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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Oct 24. 2024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네모의 함정

2부. 진로와 사랑의 공통점


#7.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네모의 함정


그 다음으로 내가 빠졌던 함정은 ‘남들의 시선’이었다. 첫 직장을 가진 이후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그래서 어디에서 일해?’였다. 잦은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주변 친척들과 친구들은 내 소속을 항상 궁금해했고. 그때마다 나는 갓 나온 명함을 건네며 내가 마냥 놀고 있지 않음을 증명해갔다.


사회인이 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사회에서는 가로 9cm 세로 5cm 정도밖에 안되는 그 작은 네모로 나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확히는 그 네모칸 이상의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예술을 사랑하고, 농담을 좋아하고, 여행지에서 2만보도 거뜬하게 걸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세상은 환산할 수 없는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네모 안에 나는 단지 서울 어딘가에 위치한 어떤 사무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가 정갈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 네모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네모는 아무런 설명이 필요하지 않지만, 어떤 네모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명한 외국계 기업을 다녔을 때였다. 사람들은 나의 사원증을 모두 보고싶어했다.


 “와, 그 어려운데를 어떻게 들어갔어” “거기는 밥이 어떻게 나와?” “직원 할인도 돼?” “와 좋은데 다니네!”



사람들은 내가 누리고 있는 복지가 무엇인지, 근무 환경은 어떻게 되는지에 관심을 보일 뿐. 그 이상의 것들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남들이 다 아는 기업에서 일을 한다는 것. 회사 이름 세글자 만으로 나는 더이상 그 무엇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사원증이 걸려있던 나의 목은 빳빳했고, 별다른 노력 없이도 어깨가 쉽게 펴지는 느낌이 들던 시기였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눈물이 참 많았던 시기였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취업으로 나는 하루에 4시간을 출퇴근에 쓰며 하루가 다르게 지쳐가기 시작했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에 혼란감을 느낌에 동시에 유일하게 있는 동료와도 원활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그때 내 기준으로 많은 월급과 회사의 이름이 주었던 묘한 우월감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던 어느날, 나는 갑자기 손을 쓸 수 없이 나빠진 건강을 핑계삼아 도망치듯 그 커다란 회사를 뛰쳐나왔다.


 내 손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때, 나에게는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하고 있었다. “회사의 네임벨류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마음 편하게 일 할 수 있는게 최고의 직장이야” 그러면서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그정도 회사는 다시 들어갈 수 있어”


오만한 생각이었다.



일이 나에게 맞고 마음이 맞는 동료가 있는 편한 직장.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의 꼬마 빌라에 다시 내 책상을 갖게 되었다. 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였다. 정말 의미있는 일이었다. 불의의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사회의 마지막 안전망이 되어주는 일. 그래서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다시 힘을 얻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원하는 일. 보람만 있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어느때보다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스스로도 많은 자부심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 네모에는 보람과 성취가 채 담기지 못했다.



 “여기는 뭐하는데야?” “아 이런데도 있었어?” “여기서 계속 일할 건 아니지?”



작디작은 연봉. 거의 없다 싶이 한 복지. 허름한 꼬마 빌딩에 남녀 공용으로 있던 낡은 화장실. 각자의 자리에서 연차와 연봉을 쌓아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해외여행, 신차 구입, 본가로부터의 독립 그 어떤 주제에도 쉽게 껴들지 못하고 조금씩 위축되어갔다. 조금씩 쌓여간 열등감은 일에 대한 불만과 소진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나의 직장을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끝은 또 다시 퇴사였다.



진로 상담 장면에서, 나는 많은 내담자들에게 직장을 애인과 비교하곤 한다. 직장과 애인은 곧 내가 아니지만, 직장과 애인은 생긴 순간부터 주변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수 많은 질문세례로 이어진다. 뭐 하는 사람인지, 어디에 사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고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 한 장으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애인도 있고, 직업이나 다른 조건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애인도 있다. 그렇지만 연인관계의 일은 그 둘 밖에 모르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처럼, 남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에게는 정말로 좋은 애인일 수 있다.


누군가는 사랑에도 조건이 중요하다며 상대의 스펙을 따지라고 조언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할 수도 있다. 진로 역시도 그렇다. 사회에서 이름난 기업에서, 좋은 연봉과 복지를 누리는게 제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의 흥미와 적성을 살리며 즐겁게 일하는 게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충되는 수 많은 조언들 속에서 결국 선택을 해야하는 사람은 바로 ‘나’이다.


조건도 좋으면서 마음에 끌림까지 있는 존재를 만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두 가지 중에 하나에 더욱 무게 추를 놓아야 한다. 이것이 진로 상담 장면에서 많은 내담자들이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그 일이 마음에 드는데, 가족들이, 친구들이, 친척들이, 다른 사람들이 안 좋게 보지 않을까


“조건은 참 좋은 것 같고, 붙여주기만 한다면 다들 부러워할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끌리지가 않지”


진로 상담사로서, 나는 이 질문에서 가장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명이 필요 없는 네모와 설명이 필요한 네모. 두 가지 모두를 가져본 사람으로서, 사회적으로 알아주는 조직에서 주는 안락함과 인정은 무시할 수 없고.

그러면서도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역시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이해한다.


다만, 이 역시도 선택이다. 나는 그 정도 조건이면 사랑하지 않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어떤 조건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인지.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인정할 것이 있다면 당당하게 인정하고. 나에게 맞는 상대를 찾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어떤 네모를 갖고 싶은가. 그 네모로부터 무엇을 얻고 싶은가.


 당신만의 네모를 잘 찾기를 바란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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