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를 열며.
"나는 지금 '경험에서 벗어나기'를 하고 있다네."
"하지만 선생님, 선생님은 늘 삶을 경험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모두를 경험하라고 하면서 또 벗어나라고 하는 말은 도대체 어떤 뜻이죠?"
"음.자네도 거기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군.
하지만 벗어난다고 해서. 경험이 우리를 꿰뚫고 지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은 아니야. 반대로 경험이 자네를 온전히 꿰뚫고 지나가게 해야하네.
그렇게 해야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어."
-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中
하루에도 몇번씩. 과거 여행을 합니다.
오늘도 난 자동재생으로 듣던 음악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어떤 익숙한 멜로디 덕에
그시절 그공간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비단 음악 뿐이겠습니까.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어느 순간의 비, 바람, 구름, 냄새, 사물.
주변의 모든 것이. '추억'을 잇는 문이 됩니다.
'과거'가 얼마나 끈덕진 것이냐면.
'미래'를 고민하는 순간까지
당연하다는 듯 떡하니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결정 할 때 우리는.
어김없이 과거에 겪었던 비슷한 경험을 떠올립니다.
그것에 비추어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과거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끊임없이 달라붙어
내 생각과 마음, 말과 행동에 그토록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경험이. 그런 것이라면.
찰나에 잠시잠깐 떠올리는 것이라 해서
마냥 가벼이 여길 수만은 없는. 중요한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경험과 우리는.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 걸까요?
경험은.
그것의 좋고 나쁨을 떠나
어떻게든 뗄레야 뗄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끌려다닐 수 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끔 우리의 '희망'을 섞어,
경험을 '편집'하거나 '수정'하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엔 '배제'해버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것 역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위안을 중 정도의 '변주'가 아닌 이상,
경험을 '왜곡'하거나 통째로 '버린'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서.
때때로 더 큰 상처와 아픔을 가져다 줄테니까요.
벌써 20여년이나 되어버린. 먼지 쌓인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속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나는 지금 '경험에서 벗어나기'를 하고 있다네."
"하지만 선생님, 선생님은 늘 삶을 경험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모두를 경험하라고 하면서 또 벗어나라고 하는 말은 도대체 어떤 뜻이죠?"
"음.자네도 거기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군.
하지만 벗어난다고 해서. 경험이 우리를 꿰뚫고 지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은 아니야. 반대로 경험이 자네를 온전히 꿰뚫고 지나가게 해야하네.
그렇게 해야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어."
-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中
죽음을 앞둔 모리교수는, 제자에게.
충분히 경험하되, 경험에서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경험에서 벗어난다것은.
경험을 버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저 경험이 자신을 온전히 꿰뚫고
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과거와 경험 앞에서 우리가 응당
취해야할 태도는.
경험에 '갇히기' 보다,
경험을 '버리기' 보다,
경험을 '똑바로' 보는. 것입니다.
경험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감정이라는 자욱한 뿌연 안개에
어느덧 취해, 안개가 걷히는 것을
오히려, 은연 중
두려워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 봅니다.
'이제'는 이처럼 경험을 다루는 동시에.
경험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내가 무엇을 겪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시절 나와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화해하려는 시도입니다.
경험이 스스로를 온전히 꿰뚫고 지날 수 있게.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겸허히, 그러나 용기있는 오늘을 걷고.
보다 성숙히, 그러나 진보하는 내일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가치 있는 미시의 '역사'를, '이제'.
'함께' 써내려 가보지 않으시겠는지요.
2017-04-12
"역사란, 과거과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History i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E.H.Ca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