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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 Jan 23. 2024

이어지는 우리들.

  나는 방 탈출 카페 알바생이다. 방 탈출 카페에서 일한다고 하면 두 가지 반응이 나오는데, 보통 어른들은 방 탈출 카페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방 탈출 카페?? 카페면 음료 만들고 그런거가?"

"어…. 아니요…. 음료는 안 만들고 음….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세트장 같은 곳에서 사람들 와서 노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처음 이 알바를 시작했을 때 어른들에게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애매해서 난감한 상황이 많았다. 왜 돈을 내고 방에서 탈출하는 건지, 갇혀서 대체 뭘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방 탈출을 설명하려는 숱한 시도 끝에 찾은 적절한 답변이 위의 답변이다. 사실 이쯤 되면 나도 궁금하다. 사람들은 왜 돈을 내고서 갇혀있으려는 것인가? 그리고 방 탈출에 왜 카페라는 이름이 붙은 걸까? 보드게임 카페는 정말로 음료를 제공하니 카페라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는데 방 탈출 카페에서는 음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방 탈출 카페에서 일하지만, 방을 탈출하지도 않고 음료를 만들지도 않는다. 또래들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한다. 나도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는 방 탈출 카페 알바생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으니 이해가 가는 반응이다. 이 알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방탈출 카페의 알바생들은 크게 두 가지 일을 하면 된다. 손님 응대와 테마 정리. 사실 테마 정리가 주된 임무이다. 처음에는 살짝 힘들다. 나는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자물쇠가 있는지 이 일을 하면서 처음 알았다. 숫자, 영문은 물론이고 방향 자물쇠, 8 버튼 자물쇠,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자물쇠들이 넘쳐난다. 우리는 이 자물쇠의 비밀번호와 자물쇠의 위치와 안에 들어가는 소품이 무엇인지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자물쇠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러 기상천외한 장치들의 세팅 방법, 초기화 방법들도 모두 익혀야 한다. 익숙해지면 어려운 작업은 아니지만 익숙해져도 여전히 번거로운 작업이다.

 

  번거로운 일은 사람을 더 똑똑하게 만든다. 어떻게든 일을 간소화하려는, 아니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일까. 일을 하면 할수록 우리만의 노하우가 생긴다. 이방보다 저 방을 먼저 치우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치울 수 있다거나, 매번 열쇠를 들고 다니기 귀찮으니 직원용 자물쇠를 모두 숫자 자물쇠로 바꾼다던가, 소품을 먼저 챙기고 방으로 가는 게 나중에 세팅할 때 실수할 확률이 적다거나 하는 작고 큰 노하우들이 쌓인다. 내가 처음 이 알바를 시작할 때 먼저 일하고 있는 언니 오빠들에게 들은 노하우를 새로 들어온 알바생에게 전한다. 나만의 노하우도 조금씩 더해서 전한다. 그렇게 언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를 노하우가 언니오빠에게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새로 온 알바생에게로 전해진다.


  손님들이 안에서 문제를 풀고, 여기저기 열어보고, 뒤져보는 탓에 테마 방은 자주 고장 나거나 부서지거나 망가진다. 어떤 서랍은 부서지고, 센서가 말을 안 듣고, 힘이 넘쳐나는 손님 탓에 손잡이가 아예 빠진 적도 있다. 손님이 적은 평일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보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님이 몰리는 주말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때부터 나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바쁜데 망가진 서랍까지 고칠 시간과 여유가 나에게는 없다. 무엇보다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모른다. 우리의 이런 모든 고충을 들은 너구리와 민은 더 이상 손잡이가 빠지지 않도록 보수해 두고, 서랍을 손님이 아예 열지 못하게 드릴로 박아버린다. 나는 손잡이를 지나칠 때마다, 서랍을 볼 때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하지 않는 너구리와 민을 떠올린다. 바쁘면 바쁠수록 더 많이 떠올린다. 이들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수고를 덜 수 있게 되었는지, 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얼마나 아낄 수 있게 되었는지를 생각한다.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배려를 여기에 두고 가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언니와 오빠들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고, 나도 그만두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노하우와 매장 여기저기 묻어있는 너구리와 민의 세심한 배려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새로 온 알바생들은 이 배려의 역사를 알지 못한 채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일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보고 듣기 전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면서도 자기들만의 노하우를 더하고, 새로운 배려를 더하며 매장을 지킬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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