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2017년 어떤 청년에게.
BGM | 하림, 그런너 그런나
힘이들 땐,
통장에서 삼만원을 챙깁시다.
친구에게 전화를 합시다.
밤을 향하는 어느 순간에서 만나
드르륵 곱창집의 문을 엽시다.
자리잡고 씩씩하게 외칩시다.
"아주머니, 기본 둘에 '쐬'주한병이요!"
지글지글 익어가는 양곱창과
칼칼한 연기, 쓰디쓴 쐬주 두석잔으로,
서로의 힘들었던 시간을 다독입시다
시간에 잠시 퍼어즈[pause]를 누릅시다.
그리고 그저 맛있게 먹으십시다.
같이 웃으면서 희망을 얘기 하십시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시 드르륵 문을 열면서,
퍼어즈[pause]는 풀리고, 훈훈했던 시간은
연기처럼 사라질것을.
그래서 기본 둘에, 소주 한병입니다.
구수한 냄새가 우리의 옷에 스며들 시간만큼,
처럼, 위안이 우리의 마음을 어룰만큼만.
얇아진 지갑의 쓰림이
잊혀질때면,
다시 삼만원을 찾읍시다.
친구에게 전화를 겁시다.
밤으로 넘는 어느 순간에서 만나
드르륵 곱창집의 문을 엽시다.
2008. 끝이 보일까 싶은, 시려운. 젊은 날의 겨울.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거나 혹은. 적어도.
조금은 버겁더라도
거뜬히 넘길 수 있었던 상황과 사건들이.
그땐 어찌 그리도 커 보였는지.
왜 세상을 다 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프고, 두렵고, 서럽고, 고통스러웠는지.
언젠가, 수년전 쓴 글 속.
저는 그때의 현재를 이렇게 기록해 두었더군요.
‘끝이 보일까 싶은, 시려운. 젊은 날의 겨울’
이십대 중후반 어떤 시기.
나는 겉은 애써 태연하려하면서도,
속으론. 참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부모에 대한 원망, 사회에 대한 원망,
연인에 대한 원망, 또 다른 누군가, 무형의
무엇들에 대해서까지.
하지만 가장 큰 원망의 대상은.
그렇게 남을 원망하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외풍에 금방 꺼질 것만 같은 촛불처럼
흔들리고 휘둘리는 나의 나약함이
서글프고, 부끄러웠습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내가.
텅 빈 예배당에 혼자 남아
신을 향해 소리쳐도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 혹은 ‘침묵’뿐이라 느끼는 내가.
너무 싫었습니다.
언젠가.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도 없다’
라고 쓰여진 글귀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가장 큰 나의 ‘과오’는.
스스로를 제대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저는 30대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꿈꿨던 거창한 누구도 되지 못했고.
당장 결혼해도 될 만큼 돈을 많이 모으지도 못했고.
그래서 삶의 여유를 누릴 형편은 더더욱 되지 않지만.
그러나 그간의 그 ‘몇 년’이 내게 그토록. 소중한 것은.
서른의 문턱이 내게 참 반가운 것은.
그 시간 동안 일어난 ‘부딪힘’ 속에서,
나를 믿는 방법과. 믿어서 흔들리지 않는 방법과.
흔들리지 않아 이겨내는 방법을.
어렴풋하게나마 배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불안합니다.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심지’는 더 단단하고,
굳어질 것을. 이제는 믿습니다.
그 시절. 나를 포함한 나의 사람들께
고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2012. 겨울
..미래에 대한 모든 두려움과 소중한 사람들의 궁핍에 대한 모든 염려와 고통과 실패에 대한 모든 근심을 파묻어라. 모든 몰인정하고 비통한 생각, 증오와 원한, 패배 의식, 다른 사람들과 네 자신에 대한 실망, 우울함과 의기소침 이 모든 것을 파묻어라. 그리고 새로운 삶, 되살아난 삶을 향해 나아가라.
세상이 보는 눈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모든 것을 내게 맡겨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염려하거나 두려워한다면 내가 주는 선물을 기대할 수 없느니라. 내가 그날에 필요한 지혜와 힘을 공급하리니 너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two listeners, god calling 中
2017. 여름
사진: 방배동 어느 오래된 곱창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