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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 Feb 08. 2024

흘러가는,

  버스를 타고 혼자 서면으로 가면서 부산으로 내려오고 있을 너를 생각했어. 오늘은 네가 오는 날이지. 아빠가 목이 빠지게 기다린 날. 우리집 막내가 오는 날. 버스를 타고 춘해병원을 지나고, 롯데 백화점을 지나고, 엔씨 백화점을 지나며 우리가 이곳을 얼마나 많이 들락날락했을까를 떠올렸어. 엄마랑 너랑 나랑 셋이 함께 가던 곳을 언젠가부터는 둘이 다니기 시작하고 혼자서 밖을 돌아다니는 걸 싫어했던 나는 이제 아무 거리낌 없이 이곳을 돌아다녀. 그만큼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거겠지.

 

  최근 들어 가족끼리 외식하러 나간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는 똑같은 말을 해. 똑같은 말을 항상 빠지지 않고 해. "이렇게 셋이 다니니까 꼭 딸 하나밖에 없는 집 같다! 남들이 보면 딸 하나 달랑 낳아서 사는 줄 알겠지?" 엄마가 이 말을 하면 아빠가 그러게~하고 맞장구를 치고 아빠가 이 말을 하면 엄마가 맞다 맞다 하며 맞장구를 쳐. 매번 반복되는 상황이 웃겨서 너에게 이 말을 들려줬잖아. 그러니까 네가 그랬지. 언니가 스무 살 때 서울 갔을 때도 엄마 아빠는 똑같은 말을 했다고. 언니가 스무 살이고 내가 고삼일 때 집에서 뿌링클을 시켜 먹었는데 한창 맛있게 먹던 와중에 아빠가 예진이 생각이 난다며 울었다고.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 아빠는 왜 항상 저 말을 빠지지 않고 하는 걸까? 남들이 딸 하나라고 생각하던 둘이라고 생각하든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마도 저 말은 네가 많이 보고 싶다는 뜻일 거야. 예쁜 딸이 둘이나 있는데 하나만 데리고 나와서 아쉽다는 말. 먼 곳에 있는 너와도 맛있는 걸 함께 먹고 싶다는 말. 자식은 그런 건가 봐. 없으면 허전하고 자꾸 눈에 밟히고. 나는 아직 그 마음이 뭔지 잘 모르겠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어떻게 그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한두 번도 아니고 외식할 때마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마다 너의 이야기를 꺼내는 엄마 아빠를 보며 나는 그 사랑이 새삼스러워져.


  오늘도 방에서 모여 이야기하는데 아빠가 자꾸 너에게 내일 같이 붕어빵 사러 가자, 교회 근처에 새로 생긴 큰 카페가 있는데 한번 가보자, 오랜만에 덕명여중이나 데레사여고 가서 추억 얘기해 보자…. 끝도 없는 데이트 신청이 이어졌잖아. 그런 아빠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어. 너는 그저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고 아빠는 그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로 생긴 카페의 위치를 설명해 주느라 바쁘고. 정보를 전달해 주는 사람만 있고 딱히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없는 그 상황이 어찌나 웃기는지 나는 자꾸 헛웃음을 짓게 됐어. 이제 슬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너를 붙잡아서 뽀뽀해 주고 가야지! 라고 말하는 아빠를 보며 내가 막내가 아니라 언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하하 이건 좀 미안해. 하지만 어떡하겠어? 아빠 눈에 너는 아직 우리집 애기인걸. 막내는 영원한 막내인걸. 아빠는 치사하고 찌질해도 그렇게라도 받는 뽀뽀가 좋나 봐. 엄마가 옆에서 내가 해줄게! 내가 뽀뽀 해줄게! 라며 막 장난쳐도 꼭 우리가 하는 뽀뽀를 받고 싶어 하는 아빠. 어릴 때는 이렇게까지 아빠가 부탁하지 않아도 매일매일 아빠에게 뽀뽀를 해줬을 텐데. 이제는 훌쩍 커버린 딸들이 뽀뽀 이야기만 해도 질색을 하니 우리가 크는 걸 싫어하는 아빠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해.

 

  엄마 아빠가 세상의 전부였던 우리가 학교를 가고, 친구를 사귀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사랑을 하고, 그렇게 우리의 세상이 점점 확장되는 동안 엄마 아빠의 세상은 더더욱 우리로 채워졌겠지. 주는 사랑이 많은 만큼 받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잖아.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엄마 아빠가 우리에게 사랑을 주면 줄수록 우리는 자라고, 더 많은 걸 알게 되고, 결국은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나. 그게 세상의 이치이기도 해. 그리고 우리가 받은 그 사랑을 양분 삼아 이 세상을 살아가잖아. 참 불공평한 사랑이다. 그치? 하지만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도 그랬을 거고, 우리도 결국 부모가 되면 그런 사랑을 하고 있겠지. 돌려받기를 기대하지 않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우리는 내일도 일어나서 비슷한 풍경을마주할 거야. 아빠는 자꾸만 우리를 부르고. 와서 5분만 발 마사지를 해달라고 하겠지. 엄마는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아침밥을 차릴 테고, 우리는 느적거리며 아빠 옆으로 갈 거야. 이 당연하고 별거 없는 풍경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는 걸 이제는 알아. 말로 형용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사랑이 우리가 자랐던 모든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있겠지. 또 언젠가는 우리가 엄마가 되어 자식들의 관심을 요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늙는 모든 시간 속에서 또 비슷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희망 아닐까. 지나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던 모든 시간을 생각해. 또 앞으로 우리가 지나갈 시간에 대해서도. 우리는 매 순간 우리가 모르는 사랑을 등에 지고 살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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