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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8시간전

막차를 놓쳤더라도
첫차는 금방 온다

2부. 진로와 사랑의 공통점


#13. 막차를 놓쳤더라도 첫차는 금방 온다



  혹시 사표를 내본적이 있는가. 아니면 오래 준비한 진로를 접어본 적이 있는가.

 물론 그때 당시에는 오래 준비한 진로를 내려놓는 이유도,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냈던 이유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고, 정말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겠다는 결심과 설렘을 느꼈을수도 있다. 


 지금까지 실업과 불황이 뉴스에서 나온 적은 있어도, 대규모 고용과 경제 호황을 느껴본 적이 없듯. 새로운 분야에서의 취준과 이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면 굳은 결심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지난 번에 내가 놓아버린 선택지가 나의 막차가 아니었을까 하는 불안감이 올라오게 된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특히나 정말로 사랑했던 관계에서 이별을 할수록. 이 사랑이 나에게 마지막이면 어떡하지.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 

 ‘그 사람이 나의 마지막 인연이라면 어떡하지’, ‘내 손으로 그 기회를 버린 것이 아닐까’, ‘다시 붙잡아야 할까’, ‘받아주지 않는다면 매달려볼까’


 폭풍같은 연애를 끝내고 실연의 상처로 괴로워하던 사촌동생을 향해, 지하철 공사에 다니는 이모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힘들지? 그래도 차 놓쳐도 금방 다음 차 온다. 무리해서 뛰지 말아라”


 “근데 만약 지금 게 막차였으면요?”


 “막차 놓쳐도 첫 차 금방 온다. 오늘만 살 거 아니잖아”


 추운 겨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고, 사촌 동생에게도 봄은 다시 찾아왔다.



 ‘통금이 없는 대신, 다음날 아침 먹기 전까지 반드시 집에 들어오기’


 대학생 때 우리집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택시비를 감당하기에는 주머니가 여의치 않은 대학생이었기에. 나는 학교 정문에서 출발하는 막차를 종종 애용했었다.

 그런데  집과 학교가 꽤나 멀었고 아직 심야버스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신데렐라처럼 12시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달아오르는 술자리 분위기에서 5분만 더, 5분만 더를 외치다가 막차를 놓쳐본 경험도 종종 있었다.


 택시를 타야할지, 아니면 집에서 좀 거리가 먼 돌아돌아가는 버스를 탄 뒤 집까지 걸어가는 것을 선택할지. 이미 막차가 떠난 버스 정류장에서 치열한 고민을 했던 기억이난다. 혼자 남은 정류장에서 ‘아까 자리에서 조금 더 일찍 일어날껄’, ‘시간 계산을 좀 더 잘할 껄’, ‘이렇게 애매할거면, 차라리 좀 더 놀고 택시를 탈 껄’하는 후회를 쌓아가곤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막차는 떠났고. 이 밤을 잘 버티며 첫차를 기다려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그래도 명백한 사실은 동은 튼다는 것이고. 첫차는 다시 온다는 것이다.



 같이 밤을 세 줄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긴 밤을 그 추위를 그리고 그 외로움을 버텨야 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좀 더 좋은 선택을 했다면, 미리 준비를 했다면, 집이 가까웠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다음 차를 오롯이 견딜 뿐.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와 맞는 진로 나와 맞는 사랑은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막차를 놓치고 첫차를 기다리는 지리한 과정 속에서 나에 대해 고민하며 나의 취향을 더 잘 알게 될 수도 있고. 너무 과도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를 통해 현실감각을 찾아나갈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은 어느 정류장에 앉아있는가. 혹시 울고 있지는 않은가.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동은 트고, 첫 차는 다시 온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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