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가?
2016년 5월 한국 문학계에서는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소설가 한강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것이다. TV나 신문에서 앞뒤를 다투어 보도하는데, 화장기 없는 피곤한 모습의 작가는 담담하게 인터뷰했다. 나는 《채식주의자 》소설도 읽지 않았고 작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지만 그녀가 마냥 부러웠다. 그녀의 수수한 모습이 진정성있는 작가처럼 보였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그녀의 인터뷰 내용 중 하나는 행복에 관한 것이었다.
질문: 지금까지 살면서 오늘이 가장 기쁜 날인가?
답변: 오늘만큼 또는 그보다 기쁜 날도 있었다. 행복이란 아주 개인적인 것이고, 기쁨은 개인적인 순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행복에 관한 그녀의 소신 있는 발언은 큰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그래 행복이란 아주 개인적이고, 기쁨은 개인적인 순간에서 얻는 거야.'
사람들은 흔히 돈과 행복을 연결하여 상상한다.
'부자가 되면 행복하겠지?'
'돈을 더 많이 벌면 행복하겠지?'
'지금보다 조금만 더 넓은 집에 살면 행복하겠지?'
혹은 고통스럽게 하고 있던 일이 끝나면 행복할 거라 믿는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면 행복하겠지?'
'대학원 졸업하고 석사학위 취득하면 행복하겠지?'
엄마의 행복 잣대는 점점 올라간다.
'건강한 아이만 태어나도 행복하겠다.'
'공부만 잘하면 행복하겠다.'
'좋은 대학만 가도 행복하겠다.'
'좋은 직장에 취직되면 행복하겠다.'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면 행복하겠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기대했던 것을 충족하면 그다음 단계의 욕심이 생긴다. 막상 그렇게 바라던 일도 성취하는 순간 허무함을 느낀다. '이 순간을 위해 내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었던 것인가?' 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행복은 추구하는 게 아니라 허용하는 것이다. 계속 파랑새만 쫓아갈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받아들여야 한다. 큰 성취라기보다는 순간의 기쁨을 누적해 나가야 한다.
덴마크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전 세계 1위다. 《휘게 라이프》의 저자 마이크 비킹은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 비결은 ‘휘게(Hygge)’라고 한다. 휘게는 편안함, 따뜻함, 친밀함, 단란함을 의미하는 노르웨이 단어다. 책에서 제시하는 휘게 10 계명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10 계명은 순간에 충실하고, 감사하고, 나 보다는 우리를 강조한다. 특히 "우리는 이미 당신을 좋아한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크게 다가온다. 어떻게 하든,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좋아한다니 감사한 일이 아닌가?
나에게도 기쁨의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은 휘게 10 계명에 닿아있다. 《몰입의 즐거움》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사람이 몰입하는 순간과 기분상태를 확인하려고, 실험 대상자들에게 하루 10회의 알람을 주어 기록하게 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행복한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생각날 때마다 기록한다. 그리고 가끔 기록을 보면서 행복한 순간을 되살리고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각한다. 그리고 그 순간 행복함에 감사한다. 이렇게 기록하고, 다시 읽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면서 정리한 행복의 순간은 다음과 같다.
▶ 아침에 출근 준비하기: 출근할 회사가 있어 감사하다.
▶ 아침에 신문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하기: 신문기사를 통해 사고가 확장, 연결되어 즐겁다.
▶ 회사 점심시간에 동료와의 대화: 직장을 다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 출장 혹은 여행: 여행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일탈이다. 강제로 쉴 수 있는 기회다.
▶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 '내가 그래도 쓸데가 있는 사람이구나'는 느낌(자기효능감)은 나의 존재 이유다.
▶ 산책: 산책은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제공한다. 건강해서 감사하다.
▶ 요가 수업 종료 시: 항상 건강 주심에 감사하고 내 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 계획을 세우는 순간: 이 순간만큼은 뭐든 계획대로 잘 될 것 같은 희망에 벅차오른다.
▶ 누구를 만나든, 어떠한 일을 하든 배움의 순간을 느낄 때: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에 감사하다.
▶ 조용한 공간에서 독서할 때: 독서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나를 찾을 때: 엄마로서 존재 이유다.
▶ 주말의 집안 청소: 청소만큼 만족감과 행복을 주는 일은 없다. 청소 후 거실을 걸을 때 뽀드득한 느낌은 삶은 빨래를 햇볕에 너는 것처럼 개운하고 행복하다.
▶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 홀로 시간을 보낼 때: 가끔 혼자만의 시간은 사치와 같은 행복이다.
최근 행복한 순간이 하나 추가되었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통한 소통이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학습하고 소통한다. 함께 공동의 목표를 항해 격려하고 합평하면서 나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에 기쁘다. 글쓰기뿐 아니라 독서, 필사도 온라인으로 함께 하는데 평생 심심하지는 않겠다는 희망에 행복하다. 이렇게 많은 순간의 기쁨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한 마음으로 오늘을 시작한다.
출처:
《휘게 라이프》 마이크 비킹 저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저
조선닷컴 한강 작가 인터뷰 (2016.5.18): 한국에 훌륭한 작가 많아…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낯설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