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5월, Issue 1_4차산업혁명시대, 조직문화개선 방법론 원문
본 글은 완전히 새로운 글은 아닙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측 요청에 따라 기존 '당신의 조직이 문화를 결코 바꿀 수 없는 이유'를 '4차산업 혁명'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연계해 설명한 일종의 변형본입니다. 최종본은 동아비즈니스리뷰 본디 스타일을 준용해 핵심내용 중심의 군더더기 없는 편집 버전이 실렸습니다. (최종본이 궁금하신 분은 동아비즈니스리뷰 5월 Issue 1호 '조직문화개선방법론'을 살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 글은 편집 전 버전으로 '군더더기'가 많이 붙어 있습니다. 조직의 부조리한 현실을 환기하고, 조직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일종의 '작가판 원문'을 브런치를 통해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편집본과 비교하며 읽어보셔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조직'의 첫번째 집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만이 아니라 全 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의견보다 관심을 줄 수 있는가? 살아 있는, 가치있는 '조직'을 추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구성원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Terry Tempest Williams, 'Engagement'[i] 응용('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조직'이라는 단어로 대체)-
1940년대 후반, 북아프리가 알레리의 소도시 오랑에 전염병이 찾아왔다.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진찰실을 나서다 계단 통로 한복판에서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했다. 재앙의 서막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죽은 쥐들의 수는 늘어났다. 4월 25일 하루동안 6231마리가 수거, 소각되었다. 그들이 자취를 감추는 순간. 똑 같은 일들이 인간에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전염의 원인도 제대로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감염되었다. 4월에 시작된 전염병은 가을이 되자 도시 전체로 퍼졌다. 재앙으로 감염된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원인모를 전염병에 대응해야 했다.[ii]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일부 내용이다. 초기 등장인물의 대응방식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관념적 담론가’ 유형이다. 그 전형은 파늘루 신부다. 신부는 성당 미사에서 전염병이 신의 ‘징벌’임을 역설하면서 인간이 비로소 ‘회개’할 때가 왔다고 주장한다. 그의 메시지는 거대하지만 정작 마을 주민들의 생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두번째는 기자 랑베르로 상징되는 ‘도피적 관망자’ 유형이다. 그는 오랑에서 일어난 사태가 자신과는 상관 없는 일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기다리는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길을 백방으로 모색한다.
세번째는 의사 리유와 타루로 대변되는 ‘이타적 현실주의자’ 유형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보다 공동의 생존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발생한 문제에 끊임없이 직면해 전염의 원인에 대한 추적과 치료를 반복한다. 그들에게 ‘관념’과 ‘도피’는 똑같이 비겁할 뿐이다.
마지막 네번째는 ‘명명’되지 않은 익명의 ‘사람들’로 대변되는 ‘두려움 속 갈대’ 유형이다. 그들은 전염과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 자기 주체적으로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못하고 주변의 프로파간다, 눈앞에 보이는 사건, 상황에 휩쓸려 우왕좌왕한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 세계 각국의 경영/경제/정치를 이끄는 두뇌집단이 모였다. 전 세계 경제 상황 개선을 논하기 위해서다. 모임의 회장 클라우드 슈밥이 화두를 던졌다. ‘4차 산업혁명(industry 4.0)’. 빅데이터, 인공지능, 유전공학 등과 같은 과학기술이 전세계를 파괴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사실 그로부터 언급된 과학기술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연구, 발전되어 오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리더십그룹의 명명은 강렬한 담론이 되어 빠르게 퍼졌다. 불과 1~2년이 채 되지 않아 스위스 로부터 약 1만km나 떨어진 한국 역시 4차산업혁명에 철저히 전염되었다. 그것이 실체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새로운 담론에 대응해야 한다.
그 전염 규모에 비할 바 아니지만, 분석의 수준을 국내로 한정한다면 조직문화라는 담론 역시 극적이다. 10년전, 말콤 그래드웰이 저서 ‘아웃라이어’를 통해 한국 항공사의 위계적 조직문화가 불러온 비극을 전세계에 해설할 당시 한해동안 6만여건 검색되던 ‘조직문화’ 키워드는 지난 한해 33만여건으로 훌쩍 뛰었다.[ii] 미디어 보도량은 그때보다 10배 이상이 되었다. 인사조직 컨설팅 필드에 있는 필자의 체감은 더하다. 좀 더 ‘효율적’인 조직관리를 찾던 고객은 어느새 ‘좀 더 나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적어도 기업리더와 구성원은 정확히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모르지만 어느새 대세가 된 조직문화에 대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페스트’에서 ‘물리적’이고 ‘나쁜 것’이라는 가치판단이 내재된 ‘질병’ 이라는 속성을 지우고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이를 ‘우리의 삶에 급속도로 퍼져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사회적) 이슈 혹은 담론’을 상징한다고 가정하자. 그리하면 카뮈의 소설을 통해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담론에 대응하는 주체들의 ‘태도’에 대한 미리보기가 가능해진다. 더욱이 이 글은 4차산업 혁명이라는 거대 담론 아래 기업의 조직문화 담론을 다루어야 하므로, 대응의 주체를 굳이 특정하자면, 기업 혹은 기업 리더 혹은 기업 구성원일 테다.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파늘루 신부인가, 랑베르인가, 리유와 타루인가, 아니면 불특정 다수의 ‘갈대’ 같은 군중인가?’
애석하게도 이 시대의 ‘리유와 타루’가 잘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는 기술과 문화라는 담론을 신격화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거나, 망칠 것처럼’ 선동하는 또다른 파늘루이거나, 이미 벌어지고 있는 기술적, 문화적 변화, 실체를 짐짓 모른체하는 랑베르이거나, 주류 유행에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수동적으로 내맡기는 군중이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판단하면, 이런 세태 속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부류는 오늘날의 ‘파늘루’ -그것도 더욱 일그러진- 이리라.
몇몇은 유능한 파늘루가 되기 위해 이미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HR의 거창한 미래를 제안한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인공지능과 클라우드를 통해 평가가 자동화될 것이라 주장한다. ‘조직 문화’마저 기술로 관리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지만 사실 이들 역시 정확히 이를 위해 기업이 어떤 인적 데이터를 쌓아야 하고 어떻게 분석하고 해석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사람에 대한 정형/비정형 데이터를 기업이 평가, 문화 자동화를 위해 모두 들여다보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이슈에 대해서는 애초 관심이 없다. 남은 것은 오직 마케팅이다.
사실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원리만 겨우 파악한) ‘머신 러닝/인공지능’을 활용해 조직 문화의 핵심을 짚어 주겠다고 제안한다. 비로소 지금까지 실패했던 조직문화를 ‘기술’로 개선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 안의 코드와 매커니즘을 투명히 공개할 마음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문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다. 다만 클라이언트 혹은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당대에 유행하는 ‘기술’,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이용할 뿐이다. 때문에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혹시라도 원하는 결과, 데이터가 나오지 않거든. 교묘히 ‘마사지’(업계 용어)하고 전문가가 도출한 결과라고 포장만 잘 하면 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상당수가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담론의 마술에 현혹되어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갑을 연 주체의 관심 역시 실체적 문화 개선보다는 첨단 기술까지 동원해 문화를 관리하고 있다는 외연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의 명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에 그친다.
그러고 보면 ‘4차 산업 혁명’과 ‘조직문화’를 소비하는 현 세태는 ‘신’과 닮은 구석이 있다.
1. 이 담론 한마디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 잡히지 않고 불투명해서 이해하기 힘들다.
3. 최고 사제들, 즉 극소수의 최상위 전문가, 권력자(리더)를 제외하고는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없다.
4. 신의 평결처럼, 무언가 잘못되거나 유해하다고 느껴져도 반박하거나 수정해 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사실, 수학자이자 데이터과학자 ‘캐시 오닐’에게서 빌린 말이다.[iv] 그녀는 수학적 알고리즘 기술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사라지고 그것이 그리는 ‘환상’에만 집중하는 현실을 걱정했다. 그 문제의식은 비단 ‘4차 산업 혁명 기술’만의 것이 아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의 문화에 대한 태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둘은 이미 위에서 언급한 ‘4차산업 트렌드를 만난 인사조직 컨설팅 시장의 군상’처럼 우리가 속한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이슈 해결의 첫걸음은 이슈를 바로 보는 것이다. 리유와 타루의 시선이 필요하다. 문제와 똑바로 마주해 그 맥락과 속성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해결방안을 지속 시도하는 것이다. 실패, 시행착오는 필연이다. '리유와 타루의 시선'에 따르면 적확한 피드백 루프가 더 나은 ‘진보’를 가져다 준다. 이쯤 되면 우리가 던져봐야 할 또 근원적 질문이 생긴다.
“대체 4차산업혁명과 조직문화는 무슨 관계인가? 왜 기업들은 ‘조직문화’를 바꾸어야 하는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 Carr-
E.H. Carr가 남긴 위대한 메세지에 따르면. 우리는 과거의 산업혁명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20세기는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위대한 진보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대다수 평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갈수록 풍요로워졌다. 장하준 교수는 ‘세탁기’의 발명이 ‘인터넷’의 발명보다 훨씬 큰 사회적 변혁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v]
그러나 이런 기술적 진보의 이면에는 끔찍함도 함께 있었다. 진보의 엔진은 노동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건강이나 안전에 관한 규제가 마련되지 않았던 석탄 광산들은 그야말로 죽음의 덫이었다. 1907년 한 해에만 3242명의 광부가 목숨을 잃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처럼, 시간표와 조립라인이 거의 모든 인간활동의 틀로 변화되었다. 이 시기 경제/경영학 역시 기술의 폭력을 정교화 시키는 역할을 했다. 주류 경제학은 분석에 인간의 감정을 배제했고, 테일러리즘으로 상징되는 경영학은 인간을 더욱 ‘정밀’하게 ‘획일’적으로 ‘효율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더욱이 그 관성은 21세기 지금까지도 우리 조직문화를 위협하는 하나의 ‘우상(偶像)’으로 남아 굳어져 왔다.
우리가 이 시대를 관통하며 ‘인간성’을 완전히 잃지않고 조직 내 인권, 이를 포괄하는 조직 문화적 진보를 조금이나마 이루었다면, 기실 그것은 ‘기술’자체가 가진 속성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해 나타난 ‘반작용’에 인류가 저항하고 ‘정치’적으로 대안을 만든 결과다. 산업혁명의 폭력적 결과를 경험한 구성원이 나서고, 이를 목도한 언론인이 이를 사회에 전하고 정부는 대책을 강구했다. 위생 검사를 실시하고 안전 규제를 만들었으며,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규정을 강화했다. 기업은 실천했다. 그렇게 조금씩 전진했다.
이를 교훈 삼는다면, 4차 산업혁명 기술 자체가 조직문화관리에 가져다 줄 혜택에 대해 낙관하거나 둘을 직접 연결짓는 것은 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조직문화의 미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과 동시대의 ‘사회환경’이 가져올 맥락, 간접효과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응해 기업이 어떤 ‘정치적 지향점’을 가지고 조직문화를 주체적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좀 더 합당해 보인다.
‘기업의 관점’에서 ‘기술’의 흐름이 가져온 대표적 변화 중 하나는 ‘평평화’(Flat) 경향이다. 토마스 프리드먼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로 인해 정보와 자본의 교류, 세계화의 주체는 이제 국가, 기업을 넘어선 ‘개인’이 될 공산이 크다.[vi] 평평화는 호모스마트쿠스(지식의 상향 평준화)를 탄생시켰다. 구성원의 사회문화적 ‘개인화’ 성향도 강해졌다. 이제 조직의 젊은 구성원들은 ‘용기’와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회사를 박차고 나와 창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평평화’(flat)로 인해 회사의 정보 통제도 쉽지 않아졌다. 최근 대한항공 오너 일가에 대한 임직원들의 폭로전이 대표적 예다. 구성원은 마음만 먹으면 ‘정보’가 ‘사실’인지, ‘명령’이 합리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수단’과 ‘역량’을 가졌다. 그들에게 ‘인위적인 권위’는 ‘독’이다. 부당한 지시를 받으면서도 '침묵'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우리나라 특유의 기업문화. 그 아성에 금이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조직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Staff과 Leader의 균열선과 유사하다. 균열은 매우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다.
또한가지 변화는 '불확실성의 극대화'다. 더 이상 경제는 과거와 같은 극적인 성장을 할 수 없는 구조다. 경기 예측은 더욱 어렵다. 지금은 4차산업혁명 시대인 한편으로 ‘저성장’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 시대다. 전문가들은 3차 산업혁명 시대정신인 ‘기계적 효율성’만으로는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혁신’, 그것도 판을 뒤흔드는 ‘파괴적인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주문한다.
이 ‘New Normal’은 다시 ‘불안’을 강화한다. 기업과 구성원은 그 어느때보다도 풍요로운 시대를 영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그 어느때보다도 정서적으로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구성원에게 기업은 더 이상 종신직장이 될 수 없다. 기업은 올해 아무리 ‘업황’이 좋아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황’이 ‘불안’ 하기만 하다. 그 어느때보다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사람들은 지금을 ‘각자 도생’ 시기라고 자조한다.
한편 4차산업 혁명 시대의 학문적 ‘사조’ 중 하나인 ‘근거 기반의 연구’에 따라, 우리가 그간 맞다고 인식하거나 행했던 것들에 오류가 있음이 ‘실증’되기 시작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고전 경제학의 가정을 무너뜨렸다. 심리학은 ‘의미’가 ‘압박’보다 인간을 동기부여 시킴을 밝혔다. 구글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뜻을 밝혀냈다. ‘심리적 안정감’은 곧 ‘문화’다.
‘평평화’(Flat) 시대, 조직의 균열을 극복하고, ‘복잡성/불확실성’에 대응한 ‘파괴적 혁신’을 일구며 조직의 ‘불안’을 잘 관리한다고 하는 당대 선도 기업들은, 그 어려움을 해칠 수 있었던 공통적 원동력이 바로 저 ‘조직 문화’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 몇 안되는 기업들이 ‘문화’에 매달린 것은 그것이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근거에 기반해’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문화는 곧 ‘전략’이다. 피터 드러커의 입을 빌려(정말 그가 이런 말을 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한번 더 강조하자면,
“전략은 문화의 아침식사거리밖에 안된다.”
문제는 조직문화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상황에 비해 조직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은 항상 실패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접한 대다수 기업들은 ‘문화가 중요하다’는 명제에 동의하면서도, 문화를 다루는 법을 모른다. 항상 변화를 꾀하면서도 변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최근 글로벌 헬스케어 한국지사에서 일하고 있는 과거 동료를 만났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그는 대외 커뮤니케이션/홍보와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나누어 일을 하는데, 최근 업계에서 ‘조직문화’ 개선 바람이 불면서 자신이 그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고 했다.
K는 필드에서 잘 알려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를 섭외해 조직문화 솔루션을 도출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들이 쓰는 컨설팅 회사로부터 최신 진단 ‘프레임 워크’를 자문 받아 구성원 대상 설문과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를 진행했다고 했다. 이를 통해 도출한 핵심적인 이슈를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소통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커뮤니케이션 캠페인도 구상 중이라 했다. K는 진단 과정에서 구성원 간의 신뢰도가 예상보다도 심각하고, 의사소통의 장벽이 커서 매우 놀랐다고도 했다. 나는 물었다.
‘조직문화, 교육하고 캠페인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정보공유의 불투명성, 정보처리/리포트 과정에 발생하는 왜곡, 동료 및 타부서간 협력 장애, 권위주의의 만연과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 이에 따라 발생하는 업무 비효율, 비생산적인 회의,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사내 분위기.. 조직진단을 통해 흔히 나타나는 조직문화 영역 이슈다. 단편적으로만 보면 대체로 조직 간의 의사소통 이슈와 맞닿아 있다.
아마도 K가 속한 조직의 CEO 혹은 조직 담당 임원은 그래서. '조직 문화' 과제를 사내 커뮤니케이션 담당 조직에 넘겼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고 마음을 다잡고, 창의적인 캠페인을 통해 노력해서 행동화 하면 나아질 거야.'라는 인식이 그 결정을 이끌어낸 핵심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어쩌면 문화라는 단어가 가진,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막연한 인식이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다.
'조직문화'를 다루는 기업들의 자세는 대체로 이와 같다. 컨설팅 회사들도 그저 제안받은 대로 자신들만의 ‘프레임 워크’(하지만 사실상 큰 차이없는.)로 문화를 ‘진단’한 후 교육이나 워크숍과 같은 다양한 Action Plan을 고안하는 것이 전형적인 루틴이다. 하지만 이래선 문화를 바꿀 수 없다.
조직 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많은 기업이 '조직문화'를 전담 조직이나 담당자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권한은 시작부터 제한되어 있다. 조직 전략을 바꾸거나,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은 이들에게 없다. 조직문화 개선 프로젝트에 개인 행동 변화 중심 캠페인이나 교육, 행사들만 난무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조직문화 전담 조직은 경직된 조직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바꿔 보기 위해 전문가를 섭외해 임원, 팀장들을 모아 교육을 진행한다. '칭찬합시다' 등과 같은 사내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컴퓨터 잠금 화면 용 페이지를 만들어 배포하거나 캐릭터를 개발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상을 주기도 하고, 구성원들이 직접 듣고, 보고,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워크숍이나 타운 홀 미팅을 개최하기도 한다. 정기적 설문, 진단은 필수다. 간혹 조직문화 전담 조직 담당자를 만날 때면 질문을 한다.
“조직문화, 전담하면 바꿀 수 있습니까?”
만나본 조직문화 담당자 중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해 시원스레 대답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아무도 없었다.
사실 필자는 ‘조직문화’를 별도로 전담하는 조직 혹은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 회사가 조직문화를 제대로 혁신할 수 없다는 근거라고 감히 주장한다.
몸에서 열이날 때가 있다. 발열증상은 그 자체로 해롭기 때문에 급하게 찬 수건, 해열제 등으로 열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인 처방은 아니다. 많은 경우 발열은 그 자체가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결과적 증세다. 때문에 보다 치료를 위해서는 발열증상을 일으킨 근본적 원인을 진단해 처방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조직문화를 대하는 방식이 그랬다. '발열 증상'에 대해 '진짜 문제'를 찾고 조직이 총체적으로 노력하기 보다, '발열 증상' 자체가 문제인 것으로 보고 전담조직이나 담당자를 통해 그저 열을 내리기 위한 노력-'찬 수건', '해열제'만 처방-만을 경주했다.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조직문화 담당자 K’는 자신이 ‘문화’를 전담하는 순간,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는 오히려 ‘문화’ 이슈로부터 멀어졌다고 자조했다.
"초반엔 정말 문화를 제대로 바꿔보고 싶어서 HR 전체적으로 깊이 있는 논의도 하고, 타 부서와도 협업해서 좀 근본적인 대안을 찾고 싶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 HR 헤드에게 부탁해서 그의 주관으로 사람들을 모아 회의를 해도 그 순간 뿐, 그가 자리를 뜨면 모인 사람들의 마음도 떠버려. '내 KPI가 아닌데? 네가 알아서 잘해봐'라는 식이지. 이런 문화가 회사의 제도/구조적 문제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해서 헤드에게 의견을 구하면, '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잖아, 제도나 전략은 네 영역이 아니야,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해'라는 식의 피드백만 돌아와.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 나 역시 '진짜 문화를 바꾸고 싶고, 또 바꿀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하기로 한 일을 하자'라는 태도로 일하게 되는 거지."
인사조직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한 기업 경영자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기업 경영자로서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지속적인 생존 성장입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 그리고 빠른 경쟁환경 변화로 최근 2년간 영업이익률이 하락했습니다. 올해는 경쟁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등으로 더 어려운 한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우리도 좀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경쟁사 마케팅 전략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파격적 연봉을 걸고 경쟁사 인재를 영입하고, 좀 더 성과중심의 조직을 만들기 위해 성과평가도 강화했습니다.
실적에 따라 보상 인센티브도 좀 더 확실하게 주기로 했습니다. 가시적인 성과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조직, 개인을 찾아 직간접적으로 강하게 경고하고, 인사 불이익을 주는 제도도 마련했습니다. 나는 우리의 매출 목표치를 내 방 뿐만 아니라 회사 곳곳에 걸어두고 매일매일 회의와 직접 방문을 통해 이를 강조하고 압박했습니다. 임원들도 내 의지를 잘 따라 주었습니다. 내 분신이 되어 강하게 조직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연말 실적이 목표치에 근접했습니다. 이 기회에 성과중심 체계도 같이 구축한 것 같아 두 마리 토끼를 잡은듯 합니다.
이를 좀 더 체계화하기 위해 '성과주의 인사 시스템 강화'를 주제로 컨설팅 회사를 불러 조직진단을 했습니다. 여전히 인력을 효율화할 구석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직진단의 부수적 문항에서 우리회사의 조직 문화 지표가 썩 마음에 들지 않게 나왔습니다. 구성원 상당수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고, 조직간-상하직원간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 아시다시피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우리회사를 좋아하는 만큼 직원들도 우리 회사를 좋아하고 제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기왕 비용을 쓰는 것 '조직 문화' 프로젝트도 이번에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HR 내 변화추진 조직을 만들어 담당자도 지정해 두었습니다...”
많은 경영자가 범하고 있는 실수 중 하나가 회사의 전략과 조직문화를 위 처럼 따로 생각하는 것이다. ‘문화’는 ‘전략’이다 라는 명제에 대해 여전히 많은 기업 리더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작 마음은 ‘침대’는 ‘과학’입니다와 같은 클리셰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기업 경영자는 위의 인터뷰 내용처럼 기업의 방향성,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취하는 조직운영 전략 및 시스템과 조직문화를 별개 사안으로 인식한다. 다시 말해 기업의 가시적 성장, 재무적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조직에 강력히 요구하며 이행하는 일련의 조직운영 과정과 구성원의 몰입, 동기부여, 신뢰를 추동하는 '조직문화'는 전혀 다른 이슈라 생각하고 접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결국 조직문화는 전자에 비해 뒷전이 될 수 밖에 없다. 만약 전자 - 기업의 가시적 성장, 재무적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조직에 강력히 요구하며 이행하는 일련의 조직운영 과정 - 으로 인해 부정적인 조직 문화 징후가 발견된 것이라 해도, 이 기업은 전자를 수정할 수 없다. '전략'이 '문화'를 우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직문화는 언제나 '부분적'으로 다뤄지며, '시스템'에 대한 접근은 제한된 채 변화의 초점을 구성원 개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경영진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HR컨설팅을 요청한다면 그 방향성과 결과도 사실상 미리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일반적인 컨설팅 회사는 두 가지 모듈로 컨설팅을 진행할 것이다. 한 모듈은 '성과주의 시스템 고도화' 프로젝트를 통해 가시적 '성과'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어 구성원 간의 엄밀한 성과측정과 성과에 따른 보상 차등 강화, 효율화 관점에서의 업무프로세스 개선 등 구성원을 견제하고 채찍질하는 제도적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반면 '조직문화'모듈은 'GWP (Great Work Place)'의 관점에서 구성원이 서로 어떻게 하면 신뢰(Trust)하고 조직에 자부심(Pride)을 갖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지(Fun)고민한다. 이를 위해 기업의 다양한 최신 이벤트 프로그램을 유형별로 정리해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정해 적용하라는 제안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뭐가 문제인가? 여기서 우리는 ‘문화’가 곧 ‘전략’이라 외치는 몇 혁신기업들의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그저 새로운 Trend로서 응당 경영 일선의 기업이 따라가야 할 과제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사례’가 왜 ‘오류’이자 ‘모순’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문화적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이 받아들이는 조직문화의 ‘대원칙’은 인간은 '정서적, 경제적 압박'이나 '타성'에 의해 행동할 때보다 과제에 대한 '즐거움', '의미', '성장' 동기를 가질 때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한다는 관점이다. '일할 때 즐겁고, 왜 일하는지에 대한 일의 의미를 파악하며,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는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원을 유도하는 조직 환경, 문화'를 구축하는 것.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것은 구성원간 경쟁을 유도하고, 경제적 인센티브로 동기 부여하며, 회사차원의 목표 실현을 전사적으로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기존 성과주의 철학/시스템과 공존하기 어려운 대척점에 서있다. 또한 '실질적 성과'를 유도하는데 더욱 효과적이라는 주장과 근거마저 제시한다.
다시 말해, 최근의 '조직문화'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단순한 유행, 혹은 클리셰가 아니다. '기업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조직에 강력히 요구하며 이행하는 일련의 조직운영 과정'과 '구성원의 몰입, 동기부여, 신뢰를 추동하는 조직문화'를 별개의 이슈로 생각하던 기존의 편견을 넘어서야 한다는 절박함에 비롯된 것이다. 지금의 ‘조직문화’는 조직 전략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다루고 대안을 찾기 위한 업스트림 차원의 흐름이다.
따라서 기업이 집중해야 할 이슈는 ‘문화’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문화' 이슈는 오히려 기업이 취하고 있는 근본적인 조직 전략과 그 구조적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로 기능하는 측면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조직문화 이슈는 의학에 비유하자면 어떠한 질병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질병의 '증상'이다. 그중에서도 외과, 내과 등 각 의학분야 전문가들이 협진해 처방해야 하는 '합병증'이다. 때문에 '문화'를 바꾸기 위해선 '문화'자체보다 기업이 스스로 설정한 '성공'을 위해 어떻게 조직을 다룰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조직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2012년 7월, 미국 유명 월간지 '베니티 페어'에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잃어버린 10년(Microsoft's lost decade')라는 기사가 실렸다.[vii] 작가 커트 아이헨월드(Kurt Eichenwald)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전현직 임원과 직원들을 인터뷰하고 확보한 내부 자료 분석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실패를 기사로 다뤘다. 한때 애플을 뛰어넘어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소프트웨어 회사가 2000년대 초반부터 근 10여년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어떻게 서서히 망가져 갔는지 그 핵심 원인을 적나라하게 분석한 이 리포트는, 잡지 발행 이후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0년대 초반 마이크로소프트의 전현직 구성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실패가 '야만적인 문화'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 비난했다. 직원들은 내부 경쟁과 갈등에 사로잡혀 더이상 구글, 애플 등 당시 새롭게 부상하는 혁신 IT 기업들과 경쟁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구성원은 조직내 유능한 인재를 오히려 배척하거나 함께 일하기 꺼려하고, 리더들은 내부 권력 투쟁에 사로잡혀 정치적 줄 세우기를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조직, 리더, 구성원간 무너진 신뢰관계와 이에 비롯한 비협력적 조직 문화가 조직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리포트의 핵심내용은 이것이 아니었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어쩌면 '조직문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당연하고 평범한 리포트가 되었을지 모른다. 이 리포트가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은 "그렇다면 왜 그렇게 '야만적인 문화'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지배했는가?"라는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마이크로소프트 구성원과 내부 분석 자료는 '야만적인 조직문화'를 창조한 주범으로 'Stack Ranking' 시스템을 지목했다. 'Stack Ranking'은 GE의 'Rank and Yank' 시스템과 함께 90년대 말부터 기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필수적으로 도입해야 할 '성과주의' 철학 기반의 성과관리 프레임이다. 직원들을 정규분포 곡선에 따라 상대화, 서열화해 고성과 그룹과 저성과 그룹을 나누고, 이에 따른 차등적 보상과 대우를 강화하는 것이 이 시스템의 기본 골자다. 다수의 기업이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성과 관리 전략의 정석이라 생각하고 실행하고 있는 바로 그 시스템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 '정답'이 사실은 조직의 '문화를 병들게 하고' 궁극적으로 조직의 '성공을 막는 주범'이라는 '폭로'는 매우 충격적인, 그러나 '진실'에 가까운 주장이었다.
실제 그 이후에 행해진 많은 연구는 전형적인 '성과주의' 프레임이 오히려 성과를 저해하는 다양한 문화적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점을 뒷받침 하고 있다. 2015년, 경영학-신경과학 융합 관련 선도 연구기관인 뉴로리더십 인스티튜트(Neuro Leadership Institute) 역시 30여개의 기업 연구를 통해 '성과주의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한다. 그 전략이 구성원 간의 과도한 경쟁과 갈등을 유발하고 경직된 분위기를 조성해 생산성과 몰입을 오히려 저하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서열화를 폐지하고 비공식적(정서적 압박 요인 제거) 피드백 제도를 강화한 기업이 오히려 구성원 간의 생산적 대화를 촉진시키고 업무 몰입과 역량개발, 보상의 공정성 인식을 상승시킨다고 분석했다.[viii]
마이크로소프트는 '잃어버린 10년' 리포트 보도 이후인 2013년, 스택 랭킹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 철학인 '하나의 MS'에 맞지 않았다고 인정하고 이를 폐지한다고 공식발표 했다. 인위적 서열화를 반대하고, 사전 배당된, 한정된 예산에 직원들의 성과를 끼워 맞추지 않고 보다 관대하고 유연한 예산을 확보해 구성원에 대한 투자를 지속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 제이 W. 로시와 연구원 에밀리 맥타그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새로운 전략,구조, 프로세스 개선을 시행한 후에 비로소 문화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밝혔다.[ix] 문화를 원인이나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문제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것이 좀 더 직관적이고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바티스, 포드, 노스웨스트 등의 기업 분석을 통해 기업이 문화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 의사결정 구조(조직구조), 성과관리(평가, 보상 포함) 등과 같은 시스템을 개선했을 때, 결과적으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조직 문화도 진화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조직문화는 누가, 어떤 태도로 주도해야 하는 것일까?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줄세우기 평가제도를 없애고, 보상에 대한 정책을 변경하는 것, 혹은 기타 문화적 적폐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을 추진하는 것. 과연 '누가 할 수 있는 것인가?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할 수 있는 것인가? 경영세미나 부서에서 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조직문화 전담조직이 할 수 있는 성격의 조치인가?
조직문화를 더 이상 기업의 파편적이고 부분적인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문화를 바꾸려면 최고경영진이 직접 나서야 한다. 문화를 변화시키기 바란다면. 더 나아가 그를 통해 실질적 유익을 얻고 싶다면, 더이상 제대로 된 권한도 주지 않은 채 하부의 하부조직에 문화를 떠넘기는 행태를 반복해선 안된다. 조직 문화를 대하는 기업 경영자, 리더, 그리고 각 실무자의 태도가, 장기적 관점에서 조직의 문화, 나아가 조직의 실질적인 성과를 규정짓는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문화'는 부분의 문제가 아닌, 기업 모두가 전략과 동일한 레벨에서 인식하고 노력해야 할, 구조적 사안이다.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기업은 문화와 경영 최상위 개념인 전략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전략, 리더십, 문화의 ‘통합(integration)’이 필요하다.
성과관리 전문가 닐 도쉬와 린지 맥그리거는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Primed to perform)를 통해 조직의 지속가능한 성과와 잘 디자인된 조직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증명했다.[x] 단기적 성과를 위해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성과관리 시스템을 구현해 놓고, 한 켠으로는 조직의 '문화'가 문제이니 구성원 간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라는 주문은 '모순'이라는 점에 대해, 비로소 기업은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문화를 바꾸려 한다면. 성역이 없어야 한다. 어떤 것은 권한이 없어서, 어떤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어떤 것은 내 역할과 관계 없어서 배제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때문에 기업 문화를 주도하는 주체는 기업의 리더십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때문에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특정한 부분적인 조직, 혹은 소수의 의사결정자 단독으로 ‘문화’를 창조할 수 없기 때문에 조직 거버넌스 차원에서 리더십 그룹이 협심해서 '협의', '합의'하고, 상호 '공감'할 수 있는 구조, 의사결정 프로토콜을 설정해야 한다. 이 ‘그릇’에 조직의 ‘전략’, ‘리더십’, 그리고 ‘문화’의 ‘통합’(integration)을 담아내야 한다. 이제는 자꾸 나누고, 분절하고 그 안에서의 전문화를 추구해 '부분의 정답'을 합리화하는데 골몰하기보다, 연결하고 연대함으로써 '전체의 정답'을 도출하는 시스템과 기업 환경을 만드는 것에 기업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거버넌스 | Governance: 원래는 행정학 용어로, 사회 내 다양한 주체가 자율성을 지니면서도 조직의 '통치'과정에 참여/협력하는 협치 형태의 의사결정 체계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그 '사회'의 초점을 '기업'에 맞춰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거버넌스 구성은 간단하다. 기업의 C레벨과 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 각 부분을 대표하는 조직의 리더가 모여 ‘수평적’ 논의그룹을 구성한다. 이 논의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사안, 참고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 자료 등을 제공/지원하고 논의 결과를 주도적으로 Follow-Up할 수 있는 ‘간사 그룹’을 둬 논의의 ‘생산성’과 ‘실효성’을 높인다.
간사그룹은 통상적으로 조직전략을 담당하는 COO(Chief Organizational Office) 산하 HR 조직이 담당하되, (조직)성과관리/평가 체계 등 기획을 담당하는 실무 리더와 구성원 교육/소통을 담당하는 실무 리더를 간사로 지정해 ‘조직문화’에 대한 논의가 조직 운영의 ‘구조’적 개선부터 ‘적응’과정까지 유기적으로 다뤄 질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혹 기업이 조직운영의 실무 영역에서 외부 전문가 그룹을 활용하고 있다면, ‘전문가 그룹’을 핵심 논의 과정에서 참여시켜 ‘객관적’ 관찰자 및 ‘전문가’로서의 시사점을 제공하고 간사그룹을 도와 논의 그룹이 아젠다를 충분히 이해하고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거버넌스 구성에서 또 하나 각 기업이 고민해야 할 것은 ‘아래로부터의(Bottom-Up) 의견’을 어떤 식으로 수렴하고 의사소통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금과 같은 연례행사 수준의, 그것도 복잡다단한 설문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해선 안된다. 건축업계의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는 BIG(Bjarke Ingels Group)은 ‘진정한 성과주의(True Meritocracy)’를 위한 회사의 원칙 중 하나로 조직 구성원이 자유롭게 회사에 대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전하고 싶은 대상에 피드백 할 수 있는 언로를 구축했다.이를 위해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 원칙(문제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태도, 톤 앤드 매너 등)에 대해서도 조직구성원들 간 합의를 도출했다.)[xi]
이제 다시 잠깐 4차산업 혁명과 관련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많은 사람들은 당대의 ‘파늘루’에 현혹되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환상을 품는다. 이 기술로 인해 비로서 세상은 더욱 ‘객관적’이고 ‘공정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반드시 인간의 선택이 개입한다.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모형’들에도 개발자의 목표와 이념이 반영된다. 모형들은 수학에 깊이 뿌리내린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때문에 알고리즘, 빅데이터, 인공지능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기술’의 ‘설계’와 ‘해석’에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생각, 의견, 경우에 따라 심각한 편향이 반영된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해야 한다. 이를 간과한다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인 캐시 오닐에 따르면 "알고리즘은 무계획적인 데이터 수집과 허위상관 spurious correlation(실제로는 전혀 상관없는 두 변수가 수치상으로 상관성을 갖는 경우)에 의해 작동하고, 제도적 불공평 institutional inequity에 의해 강화되며,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에 의해 오염된다"[xii]
캐시 오닐은 수학적 모형이 성공적인지 판단하는 것 조차 개인적인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국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모든 알고리즘 모형의 핵심요소는 ‘성공’에 대한 ‘정의’라 말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기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시 ‘인간’에게 그 길을 묻는다.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성공을 무엇으로 정의하는지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기업 경영 역시 마찬가지다.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다면. 그곳에 모인 기업 리더, 주체들이 해야 할 가장 근본 적인 물음은 ‘성공’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관습적으로 해오던 단순 ‘KPI’, ‘지표’ 등으로 대변되는 재무적 성과에 관한 피상적 논의가 아니다. '비재무적인 성공'도 '재무적 성공'과 동일한 선상에서 함께 논의하고 협의해야 한다. 기업, 아니 우리는 재미있게도 ‘성공’을 간절히 원하고 ‘성공’을 향해 맹렬히 달리면서도 정작 우리의 ‘성공’이 무엇인지 모른다. 제대로 논의해 보지 않았다.
물론 핵심가치, 행동강령, 기업윤리, 추구하는 리더십, 인재상 등 비재무적인 성공요인이 없는 기업은 없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그것은 단지 기업 '홈페이지'에서 잠든 화석이 아닌가? '기업 전략' 회의, 내년도 계획을 세우는 시기 등에서 재무적 목표만큼 진지하고 심도있게 논의된 적 있던가? CEO, 임원, 실무자들은 외우고 있는 재무 KPI만큼, 기업의 비전과 핵심가치를 모두 알고 있나? 형식적이고 복잡한, 그리고 어쩌면 홍보용 화석에 지나지 않는, 낡은 가치체계는 버리자. 우리의 '재무적' 성공과 더불어 정말 살아 있는 '비재무적' 성공을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자. 그리고 단 '하나'라도 실질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치'를 상정하자.
결국 '조직문화'는 이렇게 다시 정의한 우리 기업만의 '성공'(재무적 차원의 성공 + 비재무적 차원의 성공)을 어떻게 균형있게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결과'로 정의된다. 기업은 '재무적 성공'과 '비재무적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 없이 맞닥뜨리는 양 가치의 충돌에 대해, "어떤 '원칙'을 가지고 '논의'하고 '해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응답의 수준이 곧 기업 문화의 '결'과 '질'을 결정한다.
여기 한 글로벌 지사의 임원이 있다. 그는 언제나 재무적 지표 기준으로 실적 상위에 랭크되는 고성과자로 분류되어 있다. 저돌적 추진력으로 어떤 식으로든 목표한 실적 그 이상을 하려고 노력한다. 경우에 따라 인접 팀의 실적 마저 자신의 공으로 만드는 재주도 있다. 그는 실적달성을 위해 팀을 강하게 압박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팀에서는 그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다. 때때로 그 언행이 거칠어 몇몇 직원들은 퇴사를 하거나 잘 적응하지 못하고 팀을 옮기기도 했다. 한번은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여성 팀원에게 '이래서 여자는 안돼, 그럴거면 그냥 그만둬' 라고 했다. 그 직원이 표현을 문제삼자. 그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아이, 난 이래서 똑똑한 여자들이 질색이야.” 여성직원은 회사에 이를 알렸다. 하지만 당장 돌아오는 답변은 “네가 좀 이해해. 그러려니 하고 넘겨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자나, 어쨌든 그가 실적도 좋으니 너도 인센티브를 잘 받는거구..” 이 기업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기업의 모토는 “사람 중심의 기업” 이다.
한 마케팅 컨설팅 회사 팀장 이야기도 해보자. 최근 글로벌 IT회사에서 마케팅 홍보 파트너 신규 선정 제안요청이 들어와 IT담당 헤드인 상무로부터 제안서 작업을 배당 받았다. 머신 러닝/인공 지능 관련 사업 영역에 대한 마케팅 전략 수립이 핵심인데, 이 영역에 대해선 팀 전체적으로 이해도가 부족한 상황이다. 시간이 3일 정도 밖에 없어 상당히 촉박한 일정이다. 팀장은 일단 흔쾌히 "제가 잘 하겠습니다."라고 받은 후 바로 아래 과장을 불렀다. 그리곤 상무가 자신에게 말한 내용을 그대로 과장에게 전달했다. 메일도 통째로 같이 전달했다. "잘 부탁해, 나는 약속이 있어서 그만 퇴근할게. 아, 그리고 밑에 애들 잘 시켜서 스터디 자료 만들어 나도 좀 공부시켜줘." 과장이 말한다. “아니, 부장님 시간 너무 촉박한거 아니에요? 저도 잘 모르는 상황인데, 뭐 라도 좀 인사이트를 주셔야죠.", "(팀장) 난 자네를 믿어, 다 잘 될거구, 내가 내일 와서 제대로 정리해줄 테니까 일단 한번 키를 쥐고 해봐, 기회를 주는거야." 과장은 사원 한명, 인턴 한 명을 데리고 새벽까지 자료조사를 하고 제안서 골자를 만들어 팀장에게 검토 요청을 한다. 다음날 출근한 팀장은 과장의 자료를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일단 이대로 완결성 있게 만들어봐 모레 제출이니까 내일 오전 중에 상무님 불러서 다같이 보는 걸로 하자." 이 컨설팅 회사는 '업계 최고의 전문성'을 모토로, 회사 홈페이지에 나온 인재관리 원칙은 '업계 최고의 전문가가 양질의 육성을 통해 업계 최고의 전문가를 재창출한다'로 기술되어 있다.
사례는 아마도, 우리가 매일같이 부딪히는 업무 생활의 한 단면일 것이다. 성과에 매몰되어 '인간다움'을 상실한 구성원, 반대로 '사람'은 좋으나 '무능력' 혹은 대책없이 '나태'한 채 자신의 역할/책임을 망각한 구성원.. 두 사례의 '결'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이슈는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비재무적 성공'에 대한 가치충돌 현장에서 일관된 '원칙'과 '논의', '해결'의 구조가 부재하거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때로는 복잡해 보이기까지 하는 다양한 가치체계를 갖춰 놓고 있다. '좋은 문화'를 표방하며 나름대로 다양한 노력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다. 현실과의 괴리를. 중요한 것은 거창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진짜 '문화'를 규정짓는 일상의 '작은' 가치충돌 상황에 대해서 책임 있고 일관된 대답을 할 수 있는 태도와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문화'는 결국 그 '디테일' 에서 잉태한다.
..사례의 임원, 팀장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거기까진 추적해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 기업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GE의 CEO 였던 잭 웰치가 자신의 커리어 후반기에 자사의 조직전략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500명의 관리자들에게 한 말이다. “왜 작년에 좋은 수익을 낸 4명의 간부들을 해고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그들을 떠나 보낸 이유는 회사의 가치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xiii]
1999년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건물에서 한 가지 실험이 진행됐다. 연구팀은 6명의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은 검은색 셔츠를, 다른 한 팀은 흰색 셔츠를 입게 한 뒤 농구공을 패스하게 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에게 흰색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를 세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실험의 핵심은 농구공 패스가 아니었다. 실험이 한창 진행 중일 때 고릴라 의상을 입은 한 학생이 농구공을 주고받는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 나온 뒤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드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xiv]
실험이 끝난 뒤 학생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패스 횟수가 몇개였느냐"가 아니라 "고릴라를 봤느냐"였다. 놀랍게도 실험에 참가한 학생 중 약 절반이 고릴라 의상을 입은 학생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농구공 패스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약 절반이 이처럼 뜬금없는 상황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참가 학생들 스스로도 믿기 어려워했다. 이는 인간이 가진 인지력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험이다. 인간은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쉽게 편향되어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의, 하지만 조금 더 심각한 인식의 오류도 있다. ‘확증편향(Confirm Bias)’이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해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것이다. 쉽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이다.
조직문화를 조각하는 ‘디테일’은 결국 ‘실행’의 문제다. 일련의 현상은 거버넌스와 프로토콜을 구축하고 성공을 재정의하고 문화를 고려한 조직전략을 세워도 여전히 좋은 ‘문화’가 구축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재무적 성공과 비재무적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 없이 맞닥뜨리는 양 가치의 충돌에 대한 건강한 ‘디테일’을 우리가 ‘자연스럽게’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세일즈’, ‘실적’에 골몰하는 리더가 ‘젠더 의식’이라는 가치와 충돌했을 때, 인간이라면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인 것이든 ‘젠더 의식’을 보지 못하고 지나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 상황에서의 자연스러운 ‘자기 합리화’ 역시 유사한 맥락이다.
조직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결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벌써 한세기 전, 1970년대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J.H.Flavell)가 제시한 개념이다. ‘인지 너머(beyond)의 인지’라는 뜻이다. 자신의 생각/감정 등 인지적 활동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발자국 떨어져서 조망하고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선 예에서 ‘세일즈’, ‘실적’에 골몰하는 리더가 ‘젠더 의식’이라는 가치와 충돌했을 때, 리더가 자신의 관성을 스스로 인지하고 ‘젠더 의식’이라는 가치를 의식하고 행동을 수정했다면, 그것은 메타인지가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조직문화 구축에 있어 조직에 남은 마지막 과제는 이 ‘메타인지’를 조직에 이식하는 것일 테다. 이제 시선은 다시 리더십으로 향한다. 리더십의 의지가 곧 기업에 메타인지가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과 프로토콜 구축을 가능하게 하고, 또 리더십의 실천이 시스템과 프로토콜의 실체적 작동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 것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리더십의 부재’로 이 모든 ‘거버넌스, 시스템, 프로토콜’, 그 실체적 작동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무력한 결론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조직, 개인이 메타인지 능력을 키우는 첫걸음이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메타인지 자체에 대해 인지하는 것이라 한다. 부디 이 글이 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잃어버린 10년(Microsoft's lost decade') 기사 이후 약 6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야만적인 문화’에 사로잡혀 침몰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 회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재미있게도 마이크로소프트는 4차산업혁명을 상징하는 핵심기술 중 하나인 클라우드 통합 서비스 부문에서 점유율 세계 1위로 재도약 하는 등 다시 부활의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극적인 것은 실패의 이유가 ‘조직문화’에서부터 비롯됐듯 조직이 다시 기지개를 켤 수 있었던 이유도 조직문화에 있다는 점이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는 2014년 취임 당시 자신의 첫번째 사명을 ‘문화’를 바꾸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채 5년도 되지 않아 회사는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고유의 영혼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조직문화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물음에 정확한 답이 될 순 없겠지만, ‘조직문화’ 로 인한 실패와 성공을 동시에 겪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경험과 교훈은 분명 살펴볼 가치가 있다. 나델라는 직문화의 ‘우상’을 제거하고 ‘이성’을 조직에 이식했다.
첫째, 문화적 논의를 위한 거버넌스를 강화했다. 매주 한번씩 CEO를 포함해 개최하는 SLT(Senior Leadership Team) 미팅에서 비즈니스 전략, 기회와 함께 새로운 ‘문화’ 창조를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둘째, 논의의 질적 향상을 위해 소통을 전략적으로 리드했다. SLT 내 수평적이고 질적인 논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심리학자(전문가)의 지원을 받아 논의 주체간 보이지 않는 심리적 장벽을 제거하고 소통을 강화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진 소통이 '안전'함을 인식시켜 조직이 부적절한 '침묵'에 빠지는 것을 경계 했다.
셋째, 조직의 ‘성공’을 재정의했다. 사티아 나델라가 새롭게 정의한 회사의 ‘성공’은 ‘성장하는 사고/태도’(Growth Mindset) 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공은 손익계산과 관련된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공은 개인의 질적 성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역할과 삶에서 성장한다면 하나의 조직으로써 우리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프레드 시트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넷째, 조직 전략과 리더십, 그리고 문화의 통합(Integration)을 추구했다. 그는 구성원 개인의 동기와 회사의 역량을 ‘공감’을 통해 연결한다는 철학을 명확화하고 이를 조직의 리더가 주도적으로 이행하도록 했다. 과거 경쟁/전쟁을 유도했던 Stack Ranking 등의 조직전략/시스템과는 철저히 결별했다.
다섯째, 문화적 ‘디테일’에 대한 실천을 추구했다. 그는 말한다. “리더는 행동에 나서고 편견을 뿌리뽑는 문화를 빚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실질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회사의 ‘가치’에 반하는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동시에 누구나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두려움 없이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4차산업 혁명시대, 인류/기업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얼핏 코딩, 빅데이터 분석능력과 같은 기술이 떠오르지만, 정작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공감능력이야 말로 인간, 사피엔스의 뛰어난 지혜라 말한다.[xv] 인간에게 생존력을 부여한 것은 기술, 지식이었을지 몰라도 그조차 ‘교감’이 없었다면 제대로 작동하거나 정교해지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다. 그는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류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감정지능’ (Emotional Intelligence)와 ‘마음의 균형’(Mental Balance)라고 주장한다.[xvi] 인류’의 역사에 ‘기업’ 그리고 ‘기업’ 구성원이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는 조직에 ‘공감’능력을 이식함으로써 변화 관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전략과 계획이라도 구성원이 ‘공감’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조직, 리더, 구성원의 감정과 심리적 태도를 관리한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차를 타고 산비탈길을 오르던 도중 산바위가 굴러 떨어져 도로 앞을 가로 막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차를 잠시 세우고 ‘저 돌은 없는 거야, 허상이야.’라 되뇌고 액셀러레이터 (accelerator)를 힘껏 밟는 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경영과 조직을 다룸에 있어 오랫동안 이 같은 실수를 범한 것이 사실이다. 경영활동이 조직간 조직 내 인간의 상호 교류, 교감속에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제도를 구축하고 의사결정을 내려 온 것이다. 인간 감정의 맥락을 배제한 호모 이콘(호모 이코노미쿠스: 감정이 없고 정확하고 논리적인 경제적인 동물)의 눈으로는 애초 보이지 않는 ‘문화’를 규정하기도 논하기도 어렵다. 성공의 가치충돌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격모독, 성희롱, 기업 내 인권문제는 결국 인간의 마음을 토대로 이루어진 개념들이며 이 마음의 총체가 다시 한 조직의 문화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모 이콘은 죽었다. 더 이상 상상 속 이콘에 현실 속 구성원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시스템을 추구해선 안된다. ‘이론’의 세계는 어떨지 몰라도 ‘현실’의 세계에서 ‘가치와 무관’하고 ‘온전히 객관적’인 독립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 우리는 지금까지 분명히 존재해 왔고, 존재하며, 앞으로도 명백한 구성원의 감정, 나아가 조직 차원의 ‘감정’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역설적이게도 조직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조망할 능력, 메타인지력을 얻게 된다. 조직의 '비합리성'을 받아들이고 그 실체를 들여다 보아야 조직 구성원에게 조금 더 ‘합리적인’ 조직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첨단의 시대에서 조직에 가장 필요한 능력은 정작 복잡하고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기본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조직을 구성하는 감정을 가진 주체와 교감하고 서로 공감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 단순한 명제를 이해 하고, 이행하는 것에서 ‘성공’의 씨앗이 싹트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새로운 역사 앞에 놓여있다. 그것을 ‘4차산업혁명’시대라 하는 ‘뉴노멀 시대’라 하는 그냥 2018년 4월이라고 하든. 어느때 보다도 기술과 지식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그 기술적 변화가 우리의 생활양식과 문화, 사고 역시 빠르게 바꾸어 놓고 있다. 앞으로 더더욱 어떤 길로 가야할 지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불확실한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역사의 거대한 시계열 흐름에서 사실 '기업', 그 '기업'안의 사람이 주역이었던 시기는. 지금까지는 '점'에 불과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역사는, 적어도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점에서 선으로 '역사기술'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해갈 공산이 크다.
그런데 갑자기 최근부터 조직문화가 중요하다고 한다. 조직문화가 전략만큼 중요하다는 말은 불과 1년여만에 어느덧 너무 보편적인 메시지가 되어 그 '힘'을 잃어버릴 정도로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기업은 앞다투어 자신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왜?
창의적인 오피스 디자인과 공간 배열, 자율적인 복장, 호칭/직급 파괴.. 모두 화려하지만 어쩌면 공허한 외연에 치중해 있다. 마치 지금 기업이 철저히 기업 '마케팅'/'홍보'용으로 소비하고 마는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V(Corporate Shared Value) 처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남는 것은 아닌지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어쩌면 무례하게도. 서두에서 소설 ‘페스트’를 소환했다.
이런 현실에서 '좋은 조직문화'가 기업의 '실체적 성과'를 창출한다는 명제는. 좋은 근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여전히 한계가 있는 답임을 고백한다.(이제와서?!) 냉혹한 기업의 오너, CEO라면. 그것을 알 것이다. 기업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분석하고 통계 내어 보면 정작 '좋은 문화'여서 기업이 '생존'한 사례는 얼마나 될까? 많은 역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류의 진보와 성장, 기업의 성패의 상당부분이 '운'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그것을 후천적으로 분석해 '법칙화'할 뿐이다.
그렇다면. 기업에 속한 우리가. 우리의 감정과 심리를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하는 '사각 지대'에 있다 한들. 그것이 '생존'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기업 자체'의 관점에서 어쩌다 받는 윤리/도덕적 질타나 약간은 귀찮은 제재 이외에 뭐가 그리 큰 문제가 될까? 소위 4차산업혁명군에 속하는 Business를 영위하고 급속도로 성장하면서도 소위 말하는 '꼰대' 문화를 영위하는 기업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왜' 대체 조직문화를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일까? 글의 말미에서 다시 한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을 다시 한번 유보해두고. 다시 역사이야기로 한번만 더 돌아가보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오늘날 우리 인류는 '신'이 될 준비를 갖추었다 한다. 우리의 기술로, 과학으로. 머지않은 미래는 우리의 '욕망'마저 설계할 수 있는 시대가 필연적으로 올 것이라 예측한다.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선 새로운 인류, 미래에 대한 '설계'는. 인간 스스로가 실체적 '설계자'가 될 가능성이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틀어 그 어느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조직문화' 그 안의 '관계' '커뮤니케이션', 좀 더 나아가 '윤리' '도덕' '정의' 이러한 형이상학적이고도 고리타분한, 실체 없는 개념에 기업의 '리더'가. 기업 구성원이. 좀 더 경각심을 가지고 고민해야 할 진짜 이유에 대한 실마리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우리의 '미래'는, 비로소 좀 더 '주체적인 설계자'가 된 우리 인류의 누군가가. 어쩌면 고리타분하고도 실체가 없는 저 '문화적' 형이상학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설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를 넘어선 '기업'의 시대, 아마도 그 인간 설계자 집단은 '기업'과 뗄레야 뗄 수 없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그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우리가 가는 길의 방향이 과거에서 지금까지 보다 더 극적으로 달라질 것이라 말한다.[xvii] 덧붙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편을 선호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어쩌면 소름 돋는 말이다. 어려운 말로 돌고 돌아 본론의 논증을 허무하게 스스로 깨뜨리고 다시 기업의 '조직문화'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왔다. 이쯤 되면 '조직문화는 왜? 바꾸어야 하는가?'는 사실 소용없는 질문 일 수 있다. 그보다 기업 리더가 지금부터 답해야 할.정말 중요하고, 또 솔직한 질문은.
당신은 진실로, 어떤 '조직문화'를 원하십니까?가 아닐까.
단, 그 '대답'은 조직의 '모든 것'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책임과 무게가 있는 답변 이어야만 할 것이다. '조직문화'의 '변화' 혹은 '구축'은. 그 '진실한 대답'과 '실천'의 '통합(integration) '의지' 에서 비로소 출발할 수 있다. 다시 그 '의지'라는 것은 결국 조직과 조직의 리더, 구성원 모두가 부정적인 침묵을 깨고 스스로를 '객관화'해 보는 '메타인지'를 진짜로 되찾을 때 현실화되는 것일 테다.
이 모든 것이. 조직이 새로운 시대 앞에서도 '문화'를 바꿀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동시에 조직이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체념’할 것인가? ‘희망’할 것인가?,
우리는 파늘루 신부인가, 랑베르인가, 리유와 타루인가, 아니면 불특정 다수의 ‘갈대’ 같은 군중인가? 질문의 주사위는 다시 던져졌다.
마음은 우리의 감정을 훨씬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단어다. 그것은 정신mind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더 심층적인 앎 - 우리의 경험을 받아들이고 성찰하는 것 -의 보다 광범위한 방식을 가리킨다. 우리는 마음을 통해 지성을 감정, 상상력, 직관 등 다른 기능들과 통합한다. 그것을 통해 따로따로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세계를 생각"하는지를 배울 수 있고, 아는 바대로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자아와 세계에 관한 지식을 온 마음으로 붙든다면 마음은 때로 상실, 실패, 좌절, 배신 또는 죽음 등으로 인해 부서질 것이다. 그때 당신 안에 그리고 당신 주변의 세계에 무엇이 일어나는가는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부서지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그것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진다면 결국에는 분노, 우울, 이탈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경험이 지닌 복합성과 모순을 끌어안을 위대한 능력으로 깨져서 열린다면, 그 결과는 새로운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음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정치란 권력을 사용하여 삶에 질서를 함께 부여하는 행위로서, 심층적으론 하나의 인간적인 기획이다. 마음이 부서져 흩어진 게 아니라 깨져서 열린 사람들이 조직의 주축을 이룬다면. 보다 가치있는 세계를 위해 차이를 창조적으로 끌어안고 조직의 권력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다.
-Parker J. Palmer,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중(일부 단어 대체)-
References
[i] Terry Tempest Williams, "Engagement", Orion, July-Aug. 2004
[ii]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페스트], 문학동네 (유호식 옮김) 버전 참고
[iii] Google 검색기준(검색범위국내한정)
[iv]Cathy O’neil, [대량수학살상무기], 흐름출판(김정혜 옮김)
[v]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펭귄북스
[vi]Thomas Lauren Friedman, 세계는 평평하다, 21세기북스, 이건식 옮김
[vii]Kurt Eichenwald, [Microsoft’s lost decade], Vanity Fair, 2012. 8
[viii]David Rock, Beth Jones, Camille Inge, [Reengineering Performance Management], NeuroLeadership Institute
[ix] Jay W. Lorsch,Emily Mctague, [Culture is not the culprit], Harvard Business Review, 2016.4
[x] Neel Doshi, Lindsay McGregor,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 생각지도, 유준희, 신솔잎 옮김
[xi] Bob Fisher, [The Secret to BIG Success], 2015. 11
[xii] Cathy O’neil, 대량수학 살상무기, 흐름출판, 김정혜 옮김
[xiii] Carol S.Dweck, [마인드셋], 스몰빅라이프, 김준수 옮김
[xiv] Christopher Chabris, Daniel Simons, [보이지 않는 고릴라], 김영사, 김명철 옮김
[xv] Yuval Noah Harari, [사피엔스(Sapiens)], 김영사
[xvi] Yuval Noah Harari, 조선일보 인터뷰, 2017.03.21
[xvii] Yuval Noah Harari, [호모데우스],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