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또 다른 이별이 있다. 내가 먼저 상대의 손을 놓는 이별이 있다면, 상대가 너무 좋아 매달리듯 시작한 사랑에서 결국 결실을 맞이하지 못하는 이별도 있다. 전자가 퇴사라면, 후자는 오랫동안 준비했던 진로를 포기하는 과정이다.
오래된 사랑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준비했던 시험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예체능의 영역에서 결국 프로가 되지 못하는 것 일수도 있다.
영역은 다를지라도 이들의 공통점은, 결국 어느 순간에는 이 사랑에 끝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 사랑에 대해 쉽게 숟가락을 얹기도 한다. 누군가는 조금만 더 문을 두드려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포기하는 것 역시 용기라는 말을 더한다. 그러나 이미 오랜 사랑에 지친 사람들이 그 말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이 사랑을 지속하기에는 얼마나 많은 힘이 드는지 알고, 그렇다고 이 사랑을 포기하기에는 함께한 시간이 이미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물론 다를 수 있겠지만, 장기 연애를 했다는 것은 오랫동안 나의 세상 그리고 나의 인간관계가 상대에 맞춰져있음을 의미한다.
진로 역시 이와 동일하다. 오래 준비했던 진로, 특히 혼자 고립되어 준비해나간 시간이 길수록 나의 세상과 나의 인간관계는 그 진로에 맞춰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몇 번의 시험을 쳤을 뿐인데, 달력 몇 개가 쌓여간다. 나는 이 자리에서 똑같은데, 같은 주제로 웃고 떠들었던 친구들은 대리를 달고 차를 사고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분명 노력을 안하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니었는데, 나만 홀로 남겨져있는 기분. 더이상 동일 선상에 함께 서있지 않다는 우울감.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과,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무기력감.
너무나도 아픈 이별이자 실연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연극이었다. 큰 공연장에서 나의 작품을 올리는 예술가인 나의 모습을 오랫동안 상상했었다.
이처럼 미래를 그린다는 건, 사랑 뿐만 아니라 진로에서도 가능하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와의 미래를 그려가는 것. 그것이 오랫동안 준비했던 진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런 진로를 정리한다는 것은, 미래를 그려본 연인과 헤어지는 것과 다름 없다. 심지어 돌이켜보니 나만 진심이었던 관계, 상대에게는 전혀 타격이 없어보이는 이별, 심지어는 다른 대상과 더 행복해보이는, 최악의 이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 때 필요한 것이 애도작업이다.
우리가 애도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진로에서 애도라는 표현을 쓰는 건 너무나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에서 애도란 죽은 대상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애도란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종류에 상실에서 필요한 반응이며, 상실감을 수용하며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하는 것을 돕는 걸 의미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말하는 애도의 4가지 과정은 다음과 같다.
1.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2. 상실로 인한 고통을 충분히 경험하기 3. 대상이 없는 환경에 적응하기 4. 대상과의 관계를 재배치하고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기
그 진로를 달성했을 내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상실감, 좌절감, 우울감, 후회 등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준비를 하지 않는 새로운 환경의 나에게 적응하고 새로운 삶을, 나의 일상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이별의 방식이면서, 나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사랑이 끝났다고, 내 삶이 끝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물론 내 모든 것이 부서진 것 같은 고통을 주는 이별도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부서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오랜 시험 준비를 끝내고, 새로운 출발선에 선 내담자에게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내가 얼마나 상대를 사랑하고 원했어요. 그 대상과 먼 미래까지 생각하고, 내가 어떤 모습으로 될지까지 생각했던 존재였는데, 그 존재가 상실된거죠. 상흔이 있을 수 밖에 없어요. 정말로 사랑했으니까. 지금 당장은 실패라는 말보다는 ‘나에게 이 이별이 참 힘들구나’, ‘그게 너무나도 힘든게 당연하구나’, ‘나에게 시간이 필요하지’라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그 긴 과정을 거쳐 오느랴 고생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