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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May 22. 2021

지인(至人)이 지인(知人)이라 감사한

비비안 마이어, 디자인 싱킹 그리고 생각에 관한 생각

지난 3월 모임에서 3일과 같은 3시간을 보낸 3명이 이번 주 부처님 오신 날에 다시 만났습니다. 주말에는 여러 모임으로 바쁘기에 주중의 공휴일은 졸리는 오후 단잠보다 달콤합니다. 그 소중한 날, 자연을 즐기려고 지인과 함께 서울대공원 산림욕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지난번 모임에서 다음에 만날 때는 각자가 읽은 책 이야기 하나씩 나누기로 했는데요.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네요. 


최근에 읽은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과 박균호 작가님과의 흥미로운 인연을 이야기하면 되겠다 생각만 하고 책은 가져가지 않았는데 지인들은 저보다 더한 범생이과여서 책을 한 권씩 가져왔어요. 


사진을 잘 모르지만 익숙한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집 《Vivian Maier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을 지인이 가져왔어요. 2015년 성곡미술관에서 '비비안 마이어 & 게리 위노그랜드 사진전'을 둘러보고 산 도록이래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보고 글을 썼고,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에 관한 정재형의 크리틱을 183자로 요약한 저는 그녀가 반가웠어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Finding Vivian Maier>(2013)는 말루프 감독이 진실을 폭로하기 위한 방식으로 적극적인 인터뷰를 동원하여 파헤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의 목적은 비비안 마이어의 신원을 찾는 것이다. 영화의 소재가 되는 비비안은 사진을 찍었고 영화의 구성은 비비안의 사진과 기록영화를 통해 재구성된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집에는 자연스러운 표정의 남녀 인물과 때로는 특정 부위의 사진, 그 시절 풍경으로 가득했어요. 가정부이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추구한 천재, 그러면서도 세상에 자신을 알리지 않은 신비로움. 필름 케이스로 가득한 사진이 그녀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가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을 강의하는 지인은 디자인 싱킹을 잘 설명한 책으로 온몸으로 사고하라》를 추천했어요. 책은 밑줄과 메모로 가득했어요. 10여 년 전에 IDEO사에서 카트 제작을 위해 고객의 관점에서 브레인스토밍하고, 시장조사를 하고, 시제품을 만드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디자인 싱킹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인 싱킹을 고객에서 출발하는 개념으로 이해했는데 그보다 더 크더군요. 


특히나 기존의 문제해결 방식과 비교해서 디자인 싱킹이 가지는 가장 큰 차이는 좌뇌를 활용한 논리적인 사고가 아니라 우뇌를 사용한 감성적 사고라는데요. 결국 경험 디자인에 가깝다며 고객을 공감하는 게 핵심이라고 해요. 고객과 공감하기 위해 인터뷰부터 동행, 동거까지도 한다는군요. heuristic (체험적인)과 nudge (넛지, 사람들의 옆구리를 슬쩍 찔러)가 디자인 싱킹을 잘 대변하는 단어라고 말했어요.


순간 오늘 아침에 읽은 책이 떠올랐어요. 418페이지에 달하는 《Thinking, Fast and Slow》(생각에 관한 생각)인데요. 내일이면 완독할 책입니다. 3월 1일부터 하루에 15분 이상 읽었는데 거의 석 달 걸렸어요. 보통 한 달이면 원서를 읽는데 워낙 두껍고 내용도 어려워 오래 걸렸어요. 매일 아침 명상하는 기분으로 읽었죠. 50% 정도 내용을 이해했는데 이 책에서 자주 나온 단어가 시스템1 사고를 설명하는 heuristic입니다. 넛지는 뒷부분에서 자유지상주의적 온정주의를 설명하는 부분에 소개합니다. 《넛지》도 꽤 오래전에 나온 책으로 많은 분들이 읽었죠. 


‘어림짐작heuristic’을 엄밀히 정의하자면, 어려운 문제에 불완전하더라도 적절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간결한 절차다. 이 말은 ‘유레카(eureka: 바로 이거야!)’와 어원이 같다. -《생각에 관한 생각》 중에서 


《생각에 관한 생각》 이야기를 했더니 대학원에서 교재로 사용한다는군요. 수업하며 분석해야 제대로 이해할 만큼 방대하고 깊은 책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번역서를 참고로 살짝 봤는데 번역서도 이해하기 어렵더라고요. 저자는 정책 입안자나 정부에서 시스템 2의 게으름을 벗어나는 자동 실행 정책을 권하는데 한국이 나름 잘하고 있고 이 또한 디자인 싱킹으로 연결된다니 신기했어요. 어렵게 읽은 책이 대화로 정리되었어요.


각 잡고 여러 사람들과 독서토론하는 것도 좋고 이렇게 각자가 읽은 책을 편하게 연결하며 대화로 나누는 것도 좋았어요. 자연 속에서 직접 내린 커피를 달달한 도넛과 함께 먹으면 무엇을 하든 기쁘지 않겠어요? 지인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죠. 지인(至人)이 지인(知人)이라 감사했어요. 한 달 후에 또 어떤 책으로 성장을 쌓아갈지 기대되는 한 주입니다.


3월 봉은사에서 지인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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