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hink Corporate Culture I_조직문화를 대하는 태도
BGM | Oh Wonder - All We Do
지난 주말 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했습니다. 수년전 잠시 같은 팀에서 일했던 후배 결혼식에 참석다가 그보다 더 오래전 같이 일했던 커뮤니케이션 업계 동료 K를 꽤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같은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고 있더군요. 오랜만에 옛기억을 떠올리며 회포도 풀고, 커뮤니케이션 업계 트렌드와 동료들에 대한 새로운 소식도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피로연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동료가 하는 업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접점을 찾았습니다. '조직 문화'에 대한 이슈였습니다. 동료는 대외 커뮤니케이션/홍보(통상적으로 주로 조직내 마케팅 부서와 협력하게 됩니다)와 사내 커뮤니케이션(주로 HR부서와 협력하게 됩니다)을 나누어 담당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인데 최근 업계에서 '조직문화'개선 바람이 불면서 자신이 그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K는 필드에서 잘 알려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를 섭외해 조직문화 솔루션을 도출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구성원 대상 설문과 임원들을 대상으로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도출한 핵심적인 이슈를 개선할 수 있는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캠페인 등 다양한 소통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입니다. K는 그 중 구성원 대상 설문은 이미 진행을 했는데 구성원 간의 신뢰도가 예상보다도 심각하고, 의사소통의 장벽이 커서 매우 놀랐다고도 했습니다.
나는 흥미롭게 듣고 있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조직문화, 교육하고 캠페인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정보공유의 불투명성, 정보처리/리포트 과정에 발생하는 왜곡, 동료 및 타부서간 협력 장애, 권위주의의 만연과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 이에 따라 발생하는 업무 비효율, 비생산적인 회의,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사내 분위기.. 조직진단을 통해 흔히 나타나는 조직문화 영역 이슈입니다. 단편적으로만 보면 대체로 조직간의 소통 이슈와도 맞닿아 있지요.
아마도 K가 속한 조직의 CEO 혹은 조직 담당 임원은 그래서. '조직 문화' 과제를 사내 커뮤니케이션 담당 조직에 넘겼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고 마음을 다잡고, 창의적인 캠페인을 통해 노력해서 행동화하면 나아질 거야.'라는 인식이 그 결정을 이끌어낸 핵심적인 이유겠지요. 어쩌면 문화라는 단어가 가진,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막연한 인식이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K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다른 회사도 '조직문화'를 다루는 광경은 비슷합니다. 조직문화는 대체로 사내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의 몫입니다. (그 역할이 인사부서에 속해있든,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속해있든지 간에 말입니다.) 조직 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어떤 조직은 인사 그룹 내 '조직문화'를 전담하는 소규모 조직/담당을 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권한은 시작부터 제한되어 있습니다. 조직 전략을 바꾸거나, 제도를 바꿀 수 없습니다. 때문에 기존 사내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이 수행하던 메시지 확산을 통한 개인 행동변화 중심의 '캠페인'이나 '교육',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조직문화 담당자들은 경직된 조직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바꾸어 보기 위해 전문가를 섭외해 임원, 팀장들을 모아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칭찬합시다'등과 같은 사내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컴퓨터 잠금화면용 페이지를 만들어 배포하거나 캐릭터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상을 주기도 하고, 구성원들이 직접 듣고, 보고,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워크숍이나 타운홀 미팅을 개최하기도 합니다.
간혹 회사에서 조직문화를 다루시는 분을 뵐 때면 저는 질문합니다.
조직문화, 전담하면 바꿀 수 있습니까?
"조직문화, 그렇게 교육하고 캠페인하면 정말 바꿀 수 있습니까?",
"조직문화, 당신이 전담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나본 조직문화 담당자 중 저 아주 단순한 질문에 대해 시원한 긍정을 표현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조금 각을 세워서 말씀 드리자면, 전 '조직문화'를 별도로 전담하는 조직 혹은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 회사가 결코 조직문화를 제대로 혁신할 수 없는 뚜렷한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몸에서 열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열증상은 그 자체로 해롭기 때문에 급하게 찬수건, 해열제 등으로 열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가 열을 발생하게 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처치는 아닙니다. 많은 경우 발열은 그 자체가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결과적 증세입니다.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발열증상을 일으킨 근본적 원인을 진단해 처방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까지 조직문화를 대하는 방식이 그래왔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로 나타나는 '발열 증상'에 대해 우리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 '진짜 문제'를 찾고 조직이 총체적으로 노력하기 보다, '발열 증상' 자체가 문제인 것으로 보고 전담조직을 통해 그저 열을 내리기 위한 '찬수건', '해열제'만 처방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례 A) K의 회사가 조직문화 개선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회사 조직간 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부서간 이기주의가 팽배하며, 한 부서 내 구성원끼리도 경쟁적이고 배타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외부 전문가를 통해 임원과 핵심 구성원 몇몇을 인터뷰한 결과 구성원간, 또 상사-부하 직원간의 신뢰 역시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낮은 상황이라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 담당인 K는 이러한 문제를 '외부 전문가-임원진간 워크숍'과 '커뮤니케이션 캠페인'을 통해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컨셉은 잡히지 않았지만 리더십 교육을 통해 각 임원들이 바람직한 문화에 대한 방향성을 논의하고, 관련된 주요 컨텐츠를 사내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확산시킨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K는 본인의 업무에 자신이 없어했습니다. 교육, 캠페인에 대한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문화를 바꾸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이 이슈를 공부하면 할수록 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내가 추진하는 임원 리더십 워크숍이나 사내 SNS 캠페인으로 문화가 바뀔 거였다면, 진작 회사가 바뀌었겠지. 하지만 난 그것들을 무리없이 소화하는 것이 내게 설정된 KPI이니까 일단 그것을 하는거야. 초반엔 정말 문화를 제대로 바꿔보고 싶어서 HR 전체적으로 깊이 있는 논의도 하고, 타 부서와도 협업해서 좀 근본적인 대안을 찾고 싶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 HR 헤드에게 부탁해서 그의 주관으로 사람들을 모아 회의를 해도 그 순간 뿐이지, HR 헤드가 자리를 뜨면 모인 사람들의 마음도 떠버려. '내 일이 아닌데? 네가 알아서 잘해봐'라는 식이지. 이런 문화가 회사의 제도/구조적 문제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해서 헤드에게 의견을 구하면, '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지, 제도나 전략은 네 영역이 아니야,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해'라는 식의 피드백만 돌아와. 그렇게 몇번 하다보니 나역시 '진짜 문화를 바꾸고 싶고, 또 바꿀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하기로 한 일을 하자'라는 태도로 일하게 되는거지."
'진짜 문화를 바꾸려면' 이렇게 하면 안되지. 그냥 KPI 안에서 하는거야.
그런데 이쯤 우리가 다시한번 던져봐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대체 기업들은 '왜' 조직 문화를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요? 최근 들어서 기업들의 '조직 문화'에 대한 관심과 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은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정확히 통계내어 보지는 않았지만 HR 컨설팅 업계에서도, 커뮤니케이션 업계에서도 '조직 문화 컨설팅' 수요가 부쩍 늘었다는 소식이 다방면에서 들립니다.
하지만, 제가 컨설팅하거나 만나본 기업 관계자들 중 정작 '문화'를 왜 개선하고자 하는지, 명확한 목적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체로 '조직 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Trend')와 조직진단 결과 낮게 나타난 '조직 문화' 지표를 단순히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하는 경우였습니다. 조직 문화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한다는 접근은 일견 당연한 말처럼 들릴 지 모르지만, 이는 결국 조직문화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배경과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많은 기업에서 '조직 문화'가 어떻게 다뤄지는지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사례 B) 나는 '유명 기업'의 CEO 입니다. 기업 경영자로서 제가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지속적인 생존 성장입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 그리고 빠른 경쟁환경 변화로 최근 2년간 영업이익률이 하락했습니다. 올해는 경쟁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등으로 더 어려운 한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우리도 좀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경쟁사 마케팅 전략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파격적 연봉을 걸고 경쟁사 인재를 영입하고, 좀 더 성과중심의 조직을 만들기 위해 성과평가도 강화했습니다. 실적에 따라 보상 인센티브도 좀 더 확실하게 주기로 했습니다. 가시적인 성과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조직, 개인을 찾아 직간접적으로 강하게 경고하고, 인사 불이익을 주는 제도도 마련했습니다. 나는 우리의 매출 목표치를 내 방 뿐만 아니라 회사 곳곳에 걸어두고 매일매일 회의와 직접 방문을 통해 이를 강조하고 압박했습니다. 임원들도 내 의지를 잘 따라 주었습니다. 내 분신이 되어 강하게 조직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연말 실적이 목표치에 근접했습니다. 이 기회에 성과중심 체계도 같이 구축한 것 같아 두마리 토끼를 잡은듯 합니다. 이를 좀 더 체계화하기 위해 '성과주의 인사 시스템 강화'를 주제로 컨설팅 회사를 불러 조직진단을 했습니다. 여전히 효율화할 구석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직진단의 부수적 문항에서 우리회사의 조직 문화 지표가 썩 마음에 들지 않게 나왔습니다. 구성원 상당수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고, 조직간-상하직원간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 아시다시피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우리회사를 좋아하는 만큼 직원들도 우리 회사를 좋아하고 제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기왕 비용을 쓰는 것 '조직 문화' 프로젝트도 추가해 컨설팅 회사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HR 내에 조직문화 담당자를 지정해 좋은 문화를 위해 노력 하도록 했습니다.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혹시 파악하셨는지요?
대부분의 기업 경영자들은 전략,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취하는 조직운영 전략/시스템과 조직문화를 별개의 문제로 인식합니다. 다시말해 기업의 가시적 성장, 재무적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조직에 강력히 요구하며 이행하는 일련의 조직운영 과정과 구성원의 몰입, 동기부여, 신뢰를 추동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다른 이슈라 생각하고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결국 조직문화는 전자에 비해 뒷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전자 - 기업의 가시적 성장, 재무적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조직에 강력히 요구하며 이행하는 일련의 조직운영 과정 - 으로 인해 부정적인 조직 문화 징후가 발견된 것이라해도, 이 기업은 전자를 수정할 수 없습니다. '문화'가 ‘전략’을 우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조직문화는 언제나 '부분적'으로 다뤄지며, '시스템'에 대한 접근은 제한된 채 구성원 개인의 '의식'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사례 B의 기업 컨설팅이라면 그 방향성과 결과도 사실상 미리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일반적인 컨설팅회사는 '유명 기업'이 제시한 바대로 두가지 모듈로 컨설팅을 진행합니다. 한 모듈은 '성과주의 시스템 고도화' 프로젝트를 통해 가시적 '성과'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어 구성원간의 엄밀한 성과측정과 성과에 따른 보상 차등 강화, 효율화 관점에서의 업무프로세스 개선 등 구성원이 'Worker'로서의 자기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견제하고 채찍질하는 제도적 방법을 제시할 것입니다.(그것은 각론은 다를지라도 HR 컨설팅 업계에서 정형화된 방벙론이기도 합니다.) 반면 '조직문화'모듈은 'GWP (Great Work Place)'의 관점에서 구성원이 서로 어떻게 하면 신뢰(Trust)하고 조직에 자부심(Pride)을 갖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지(Fun)를 기업의 다양한 최신 이벤트 프로그램을 유형별로 정리해 그 중 기업 상황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선정해 응용, 적용하라는 제안을 할 것입니다. 이런 접근이 최초 기업의 제안 때문인지, 컨설팅 업계의 접근 때문인지, 이제는 그 선후관계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지만 문제는 '문화'에 대한 접근이 기업 실무 측면이나 외부 전문가(컨설팅) 측면 모두에 있어서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고착화되었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는, 최근 조직문화가 이전보다 더욱 강조되는 배경과 맥락을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새로운 Trend로서 응당 경영 일선의 기업이 따라가야할 과제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실제로, 혁신의 최전선에 자리한 기업들이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조직문화'가 기업의 지속가능한 '생존'과 직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혁신기업에 걸맞는 'Cool'한 느낌이어서, 혹은 '좋은 기업이고 싶어서' 등과 같은 당위적 차원을 넘어선 것입니다. 그들에게 '문화'는 곧 '전략'입니다.
행동심리학, 수행공학 전문가들은 혁신 기업, 고성과 조직에 대한 연구를 통해 '좋은 조직 문화'(이번 아티클에서는 '문화'를 어떻게 대하고 다룰 것인지에 대한 기업의 '태도'를 다루는 장이기에어떤 조직문화가 좋은 것인가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는 추후 기고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겠습니다)를 가진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더 장기적이고, 또 질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창출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정서적, 경제적 압박'이나 '타성'에 의해 행동할 때보다 과제에 대한 '즐거움', '의미', '성장' 동기를 가질 때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할 때 즐겁고, 왜 일하는지에 대한 일의 의미를 파악하며,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는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원을 유도하는 조직 환경, 문화'를 구축하는 것에 일차적으로 주목해야 할 이유는 , 그것이 기존의 '구성원간 경쟁을 유도하고, 경제적 인센티브로 동기부여하며, 회사차원의 목표 실현을 전사적으로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기존 성과주의 시스템의 철학과 공존하기는 어려운 대척점에 서있거니와, 사실상 '실질적 성과'를 유도하는데 더욱 효과적이라는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지점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최근의 '조직문화'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기업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조직에 강력히 요구하며 이행하는 일련의 조직운영 과정'과 '구성원의 몰입, 동기부여, 신뢰를 추동하는 조직문화'를 별개의 이슈로 생각하던 기존의 편견을 넘어 조직 전략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다루고 대안을 찾기 위한 업스트림 차원의 흐름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전 유명 예능프로그램 '가족 오락관'의 '고요 속의 외침' 코너 기억나시는지요? 사람 수명이서 시끄러운 음악이 크게 나오는 헤드폰을 끼고 일렬로 늘어서서, 제시된 제시어를 입모양만을 보고 차례로 맞추는 게임입니다. 일렬로 늘어선 각 사람을 거치며, 최초의 제시어는 온데간데 없고 마지막 사람에 가서는 전혀 엉뚱한 대답이 나오는 것에 웃음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조직 문화'를 다루는 태도가 일면 '고요 속의 외침'을 재현하는 것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문화라는 속성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처럼, 조직문화가 정작 왜 중요한지 왜 우리가 조직문화를 바꿔야 하는지 그 본질적인 고민 역시 어느순간 증발해 버렸습니다. 그저 남은 것은 '트렌드'에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좋은기업'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하지만 정작 '나의 문제'라기 보다는 '남의 문제'라 생각하는 '허영'과 '책임회피'의식을 저변에 둔 채, 조직문화를 대하는 것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당신의 조직이 혹여나 이와 유사한 상황이라면, 그런데 당신이 조직문화를 담당하고 있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조직 문화'를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조직문화가 최근 왜 중요하게 다뤄지는지에 대한 배경과 맥락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주장한 요지는 크게 두가지 입니다. '조직 문화'의 중요성과 그 준거로서 그것이 실질적 '성과' 와 맞닿아 있다는 점입니다. 그 준거를 다룸에 있어서,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 가장 집중해야 할 이슈는 '문화'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 번 더 강조드리고 싶습니다. '문화' 이슈는 오히려 기업이 취하고 있는 근본적인 조직 전략과 그 구조적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로 기능하는 측면이 더욱 큽니다. 조직문화 이슈는 의학에 비유하자면 어떠한 질병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질병의 '증상'이며, 그중에서도 외과, 내과 등 각 의학분야 전문가들이 협진해 처방해야 하는 '합병증'입니다. 때문에 앞선 소주제에서도 언급했듯이 '문화'를 바꾸기 위해선 '문화'자체보다 기업이 스스로 설정한 '성공'을 위해 어떻게 조직을 다룰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조직 전략'에 집중해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중에서도 '성과관리전략'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례 A의 K와, 사례 B의 유명기업 CEO가 겪은 문제가, 사실은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조직 전략 - 성과 관리 시스템 -과 맞닿아 있음을 상징적으로 증명한 유명한 기업 케이스가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2012년 7월, 미국 유명 월간지 '베니티 페어'에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잃어버린 10년(Microsoft's lost decade')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작가 커트 아이헨월드(Kurt Eichenwald)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전현직 임원과 직원들을 인터뷰하고 확보한 내부 자료 분석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실패를 기사로 다뤘습니다. 한때 애플을 뛰어넘어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소프트웨어 회사가 2000년대 초반부터 근 10여년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어떻게 서서히 망가져 갔는지 그 핵심 원인을 적나라하게 분석한 이 리포트는, 잡지 발행 이후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마이크로소프트의 전현직 구성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실패가 '야만적인 문화'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 비난했습니다. 직원들은 내부 경쟁과 갈등에 사로잡혀 더이상 구글, 애플 등 당시 새롭게 부상하는 혁신 IT 기업들과 경쟁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구성원은 조직내 유능한 인재를 오히려 배척하거나 함께 일하기 꺼려하고, 리더들은 내부 권력 투쟁에 사로잡혀 정치적 줄세우기를 조장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결국 조직, 리더, 구성원간 무너진 신뢰관계와 이에 비롯한 비협력적 조직 문화가 조직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리포트의 핵심내용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어쩌면 '조직문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당연하고 평범한 리포트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리포트가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은 "그렇다면 왜 그렇게 '야만적인 문화'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지배했는가?"라는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마이크로소프트 구성원과 내부 분석 자료는 '야만적인 조직문화'를 창조한 주범으로 'Stack Ranking' 시스템을 지목했습니다. 'Stack Ranking'은 GE의 'Rank and Yank' 시스템과 함께 90년대 말부터 기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필수적으로 도입해야할 '성과주의' 철학 기반의 성과관리 프레임 입니다. 직원들을 정규분포 곡선에 따라 상대화, 서열화해 고성과 그룹과 저성과 그룹을 나누고, 이에 따른 차등적 보상과 대우를 강화하는 것이 이 시스템의 기본 골자입니다. 다수의 기업이(심지어는 지금까지도) 성과 관리 전략의 정석이라 생각하고 실행하고 있던 와중, 그 '정답'이 사실은 조직의 '문화를 병들게 하고' 궁극적으로 조직의 '성공을 막는 주범'이라는 '폭로'는 매우 충격적인, 그러나 '진실'에 가까운 주장이었습니다.
실제 그 이후에 행해진 많은 연구는 전형적인 '성과주의' 프레임이 오히려 성과를 저해하는 다양한 문화적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점을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2015년, 경영학-신경과학 융합 관련 선도 연구기관인 뉴로리더십 인스티튜트(Neuro Leadership Institute) 역시 30여개의 기업 연구를 통해 '성과주의 시스템'이 구성원간의 과도한 경쟁과 갈등을 유발하고 경직된 분위기를 조성해 생산성과 몰입을 오히려 저하시키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공식적인 서열화를 폐지하고 비공식적(정서적 압박 요인 제거) 피드백 제도를 강화한 기업은 구성원 간의 생산적 대화를 촉진시키고 이는 업무 몰입과 역량개발, 보상의 공정성 인식을 상승시킨다고 분석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잃어버린 10년' 리포트 보도 이후인 2013년, 스택랭킹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 철학인 '하나의 MS'에 맞지 않았다고 인정하고 이를 폐지한다고 공식발표 했습니다. 인위적 서열화를 반대하고, 사전 배당된, 한정된 예산에 직원들의 성과를 끼워 맞추지 않고 보다 관대하고 유연한 예산을 확보해 구성원에 대한 투자를 지속 늘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제가 앞선 기고에서 소개드린 '포스트 성과주의' 철학과 '애자일 성과관리 방법론'으로 공론화됩니다.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 제이 W. 로시와 연구원 에밀리 맥타그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낡은 전략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만드는 것처럼 어려운 도전 과제에 대처해 새로운 구조와 프로세스를 시행한 후에 비로소 문화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밝혔습니다. 문화를 원인이나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문제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것이 좀 더 직관적이고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노바티스, 포드, 노스웨스트 등의 기업 분석을 통해 기업이 문화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 의사결정 구조(조직구조), 성과관리(평가, 보상 포함) 등과 같은 시스템을 터치했을 때, 결과적으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문화도 진화한다고 밝힙니다.
기업은 '성과'를 위해 '조직문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직문화'는 근본적인 조직 철학 및 전략, 시스템이 바뀌어야 비로소 제대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조직 문화는 문제의 '원인'이 아닙니다.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조직문화'는 누가, 어떤 태도로 주도해야하는 것일까요? 마이크로 소프트 케이스처럼 줄세우기 평가제도를 없애고, 보상에 대한 정책을 변경하는 것, 혹은 기타 문화적 적폐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을 추진하는 것.. 과연 '누가 할 수 있는 것인가?' 저는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할 수 있는 것인가요? 혹은 조직문화 전담자가 할 수 있는 성격의 조치인가요?
핵심은 '문화'의 문제를 더이상 기업의 파편적이고 부분적인 문제로 치부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문화'적 문제의 핵심은 기업의 '총체'적 문제인 동시에 '최고 리더십'이 직접 주관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문화'를 변화시키기 바란다면. 더 나아가 그를 통해 실질적 '유익'을 얻고 싶다면, 더이상 제대로 된 권한도 주지 않은 채 하부의 하부조직에 '문화'를 떠넘기는 행태를 반복해선 안됩니다.
조직 문화를 대하는 기업 경영자, 리더, 그리고 각 실무자의 '태도'가, 장기적 관점에서 조직의 '문화', 나아가 조직의 실질적인 '성과'를 규정짓는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차 강조 드렸듯이 '문화'는 부분의 문제가 아닌, 기업 모두가 '전략'과 동일한 레벨에서 인식하고 노력해야 할, 구조적 사안입니다.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기업은 '문화'와 경영 최상위 개념인 '전략'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성과관리 전문가 닐 도쉬와 린지 맥그리거는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Primed to perform)를 통해 조직의 지속가능한 성과와 잘 디자인된 조직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증명합니다. 단기적 성과를 위해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성과관리 시스템을 구현해 놓고, 한켠으로는 조직의 '문화'가 문제이니 구성원간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라는 주문은 '모순'이라는 점을, 기업은 우선적으로 인지해야 합니다.
K가 속한 글로벌 기업 사례에서도 보듯, 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 없이 '문화'를 개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문화에 대한 전담'조직을 가진 기업이 오히려 문화를 제대로 바꾸지 못하는 기업의 지표가 될 것이다라고 강하게 각을 세워 말씀 드린 것도 이러한 맥락 안에 있습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 부서 혹은 이와 유사한 성격의 문화 전담 부서는 태생부터 권한과 역할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설령 문화 이슈의 구조적 원인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이를 개선할 수 없는 구도에 놓이고 맙니다. (제가 경영/HR 컨설턴트가 되기전 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설턴트 시절 무수히 겪었던 실제 경험이기도 합니다.)
'문화'를 바꾸려 한다면. '성역'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것은 권한이 없어서, 어떤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어떤 것은 내 역할과 관계 없어서 배제되는 경우는 없어야 합니다. 때문에 기업 문화를 주도하는 주체는 기업의 '수장'이 되어야 합니다. 기업 수장의 책임 아래 리더십 그룹이 모여 기업, 그리고 각자가 추구하는 양적 성공(재무적 성과 등 외적 성장)과 질적 성공(조직 문화 등 관련된 내적 조직역량 강화)이 과연 무엇인지 정의하고 둘간의 연계와 균형을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업 고유의 '성공'이 과연 무엇인지, 혹은 '성공'처럼 보이지만 '성공'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양적 성공을 위해 필요한 회사의 노력 가운데에서도 지켜져야 할, 양보할 수 없는 '가치'와 '태도'가 무엇인지 합의하고 기업의 건강한 성공(양적-질적 균형)을 방해하는 위험과, 문제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성찰과 인식, 공감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기업의 조직운영 전략을 일관성 있게 조율해야 합니다. 관련된 시스템을 정비한 후 시스템 변화에 따른 적응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금껏 그토록 매달렸던 '교육'과 '캠페인' 등의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은 바로 이 '적응의 과정'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기업 문화'를 바꾸려 한다면, '성역'이 없어야 합니다.
때문에, 조직문화에 대한 논의 구조는 특정한 부분적인 조직, 혹은 소수의 의사결정자 단독으로 이뤄질 것이 아니라 조직 거버넌스 차원에서 '협의', '합의'하고, 상호 '공감'할 수 있는 구조로 이뤄져야 합니다. (거버넌스 | Governance: 원래는 행정학 용어로, 사회 내 다양한 주체가 자율성을 지니면서도 조직의 '통치'과정에 참여/협력하는 협치 형태의 의사결정 체계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그 '사회'의 초점을 '기업'에 맞춰 용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거버넌스 구성]: 어떻게 논의할 것인가?
일차적으로 기업의 수장과 기업 Value Chain 각 부분을 대표하는 조직의 헤드가 모여 '조직문화'를 수평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협의하는 '논의그룹'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이 논의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사안, 참고할 수 있는 정보, 지식, 자료 등을 제공/지원하거나 논의 결과를 주도적으로 Follow-Up하는 '간사 그룹'을 둬 논의의 '생산성'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간사그룹은 통상적으로 '조직 관리'를 담당하는 HR이 담당하되, 성과관리/평가 체계 등 HR System을 담당하는 리더와 구성원 교육/소통을 담당하는 Internal Communication 부분 실무 리더를 간사로 지정해 '조직문화'를 위한 논의가 조직운영의 '구조'적 개선부터 '적응'과정까지 포괄적으로 다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혹 기업이 조직운영 실무 영역에서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고 있다면, '전문가 그룹'을 핵심 논의 과정에 참여시켜 '객관적' 관찰자 및 '전문가'로서의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간사그룹을 도와 논의그룹이 아젠다를 충분히 이해하고 대안이 조직 이슈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도록 가이드하는 역할을 담당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 여담이지만,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시장과 인사조직 컨설팅 시장을 동시에 경험한 저로서 재미있는 사실은, 둘 다 '조직문화'를 다루지만, 서로가 '조직문화'를 어떤식으로 다루는지 잘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조직문화'를 어떤 조직이 담당하는가에 따라 아는 '전문가'그룹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조직문화'를 전통적인 인사부서에서 다루는 기업은 '인사조직 컨설팅'회사에 '제도' 컨설팅과 더불어 의뢰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고, 인사그룹에 속해있긴 하지만 '커뮤니케이션/홍보' 부분에서 이를 다루도록 하는 기업은 '커뮤니케이션 컨설팅'회사에 이를 의뢰합니다. '진단'은 유사하더라도 이를 풀어내는 방식과 스타일은 '같은 문화 이슈'라도 매우 다릅니다. 앞서 제가 제기한 '문화'에 대한 근원적 문제의식까지 더하면 그만큼 기업 현장은 '전체'와 '본질'을 조망하고 꿰뚫기 보다 그 의도와 관계없이 구조적으로 '파편화'되어 있고, '배타적'으로 고착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꾸 나누고, 분절하고 그 안에서의 전문화를 추구해 '부분의 정답'을 합리화하는데 골몰하기보다, 연결하고 연대함으로써 '전체의 정답'을 도출하는 시스템과 기업 환경을 만드는 것에 기업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기업의 '성공'을 정의하는 것이 곧 기업 '문화' 정의의 첫 출발점입니다. 다만,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관습적으로 해오던 것을 조금 더 진정성 있게 'Rethink'하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업의 성공은 '재무적 성공'에 경도되어 있었습니다. 기업은 '성공'을 정의함에 있어 '비재무적인 성공'도 '재무적 성공'과 동일한 선상에서 함께 논의하고 협의해야 합니다.
물론 핵심가치, 행동강령, 기업윤리, 추구하는 리더십, 인재상 등 비재무적인 성공요인이 없는 기업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단지 기업 '홈페이지'에서 잠든 화석이 아닌가요? '기업 전략' 회의, 내년도 계획을 세우는 시기 등에서 재무적 목표만큼 진지하고 심도있게 논의된 적 있던가요? CEO, 임원, 실무자들은 외우고 있는 재무 KPI만큼, 기업의 비전과 핵심가치를 모두 알고 있나요? 형식적이고 복잡한, 그리고 어쩌면 홍보용 화석에 지나지 않는, 낡은 가치체계는 버리고 우리의 '재무적' 성공과 더불어 정말 살아 있는 '비재무적' 성공을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십시오. 그리고 단 '하나'라도 실질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치'를 상정하십시오.
결국 '조직문화'는 이렇게 다시 정의한 우리 기업만의 '성공'(재무적 차원의 성공 + 비재무적 차원의 성공)을 어떻게 균형있게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결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재무적 성공'과 '비재무적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 없이 맞닥뜨리는 양 가치의 충돌에 대해, "어떤 '원칙'을 가지고 '논의'하고 '해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응답의 수준이 곧 기업 문화의 '결'과 '질'을 결정합니다.
사례 C) 유명 기업의 나잘해 팀장은 언제나 실적 상위에 랭크되는 고성과자입니다(재무적 성공 측면). 그는 저돌적 추진력으로 어떤식으로든 목표한 실적 그 이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경우에 따라 인접 팀의 실적 마저 자신의 공으로 만드는 재주도 있습니다. 그는 실적달성을 위해 팀을 강하게 압박하는 스타일입니다. 그의 팀에서는 그의 말 한마디가 곧 법입니다. 때때로 그 언행이 거칠어 몇몇 직원들은 퇴사를 하거나 잘 적응하지 못하고 팀을 옮기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여성 팀원에게 '이래서 여자는 안돼, 그럴거면 그냥 그만둬'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 당사자에게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되기도 했습니다. 회사는 그 팀원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답변은 "네가 좀 이해해. 그려려니 하고 넘겨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자나, 어쨌든 나잘해 팀장이 실적도 좋으니 너도 인센티브를 잘 받는거구.." 유명 기업의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기업의 모토는 "사람 중심의 기업"입니다.
사례 D) 무대책 부장은 외국계 마케팅 컨설팅 회사 IT담당 A팀 리더입니다. 최근 글로벌 IT회사의 마케팅 홍보 파트너 신규 선정 제안요청이 들어와 IT담당 헤드인 나착해 상무로부터 제안서 작업을 배당받았습니다. 머신러닝/인공 지능 관련 사업 영역에 대한 마케팅 전략 수립이 핵심인데, 이 영역에 대해선 팀 전체적으로 이해도가 부족한 상황인데다 시간이 3일 정도 밖에 없어 상당히 타이트한 일정입니다. 무대책 부장은 일단 흔쾌히 "제가 잘 하겠습니다."라고 받은 후 바로 이일복 과장을 불렀습니다. 그리곤 상무가 자신에게 말한 내용을 그대로 이일복 과장에게 전달합니다. 메일도 통째로 같이 전달합니다. "잘 부탁해, 나는 약속이 있어서 그만 퇴근할게. 아, 그리고 밑에 애들 잘 시켜서 스터디 자료 만들어 나도 좀 공부시켜줘." "(이일복 과장) 아니, 부장님 시간 너무 촉박한거 아니에요? 저도 잘 모르는 상황인데, 뭐라도 좀 인사이트를 주셔야죠.", "(무대책 부장) 난 이일복 과장을 믿어, 다 잘될거구 내가 내일 와서 제대로 정리해줄테니까 일단 한번 키를 쥐고 해봐, 그래야 금방 성장하지. 기회를 주는거야." 이일복 과장은 사원 한명, 인턴 한명을 데리고 새벽까지 자료조사를 하고 제안서 골자를 만들어 무대책 부장에게 검토 요청을 합니다. 다음날 출근한 무대책 부장은 이일복 과장의 자료를 제대로 보지도 않은채 "어, 수고했고 일단 이대로 완결성 있게 만들어봐 모레 제출이니까 내일 오전 중에 나착해 상무님 불러서 다같이 보는걸로 하자." "(이일복 과장) 네? 저희 지금 다 제대로 스터디 안된 상황인데, 좀 구체적인 제안 전략이나 셀링 포인트 이런거 좀 제대로 논의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무대책 부장) 그니까 일단 써봐, 뭐라도 콘텐츠가 있어야 그런 얘기를 하지. 그리고 스터디 자료는 어떻게 됐어? 아니다, 잘 눈에 안들어 오니까 나한테 핵심만 얘기해봐." 이 컨설팅 회사는 '업계 최고의 전문성'을 모토로, 회사 홈페이지에 나온 인재관리 원칙은 '업계 최고의 전문가가 양질의 육성을 통해 업계 최고의 전문가를 재창출한다'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사례 C와 D는 아마도, 우리가 매일같이 부딪히는 업무 생활의 한단면일 것입니다. 성과에 매몰되어 '인간 다움'을 상실한 구성원, 반대로 '사람'은 좋으나 '무능력' 혹은 대책없이 '나태'한 채 자신의 역할/책임을 망각한 구성원.. 두 사례의 '결'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이슈는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비재무적 성공'에 대한 가치충돌 현장에서 일관된 '원칙'과 '논의', '해결'의 구조가 부재하거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기업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때로는 복잡해 보이기까지 하는 다양한 가치체계를 갖춰놓고 '좋은 문화'를 표방하며 실제 나름대로 다양한 노력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기도 합니다. 현실과의 괴리를. 중요한 것은 거창한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진짜 '문화'를 규정짓는 일상의 '작은' 가치충돌 상황에 대해서 책임있고 일관된 대답을 할 수 있는 태도와 역량을 갖추는 것입니다. '문화'는 결국 그 '디테일' 에서 잉태합니다.
기업 거버넌스 차원에서 '성공'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성공'의 '균형'을 조율해가는 디테일한 '과정'이 곧 '문화'입니다.
조직문화에 대해 다시생각(Rethink)하고 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기업 현장, 컨설팅 필드의 몇몇 지인들과 생각을 공유했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반응이 개인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일리있고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에서 실현 가능할까?.'
'당연하다.' VS.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의견이 그렇게 갈렸다는 것이 아니라 두가지 명제를 함께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응당 그리해야한다는 명제와, 불가능하다는 명제는 모순입니다. 당연한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모순적인 구도가 고착화 되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우리 사회와 기업 문화의 어려운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글은 기업 문화를 다룸에 있어, 기업의 기본을 되짚어본 이야기인 동시에 왜 기업이 응당 그리해야 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기업의 현실을 비추어보고자 했습니다. '문화'와 '성과'에 대한 오해, 겹겹이 쌓여 있는 수직적 위계(hierarchy), 축소된 권한위임, 지나치게 나뉜 업구구조.. 당연하지만은 않은 요인들이 관습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고착화되면서, 어느덧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이 메시지를 공식 컨설팅 프로세스가 아닌, 이 채널을 통해 전달 드리는 것 역시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공식 프로세스를 통해 이런 제안을 했다면, 클라이언트는 그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잘 알겠는데, 제 권한 밖입니다. 우리 부서에서 소화할 수 있는 선에서 말씀해주세요')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조직이 문화를 결코 바꿀 수 없는 이유' 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의 조직이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체념'하시겠습니까? '희망'하시겠습니까?
I walk slowly,
But I never walk backward.
-Abraham Lincol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