로 생계에 보탬을 주었으니 완전한 맞벌이는 아니어도 절반의 워킹맘이었다. 어쩌면 내가 각종 모임의 총무와 회장을 도맡아 하는 것도 엄마에게서 배운 게 아닐까?


중학교 때 엄마가 집에 없다는 이유로 짧게 방황했다. 그때가 유일한 사춘기가 아니었나 싶다. 성적이 잠시 떨어졌는데 엄마에겐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말았다. 선생님이 갑자기 왜 성적이 떨어졌냐고 물었는데 눈물만 흘린 기억이 난다. 풍족하지 않은 집안에, 방과 후 집에 가면 오빠하고만 놀아야 했던 나는 엄마의 사랑이 한없이 그리운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모녀간에 자매처럼 친밀하게 지내는 친구도 제법 있는데, 나는 착실한 모범생이고 엄마는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여장부다 보니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엄마의 인생이 보기 좋았다. 엄마의 인생을 존중했다. 엄마가 오빠와 나에게 연연하기보다 사회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멋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아이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엄마의 영향이 크다. 맞벌이 워킹맘은 종종 아이에게 죄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지 못한다거나, 아이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부족하지만 난 늘 당당한 워킹맘이다. 아이들 인생도 중요하지만 내 인생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엄마가 그렇게 사는 걸 보고 자랐으니 당연하다.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매주 시간을 정해두고 통화한다. 얼마 전부터 좀처럼 하지 않던 질문을 계속한다. 


"언제 오노?"


십여 년 전 엄마는 엄마는 허리가 아팠다. 굳이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엄마는 수술을 감행했다. 하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선택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통증 때문에 걷는 것조차 불편하신다. 잘 움직이지 못하니 외출을 어려워 늘 집에만 있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나 보다. 몸이 성치 않으니 엄마가 많이 나약해졌다. 그렇게 각종 모임을 주름잡았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고 제 몸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노인으로 남았다.


"난 이제 글렀다. 다 살았다."


너무 나약한 말이다. 아직 죽음을 생각할 나이가 아닌데, 벌써 이런 마음을 먹다니... 난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자꾸 언제 오느냐고 물어봐서 걱정된 나머지 당장 엄마를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지만, 의지가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지만, 정신도 육체를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 자신감을 회복하고, 꾸준히 운동하면 차도가 있지 않을까? 어떻게 의지를 강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어른의 마음을 바꾸기가 젊은 사람보다 훨씬 어렵다.


몇 년 전부터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꼭 하는 질문이 있다.


"오늘 운동했어요?" 


엄마가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인생을 즐기면 좋겠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활기 있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좋겠다. 부모자식 간 사랑은 내리사랑밖에 되지 않을까? 내일이 어버이날이지만 자식으로 해드릴 게 없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뿐.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엄마 이야기를 하는 건, 부모님이 건강을 잃으면 나중에 부모님과 함께 해야지 생각했던 것을 실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지내다 가시곤 했는데 그마저도 어렵고, 함께 여행 가는 것은 꿈도 못꾼다. 그나마도 감사한 점은, 살아계시니 통화도 하고, 찾아뵙고 얼굴이라도 본다. 평생 건강하게 기다려줄 것 같은 부모님도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




종암동

                                              박준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

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공대생의 심야서재 필사모임에서 선정한 시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은 무료 업그레이드와 같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