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과 장량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은 술에 취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한 고조가 장자방을 부린 것이 아닌 장자방이 한고조를 쓴 것이다."
장자방은 한신, 소하와 함께 한초삼걸의 한 명으로 고조 유방을 도와 항우의 초나라를 멸망히키고 천하를 통일하는데 일조한 장량이다.
단순한 창업을 넘어 그는 중국을 이천년 간 漢의 이름 아래 뭉치게 한 핵심인재였다.
삼봉은 그 일을 빗대며 조선 개국에의 역할을 그렇게 확대한 것이다. 즉 조선 건국의 주체를 이성계가 아닌 자신(+신진 사대부세력)이라고 한고조와 장량을 빌어 말한 건이다.
이런 삼봉의 자신감넘치는 행보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인 정치활동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에 의해 주살되고 만다.
반면 삼봉이 자신을 투영했던 장량은 정작 한나라 건국 후, 은인자중했다. 당시 중국의 가장 핵심지역중 하나인 제나라(지금의 산동성 일대)의 3만호를 식읍으로 삼게하자 자신이 유방과 처음 만난 유留 지역을 기념하고 싶다며 그곳만 원했다.
유방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낭만 가득한 답변이었으리라.
그 후 장량은 공신서열 62위에 책봉되어도 군소리가 없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이래도 불만이 없어?' 라는 유방의 장난기어린 책봉이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장량은 불만은 커녕 '한나라의 천하'기 계속되기 위한 여러 조언을 하며 변함없는 충성을 보였다.
장량은 평생 주인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고 주인의 천하를 지킬 계책을 평생 올렸다.
정도전과 장량.
개국의 치적을 세운 영웅들의 꾀주머니이자 왕조의 설계자들이었지만 그 말로는 크게 달랐다.
회사에서도 스스로 핵심인재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
재밌게도 대부분 실제로도 핵심인재가 맞다.
다만 창업할 생각이 없거든
거침없이 가기보다 리더의 마음을 더 헤아려봄은 어떠할까.
욕심 가득물고 거침없이 가다간 송현방 하룻밤 술 얘기가 남일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