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취업이 어려운 고물가 시대에 퇴사를 결심했다면, 크던 작던 모두에게는 그때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일주일만에 만난 전 직장동료의 피부가 밝아져있고, 소화불량과 허리통증이 사라지고 불면증 없이 늦잠을 잤다는 소리만 들어봐도. 현대사회에서 퇴사만큼 효과 좋은 만병통치약도 없다.
그러나 재벌집 자녀가 아닌 이상, 퇴사자는 곧 구직자로 이름을 달리하게 된다. “내가 어디 입사를 못하겠어?”라는 마음이 “제발 어디든 붙여만 줬으면”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던 외국계 회사를 호기롭게 뛰쳐나오고, 나는 꽤나 의기양양해있었다. 이번에도 다른 사람들한테 내세울만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몇 달간의 휴식 후, 나는 다시 채용 사이트를 접속했다. 해가 갈수록 채용 공고는 줄어들고, 공개채용보다는 수시채용이 늘어가고 있었다.
수시채용의 경우 공식적인 일정이 없기 때문에 서류의 합격 여부도 알려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대충 보름 정도를 기다려보라는 말에, 계속 서류를 넣고 기다리고를 반복했으나 어떤 곳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조급해 하지말자”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이면서도, 내 서류가 누락된건 아닌지. 아니면 정말 서류조차 통과되지 않을 정도로 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인지. 만약 나에게 무슨 결함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지.
수 많은 물음표와 불안감이 나를 뒤덮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자소서를 쓰고 이미 제출했던 공고가 마감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취준이 길어질수록, 처음에 가졌던 여유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백수가 제일 바쁘다고 했던가. 퇴사를 하니 만나야 할 사람은 많고, 돈 들어갈 곳은 어찌나 많은지. 통장 잔고는 빠르게 줄어드는 반면, 공백기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채용 시장에서의 불안은 과거에 대한 미화로 이어졌다.
“그 회사만한 곳이 없지 않았을까”
“그정도 되는 곳에 절대 다시는 못가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다시 연락해보면 어떨까”
인사 담당자의 카톡창을 매일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나는 엄청난 마음 속 소용돌이를 경험하고 있었다.
후폭풍이었다.
퇴사 후의 감정은 이별 후에 느껴지는 감정과 비슷하다.
물론 전 애인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아주 개운한 이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애의 욕구가 있는 상황에서 공백기가 늘어가기 시작한다면, 혹은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성이 차지 않는다면. 높은 확률로 전 애인에 대한 미화와 그 관계를 괜히 끝내버렸다는 후회, 그리고 그 사람이 내가 만날 수 있는 최선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불안.
다시말해 후폭풍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다. 그때는 분명히 이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지금 돌이켜본다면 비합리적일수도, 감정에 치우쳤거나, 오만한 생각이었을 수 있다. 아니면 정말로 몸과 마음이 지쳐서 다른 좋은 점을 볼 겨를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확실한 이유이던, 어린날의 치기이던간에 이별한 것은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말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상대를 떠나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지만 다시 관계를 회복한다는 건 나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구직이 장기화되던 어느날, 나는 며칠동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장문의 카톡을 인사담당자에게 보냈다. 안부를 빙자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문장들이었다.
나의 안부를 물으며 돌아왔던 문장들에는 다음 인연이 있다면 만나자는 따뜻하면서도 단호함이 배어있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이자, 꽉 닫힌 이별을 했고. 나의 선택을 다시 한 번 받아들였다.
아픈 이별이자 긴 후폭풍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때 그 사람이 나의 최선은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했던 이별의 이유를 되짚으며, 나는 내가 무엇을 견디기 힘들어하는지 깨달았고. 아팠던 이별의 과정을 통해 겸손함과 감사함을 배웠다.
연극이라는 짝사랑과 남들이 다 알아주는 회사와의 이별이라는 과정을 모두 겪어 냈기 때문에, 나는 심리상담이라는 분야를 만났을때 더 그 공부를 사랑할 수 있었고 내담자를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꼈다.
이 시련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나의 일을 이만큼 사랑하고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도 혹시 과거의 그 사람이 최선이라고 여기고 있는가.
당신은 그 관계에서 무엇이 힘들었고,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아팠던 이별만큼 당신에게 더 만족을 주는 다음이 만날 수 있을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