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인간에 대하여》 서평
여고 시절 가톨릭 재단 사립학교에 다니며 세례를 받았으나, 졸업과 동시에 냉담자가 되었다. 그 이후 성당에 몇 번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거만한 나는 '자신을 믿는다'라는 생각으로 종교를 접었다. 서문에서 저자는 언론의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시대'라고 말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저자는 종교의 보급과 전파를 '겸손'으로 본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상대를 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배우려는 자세 때문이라고 여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 안식처에 대한 간절함이 종교를 발전시켰다고 본다. 내가 고등학교 때 종교를 믿은 것도 대학에 가고 싶다는 희망과 간절함 때문이었다. 간절함이 사라지니 믿음도 약해졌다.
"너만이 연주하도록 신이 네게 준 악보는 어디 있는가?"
자신만의 악기를 찾아, 자신의 악보를 연주하기 위해 저자는 고독하게 학문을 갈고닦았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유럽의 역사와 문화 속에 드러난 믿음과 종교에 관한 글을 담았다. 전작 《라틴어 수업》이 라틴어를 매개로 삶에 대한 태도, 학습, 관계, 즐거움, 희망, 진리, 열정, 사랑을 총망라한 인생 학습서라면 이번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유럽의 역사와 종교에서 인간의 겸손과 희망을 엿보는 책이다.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글 말미의 질문은 《라틴어 수업》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다. 소제목만 봐도 느낌이 오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꼽았다.
02. 같음을 찾고 차이를 만든다: '바라봄(visio)'이 모든 이해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바라봐야 하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같음'이라고.
타인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바라보고, 타인과 다른 부분도 있지만 동일한 부분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보라는 의미다. 최근 포용과 다양성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인간이라는 동일 선상에서 상대를 능동적으로 바라본다면 이 또한 희망이 되지 않을까?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차이에 집중하기 전에 우선 무엇이 같은지부터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09. 수도복이 수도승을 만들지 않는다: '옷 자체가 그 옷이 지향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겉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태도가 그 사람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우리가 입은 옷은 무엇인지 그 옷의 무게를 잘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퇴직하고 나면 직급이라는 배지가 아무 의미가 없다던 강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회사의 이름조차 나에게는 무거운 옷이다. 더 이상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옷이 없고, 배지조차 사라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설 수 있는가?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 살아야 한다.
14. 혼돈 속에서도 나아가는 발걸음 - 종교에서 의학의 홀로서기: 전염병의 확산으로 정치, 종교로부터 의학이 독립했는데, 그 과정을 볼 때 인간은 참사와 재앙 속에서 비로소 변화를 받아들이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인류는 지난 역사에서 각종 전염병으로 수많은 목숨을 잃었지만, 그로 인해 전염병을 치유하고 예방하는 방법을 찾아나갔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동일한 상황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4차 산업혁명이 대유행이던 시절 말로만 떠들었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 코로나로 순식간에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메타버스가 일상이고 현실이 되어 간다. 이게 꼭 긍정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 삶의 변화를 촉진했다. 뭐가 되었든 위기 속에 기회는 있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라틴어 수업》을 읽었다면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으로'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읽고 인간의 겸손과 희망을 생각하면 좋겠다. 유럽의 역사와 문화가 조금이라도 익숙하다면 더 쉽게 읽겠지만.
* 본 글은 흐름출판에서 책을 지원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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