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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효이재 Sep 04. 2022

0 욕망하는 인간: 인간은 추구하고 갈망하는 존재다.

추구하는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

카니발, 거위의 꿈

삶에 있어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것도 견딜 수 있다.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 그리고 니체Friedrich Nietzsche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때로는 그 갈망함으로 인해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고통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갈망은 그러한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강제수용소 생활을 겪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대부분의 가능성이 상실된 환경을 맞이합니다.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욕구들이 여기서는 철저히 박탈당합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진 자유 중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빅터 프랭클이 찾아낸 답은 ‘목적’ 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홀로코스트 경험을 정신분석 학자의 시선에서 풀어낸 에세이『죽음의 수용소』에서 ‘추구하는 자유’에 대해 말합니다.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응당 그 시련 속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습니다. 그리고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인간이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자유입니다.


 그런데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또 때에 따라 다릅니다. 당연하게도 우리의 삶이 매번 ‘죽음의 수용소’와 같은 처절한 상황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의미’, ‘목적’을 정의하는 것은 어리석을 것입니다.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와 목적은 각자의 사상, 생각, 처한 환경 등에 따라 개별적으로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혹은 어떤 조직도 자신의 운명을 타자의 것과 동등히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각각의 목적은 독자성을 갖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에게 ‘진실한 목적’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아가 그것의 현실화를 위한 실천적인 목표를 구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좀 더 노력해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뜨거운 감성과 차가운 이성이 복잡하게 뒤얽힌 ‘열망하고 추구하는 힘’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이고 다 차원적인 시선으로 이해해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 나아가 우리에게 좀 더 가치 있는 의미,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과 프로세스를 관리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꿈은 언제까지나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사람은.. 구원된다’ 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무언가를 정당하게 추구하는 한 우리의 삶에서 궁극적인 패배는 없기 때문입니다.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들의 싸움이 가망 없을지라도, 그것이 삶의 존엄성과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 다는 확신 속에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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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ary


 '호모 디그누스 X 초개인주의(Over Individualism)'과 연계해서 '호모 쿠피두스 X 목표의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전하려 합니다.


 인간이 기계/알고리즘과 본질적으로 다른 지점은 '마음'이 존재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인간 엔지니어링의 관점에서 우리의 '마음'은 때로 오류와 불확실성을 낳는 불편한 Factor일 수 있지만 사실 인간의 마음은 지금까지 이뤄진 인류의 모든 진보와 혁신을 이끈 동력 중의 동력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는 기술조차도 사실은 우리의 추구와 열망에 비롯한 산물일테니까요


 한편, 최근 경영, 조직관리에 다시한번 OKR과 같은 '목표관리'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다만 조금 경계하게 되는 것은 OKR과 같은 목표관리가 또다시 어떤 조직관리, 경영의 '단순한 정답'처럼 홍보되고 이를 따라하기만 하면 성공이 보장된 '기술/공식화된 방법론' 처럼 여겨지는 현상입니다.


 '호모 디그누스 X 초개인주의(Over Individualism)'이 - '우리가 처한 세상을 바로보고 우리 자신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그에 맞는 조직관리, 경영을 해야한다' - 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복잡계), 그리고 우리 자신(Over_Individual, 초개인), 그에 비롯한 조직관리/경영의 대원칙을 다룬다면 '호모 쿠피두스 X 목표의 과학'은 조금 더 구체적인 조직관리의 한 영역으로서의 '목표/목표관리'를 '호모 디그누스 X 초개인주의(Over Individualism)'에서 제시한 관점과 연결해 재조망/해석해보고, 그 온전한 맥락을 전해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다시말해 우리는 기업의 목표관리가 많은 기업/경영자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기술적 방법, 엔지니어링의 철학을 담은 산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연장선상에서 순전히 '기술'로 KPI나 OKR같은 목표관리가 다뤄지고 있죠)  인간의 '마음'에 비롯한 '추구하는 자유'와 맞닿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속성과 상호작용의 맥락을 온전히 이해해야 목표관리를 위한 구체적 기술/방법론 역시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이야기에도 부디 많은 관심과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Book: 상효이재, 초개인주의 Over-Individualism, 한스미디어, 2022

장재웅, 상효이재, [네이키드 애자일] , 미래의 창,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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