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
회사를 다니다보면 갑자기 소리소문 없이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직급도 그리 낮지 않고 이미 임원급들과 스스럼이 없어 보인다.
보통 이 경우엔 해당 인물을 낙하산이라 부르며 가까이 지내길 꺼리게 된다.
그런데 꼭 낙하산이 안좋기만 한 것일까?
한고조 유방은 흔히 알려진 이미지와는 다르게 군사를 부리는 데에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 한신도 유방에게 십만을 지휘할 능력이 있다고 하였고(물론 그러면서 자기는 다다익선이라 말한 자뻑을 범한다.) 항우 이외에는 딱히 누군가에 지지 않았다. 아니 항우를 상대로 계속 대치를 이어나갔기 때문에 한신이 항우 걱정하지않고 전선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 유방이 천하통일 후 큰 패배를 겪는 데 바로 백등산에서 흉노에게 목숨을 구걸한 사건이다. 이후 한나라는 백여년 간 저자세로 흉노에게 저자세로 일관했으며 심지어는 흉노의 선우가 유방의 아내인 여태후를 희롱하는 일도 겪었다. 이러한 한나라의 저자세를 바꾼 것이 바로 한의 7대황제인 한무제 유철이다. 한무제 유철은 즉위 초, 무려 30만의 대군을 동원하여 흉노를 공격하는데 흉노의 군신선우에게 간파당해 별 소득없이 실패하고 만다. 결국 작전을 계획한 왕회는 책임을 지고 자살한다. 그로부터 4년 뒤, 북방의 명장이던 이광을 필두로 공손오, 공손하, 위청 등 4명의 장수가 각기 1만명을 이끌고 흉노로 원정을 떠났다. 그런데 이번에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공손하는 전쟁 내내 흉노군을 만나보지도 못했고 공손오는 1만명 중 7천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비장(飛將)이라 일컬어지던 이광은 포로로 잡혔다가 홀로 탈출할 정도였다. 그런데 거기장군 위청이 흉노의 성지였던 용성까지 쳐들어가 7백 명을 죽거나 포로로 잡았다. 숫자는 적었지만 사실상 한나라가 거둔 첫승리였다.
그런데 공을 세운 위청은 원래 군인이 아니었다. 그는 본래 한무제의 누나인 평양공주의 마부였다.(재밌게도 훗날 위청은 평양공주와 혼인한다.) 그러다 우연히 한무제가 누나인 평양공주의 집에서 노래부르던 위자부라는 여자와 눈이 맞아 후궁으로 삼게 되었는데 그녀가 바로 위청의 누이였다. 황제가 자신의 누이를 총애하여 벼슬을 얻고 공을 몰아주기 위해 억지로 전쟁에 나선 것이였는데.. 보통 이런 경우엔 폭삭 망하기 마련인데 공을 세우고 돌아왔다. 한무제의 뽑기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위청에게는 누이가 더 있었는데 이중 그의 또다른 누이인 위소아라는 여자의 아들이 또 낙하산으로 전쟁에 나서는데...
그가 바로 곽거병이다. 곽거병은 기병 8백명만을 이끌고 본대를 떠나 수백리를 진격, 흉노군 2천 이상을 죽거나 사로잡았고 흉노의 귀족들을 죽거나 사로잡는다. 이때 곽거병의 나이가 18살이었다.
이후 곽거병은 표기장군에 봉해지고 흉노를 그야말로 박살낸다.
이후 둘은 각각 대장군, 대사마가 되어 각기 5만의 기병을 데리고 고비사막을 넘어 진격하여 흉노를 사실상 절멸에 이르게하였고 곽거병은 바이칼호 유역까지 흉노 선우를 추격하여 한흉전쟁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우리역사에서도 유명한 낙하산이 한 명 있다. 45세에 고작 종6품 현감에 있던 사람이 46세에 종3품 첨사로 천거되었으나 두차례나 사간원에서 너무 승진이 빠르다고 반대하여 임명되지 못했다. 그런데 47세에 이르러 왕이 직접 나서 종6품 현감에서 종4품 군수로 발령내고 부임하기도 전에 종3품 첨사로, 또 부임하기 전에 정3품 수군절도사로 임명한다.
종6품 현감에서 불과 한달도 되지 않아 정3품까지 몇 차례를 건너뛴 낙하산인사를 왕이 직접 지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낙하산이 부임하고 일년만에 전쟁이 일어나버렸다. 적군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전선이 무너지자 모두가 걱정하였는데 이 낙하산 인사는 전쟁에서 첫 승을 거두고 그 뒤로 23번을 싸워 23번을 모두 이겼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조직원의 동의없는 낙하산 인사는 때로는 같이 일할 실무진을 고달프게 한다. 하지만 모든 낙하산 인사가 문제있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대표의 심중을 잘 헤아리고 있는 사람이나 조직의 비전을 누구보다 잘 이끌어갈 능력이 있는 낙하산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는 인사다.
이른바 코드가 맞지 않으면 능력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같이 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반면 코드가 맞아도 능력이 없다면 아부나 떨다 조직에서 커리어를 마칠 것이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투자를 받는 데에 열성을 지니고 각지에서 외부의 능력있는 인재를 삼고초려하다보니 자연스레 요새 이곳저곳 이야기를 들어보면 낙하산 인사에 대한 걱정들이 줄을 잇는다.
실무자로서 낙하산 인사를 대할 때에는 일단 능력이 우리 조직과 잘 맞아떨어질지를 살펴야한다. 어차피 감정적으로는 대표와 일정 부분 서로를 공유하는 감정이 터있을테니 그런건 둘째치고 그의 능력이 우리 조직을 위해 어떻게 쓰일 지만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뭐..낙하산이 싫다고 내가 대표를 자를 수는 없지 않은가.
낙하산,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잘 지켜보자! 그리고 성과를 위해 함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