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서평
아버지가 죽었다.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 《아버지의 해방일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정지아 작가는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책을 접하며 빨치산의 딸이 죽은 아버지 역사를 쓰나보다 정도로만 생각했고, 빨치산이나 과거 역사는 별로 흥미가 없었기에 책 읽기를 주저했습니다.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추천하길래 큰 기대 없이 펼쳤습니다. 과거가 아닌 현재 아버지가 돌아가신 시점에서 상을 치르고 화장하는 3~4일간의 이야기였습니다. 주인공 아리가 과거를 회상하며 아버지를 재해석하는데요. 아버지는 죽었지만 소설로 다시 살아나 함께하는(항꾼에) 바람에 울컥하고, 짠하고, 때로는 깔깔거릴 수밖에 없었어요.
빨치산 이야기가 나오니 예전에 고 최진실 주연의 영화 〈남부군〉이 떠올랐는데요. 빨치산과 남부군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겠더군요. 검색해보고서야 빨치산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빨치산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48년 여순 사건과 1950년 6·25 전쟁을 거쳐 1955년까지 활동했던 공산주의 비정규군을 말한다. 빨치산이 빨갱이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 곧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을 일컫는 말로 유격대와 가까운 의미이다. 이것이 이념 분쟁 과정을 통하여 좌익 계통을 통틀어 비하하고 적대감을 조성하는 용어로 표현된 것이 빨갱이다. 흔히 조선 인민 유격대라고 부르며, 남부군이나 공비, 공산 게릴라라는 표현도 사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빨치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공산당의 상징 색상인 빨간색이 쉽게 연상되는 '빨'자로 시작하다 보니 저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더군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을 거라, 주인공 아리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책 여기저기서 빨치산 딸의 고충이 드러납니다.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바람에 함께 놀아주던 다정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연좌제 때문에 아무리 공부해도 미래는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누구 앞에서도 힘들다는 말을 해본 적도 울어본 적도 없다는 게 빨치산 딸의 본질이라 주장합니다. 누군가 빨갱이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두기도 필요했고요. 저라도 아버지를 원망했을 겁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아리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아버지를 제대로 알게 되고, 자신도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헤쳐 모여 하듯 달려온 사람들에게서 아버지의 뚜렷한 존재를 봅니다. 어린 시절의 아리와 함께 놀아주지 못한 사회주의자 아버지였지만, 세대와 세상을 아우르며 목숨을 걸고 사회를 혁명하려고 노력했던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아버지의 해방일지》 중에서
올 4월에 어머니를 떠나보냈기에 아리의 심정에 더욱 공감했습니다. 저는 빨치산의 딸도 아니었고, 코로나로 조문객이 많지 않았고, 어머니와 관계도 좋았습니다. 다만 상을 치르고, 친척과 손님을 맞이하고, 화장장에 가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은 동일했습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친구들이 아버지를 끝까지 지키고 기억하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자신의 비극이 빨치산의 딸이어서가 아니라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비극의 출발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텐데 말이지요.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라던 작가 아버지의 십팔번처럼 자비의 마음으로 쉰내 나는 삶을 꾸려나가고 싶습니다. 제 장례식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합니다. 한두 명이라도 저를 기억하고 찾아준다면 감사하겠지요.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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