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라는 존재에 대해 외로운 짝사랑을 해나가고 있을때,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었다.
“그래도 넌 좋겠다. 넌 좋아하는게 있잖아”
그러나 내 짝사랑의 결말을 아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나는 그렇게 대단한 실력을 가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내던지고 뛰어들만큼의 용기 혹은 무모함을 가지지 못했었다.
자신만만하던 내 글은 떨어지고, 재미 없다고 느꼈던 다른 사람의 글이 최종에서 붙는 것을 지켜본 어느 날. 결정을 해야하는 순간이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좋아하는 일에서, 나는 잘하지 못하는구나”
서로 사랑을 할 줄 알았던 대상으로부터, 최종 결말이 짝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와 함께 할 미래를 생각하며, 나의 커리어는 이미 너덜너덜해져있었고. 재미있는 것에 한 번 매혹되봤다고,다른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중증 환자가 되어있었다.
그때 내가 빠졌던 함정은 “일은 자아실현의 도구이며, 자아실현을 하는 것만이 진정한 일이다”라는 편협한 생각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때만 하더라도, 직업은 자아실현의 도구라고 배웠으며 나의 흥미와 적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배웠었다.
미디어에서도 일찍이 자신의 천직을 찾아 그 분야에서 탑이 된 사람들을 보여주거나, 긴 무명을 거쳐 마침내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서 꽃을 피운 사람들을 주목했다.
때문에 진로 상담에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정말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찾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랑에 비유해본다면. 첫눈에 반하는 사랑. 매 순간 심장이 뛰는 사랑을 만나는 것이 정말로 흔한 일인가. 만약 그 대상을 운 좋게 만났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 불타는 사랑이 그렇게 흔한 일이라면 세상에 격정 멜로 드라마와 영화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희귀한 그 만남과 사랑을 기다리고 쫓느랴, 제대로 된 커리어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거나 나처럼 잦은 이직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가. 세상에 당신이 없으면 죽을 것만 같은, 위험할지도 모르는 격정적인 사랑을 해보고 싶은가.
아니면 나와 맞는 평범한 사람과 평범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편안한 사랑을 하고 싶은가.
누군가에게 일은 자아실현의 도구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직업은 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돕는 도구이다.
때문에 직업에서 ‘흥미, 적성, 열정’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유능감’이라는 감각이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혹은 남들보다 에너지를 덜 쓰고도 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유능함을 느낄 수 있는 분야와 활동은 무엇인가. 일에서 꼭 자아를 찾을 필요가 없다면, 일에서 유능함을 찾고 나의 자아와 즐거움은 일과 시간 밖에서 찾을 수 있다.
꼭 일이 나일 필요도, 일에서 나의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다.
연극이라는 긴 짝사랑에서 벗어나 상담사가 된 후. 일에서의 나와 꿈을 쫓는 나를 분리하는 작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