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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Oct 25. 2024

나는 누구를 좋아하는가

2부. 진로와 사랑의 공통점


#8. 나는 누구를 좋아하는가


 네모의 함정에서 잘 빠져나왔는가. 그렇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원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좋은 사람을 원하는지 갈래가 잡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는  ‘그래서 나는 누구를 좋아하는가’ , 더 나아가‘ 나는 누구를 원하는가?’이다.


 나의 이십대 중후반은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해멨던 투쟁의 시간이었다. 그러다보니 연애는 나에게 당면한 과제가 아니었고, 당장 어떻게 먹고살아야할지 앞이 깜깜했던 상황에서 연애는 사치재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는 코로나와 석사 과정이라는 아주 좋은 핑곗거리도 있었다. 치열했던 시간을 거쳐 나는 석사를 끝냈고, 코로나도 종식이 되어가자, 나도 모르게 작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싶다.


 상담사 자격증을 따던 그 해, 나의 목표는 5개였다. 논문, 졸업, 자격취득, 취업 그리고 연애. 9월이 되기도 전에 3개의 목표를 달성한 나에게 남은 것은 일과 사랑이었다. 2년간 나를 지도해주셨던 선생님으로부터 숙제를 받은 것도 그때였다.


“올해가 가기 전까지 남녀 성비가 비슷한 모임에 가입해서 한 번 이상 나갔다 오기”



 마침, 상담업계는 여초인데다 좋아하는 취미 역시도 혼자 책을 읽거나 여자들이 많아 어쩔 수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던 참이었다. 대학교 졸업 후 잦은 입퇴사와 여초 회사, 소규모 회사 근무로 나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데 많은 겁을 먹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가 소모임들을 알아보고 난생처음 일이나 학업이라는 구체적인 명분 없이 모임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의 숙제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직업과 일터를 거쳐왔다고 자부했지만, 모임을 통해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세계를 넘어 정말로 다양했다. 같은 대학교, 같은 직장에서는 비교적 유사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직업도, 사는 곳도 심지어는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인생에서 첫 소개팅을 했던 시기도 그 때였다. 새롭게 친해진 여자친구들은 소개팅을 주선한다며 나에게 이상형을 물어봤다.



“그냥 착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요”


“아니 그런 거 말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제서야 나는 연애를 하고 싶다고는 했지만,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은건지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돈도 잘벌고, 직업도 좋고, 서울에 거주하는데다가 다정하고 책임감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엔 그런 사람이 없을 뿐더러, 있더라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수 회의 소개팅이 실패로 끝나고, 모임에서도 친한 언니동생들만 늘어가던 어느날. 정말 내가 원하는 누군가와 만나기를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명확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일에서 자신의 분야가 있고, 대화가 잘 통하며 긍정적인 사람.


 남들이 좋다는 가치와 조건 보다도, 내가 원하는 가치와 조건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에 맞는 상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었다.





 나의 일을 찾아가는 과정 역시 이와 동일하다. 연봉, 워라벨, 적성, 흥미, 사회적 위치, 인정, 안정성 등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일을 찾는다면야 너무 좋겠지만. 모든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나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순서를 매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나의 인생이 아니라 나의 직업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나는 어세스타에서 나온 직업 가치 카드 작업을 추천한다. 이것은 인정, 성취, 일과 생활의 균형, 안정성, 소속감, 금전적 보상 등 45장의 다양한 직업 가치를 눈으로 보며, 매우 중요, 중요, 보통, 중요치 않음, 매우 중요치 않음으로 이를 분류하는 작업이다. 만약 매우 중요에 너무 많은 카드가 놓인다면, 이것을 8가지로 추려보고. 마지막에는 8가지 직업 가치를 다시 중요한 순서대로 나열하며 나에게 가장 중요한 직업 가치는 무엇일지를 이해할 수 있다. 진로 상담 장면에서 직업 가치 카드 작업을 통해 내담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고려하고 있는 직업 선택지들을 평가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떤 기준으로 직업들을 새롭게 고려해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상담사로 진로를 변경하면서, 나 역시도 직업 가치카드를 펼쳐 놓으며 나의 직업 가치를 정리했던 적이 있었다. 재미있게도, 나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는 <일과 생활의 균형/금전적 보상/전문성/시간적 자유/인정/가족>이었고. 매우 중요치 않은 가치는 <높은 수입/예술적 독창성/팀 업무/심미성/경쟁>이었다. 누군가는 상담사라는 직업이 들여야 하는 노력에 비해 처우가 낮고 불안정한 직업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퇴근 시간이 잘 보장되고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 있는 직업에 대한 만족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일과 시간 외에는 업무 연락이 오지 않는 특성상, 퇴근 후에는 내가 꿈꿔왔던 창작자로서의 시간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일에는 ‘예술적 독창성’과 ‘심미성’을 추구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퇴근 후에 나의 개인 시간에서 충분히 채워나갈 수 있었고. ‘일과 생활의 균형’, ‘시간적 자유’가 보장되는 본업이 이를 보완해줄 수 있었다.


 그 전까지 나의 이직은 정반대의 과정이었다.



“워라벨은 참 좋은데, 월급이 너무 짜”, “사람들이 엄청 알아주기는 하는데, 일이 적성에 안 맞아”, “일 자체는 너무 보람이 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를 않네”.


그때의 나는 동화속 왕자님을 찾는 어린 아이처럼, 완벽한 육각형의 일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환상을 깨는 것.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이해하고, 나만의 기준으로 정말 나에게 맞는 일과 사랑을 찾는 것. 다섯번의 실패를 겪고서야 깨달았던 정말 단순하고도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진로에서 나는 무엇을 높은 가치로 여기는지. 어떤 것을 일에서 추구할 것이며 어떤 것을 일과가 끝난 나의 삶에서 추구할 것인지를 아는 힘.

 그것이 바로 진로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인지.



 당신은 그 답을 잘 찾아나가기를 바란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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