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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Sep 22. 2020

나에게 주어진 세 가지 인생

가상의 인생 살기

┃사서


임원들은 각자 사무실이 있고, 직원은 칸막이 내 작은 공간을 가진다. 아마 나는 우리 회사에서 가장 큰 사무실을 가진 직원일 거다. 약 2만 권의 책이 진열된 도서관을 혼자 지키니 말이다. 다행스럽게 사장님이 독서를 무척 강조하셔서 직원들이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직원들은 최소 일주일에 한 권 이상 책을 대출하고, 점심시간에 들러 독서를 한다. 나는 직원들 얼굴만 봐도 이름을 알고 이들이 최근에 읽은 책을 떠올린다. 신간이 나오면 종종 추천해 주는데 다들 읽고 싶은 책이라며 반가워할 때 보람을 느낀다.


사서의 역할은 책을 구입하고 진열하는 데만 있지 않다. 책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하여 더 많은 사람이 책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데 있다. 직원들에게 필요한 책을 선정하여 기획전을 열기도 하고, 독서 토론, 퀴즈나 서평 이벤트도 한 달에 한 번씩 개최한다. 저자를 초대하여 특강도 열고,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도 진행한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도서관을 편안한 공간으로 여기고 독서를 즐기면 좋겠다. 


자기 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업무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책을 읽으며 사고를 확장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이 결국 일을 더 잘하는 지름길이다. 개인의 삶의 풍성해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직원들에게 필요한 책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 직업이 좋다. 틈날 때마다 조용한 환경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게 최고의 장점이다. 책 속에 파묻혀 일하지만 월급도 받고 책도 읽는 직업, 완벽하지 않은가?


┃MC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 여자 유재석. 바로 내 별명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무대에서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과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이 달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아다. 나의 타고난 성향이 가장 어울리는 직업이 MC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의 주목을 바라는 사람이라 무대가 편안하다. 방금 진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화려한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활동하는 것도 좋고 이렇게 집에 혼자 있는 시간도 즐겁다.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충전하지만 혼자 있을 때도 충전이 된다. 살아있는 에너지 자가 발전소다.


준비와 실행이 함께 하는 삶이 좋다. 준비만 하는 사람은 실제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탁상공론에 빠질 수 있다. 방송 작가들이 그런 오류에 빠지기 쉬운 데 이들이 직접 진행해보면 관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잘 준비할 수 있다. 진행만 하는 MC는 전체 흐름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MC가 방송 작가와 함께 처음부터 준비하고 협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더욱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방송 작가들이 나와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고 때로는 다른 프로그램에 대해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호기심이 많다 보니 아이디어도 풍부하다. 같이 고민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기획안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즐겁다.  


스크립트가 아무리 완벽해도 현장에서의 임기응변이 중요하다. 난 한 사람이라도 소외되는 걸 견디기 힘들어한다. 게스트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느낌을 받도록 노력한다. 내 질문에 답변이 짧았다거나 기회가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여겨지면 나는 해당 게스트를 좀 더 배려하고 기회를 준다. 그 덕분에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타고난 성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칭찬까지 받으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은가?



┃선생님


「아이들의 본성인 호기심을 일깨워야지. 그게 우리 직업이잖아. 학생들의 흥미를 끌 방법을 우리가 찾아야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기억》의 주인공인 르네 톨레다노가 한 말이다. 역사 선생님인 그는 시험 위주로 수업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를 학생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고3이 되면 수능을 위해 시험 준비를 해야겠지. 적어도 고1, 고2일 때는 아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알려주고 싶다.


교과서의 내용으로 진도를 어느 정도 나가며 동시에 별도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다. 글쓰기만큼 사람을 성찰하게 만드는 도구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왜 교과서에 없는 글쓰기를 해야 하냐고 불만을 터뜨리지만 한 주, 두 주가 지나면 금세 글쓰기 수업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당연히 과제로 제출하는 글도 2,000자가 훌쩍 넘고 내용 면에서도 완성도가 높다. 합평할 때면 그 어느 순간보다 진지하다. 글쓰기와 합평으로 자신도 알고 친구도 이해한다. 다양성과 포용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바뀌기에 지식은 인터넷이나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된다. 학생들이 인생의 원리와 지혜를 터득하고 학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 그 시작점은 자신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로 아이들이 자신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국어 선생님이니까 그것도 수업의 일환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현실


사서는 아니지만 독서 모임, 독서 토론, 독서 퀴즈 이벤트를 진행한다. 업무적으로 강의와 퍼실리테이션 할 일이 많다. 어찌 보면 MC의 일과 비슷하다. 선생님은 아니지만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와 서평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을 이끈다. 욕심이 많아서 하나의 직업으로 만족할 수 없나 보다. 상상할 수 있는, 내가 해보고 싶은 직업이 현재의 모습과 겹치기에 감사해야 겠지. 어느 갈래를 선택했더라도 지금의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 새로운 배움을 얻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함께 성장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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