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리는 또 싸웠는데, 사실 지나고 나면 대체 무엇 때문에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 때로는 너의 잘못, 때로는 나의 잘못. 혹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잘못. 때때로는 말 한마디에 싸움이 시작되기도 하지. 우리의 싸움은 대개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잖아. 바로 그 점이 우리를 가장 지치게 하기도 하고. 우리의 최선이 서로의 마음에 가닿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 걸까?
있잖아, 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나는 내가 제일 좋아. 아직은 내가 제일 소중해.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아.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기에 너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며칠 전에도 그랬어. 우리 또 싸웠잖아. 싸우고 화해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또 싸우고 말았지. 너랑 싸우고 나면 정말 마음이 텅텅 비어버리는 기분이야. 그런데 웃긴 건 난 그 와중에 내가 제일 걱정되는 거야. 얼마나 이기적인지. 너보다는 나를 걱정하는 나를 보며 화들짝 놀라고 말았어. 수없이 내뱉었던 사랑한다는 말은 다 어디 가고.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놨어. 으악! 엄마 사랑은 너무 어려워. 사랑이 대체 뭔데! 그게 뭔데! 하소연보다는 거의 포효에 가까운 말이었지. 엄마는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는 딱 한 마디 해. 원래 가치 있는 걸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거야. 일이든, 돈이든, 사람이든. 내 편을 들어주기를 바라고 한 말이었는데 어쩜 그리 단호한지.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 말에 대해 생각했어. 나는 일보다 돈보다 사랑이 제일 좋은데 사랑에는 어떤 노력을 들였나. 왜 좋은 것만 사랑이라고 생각했나. 사랑은 좋은 거지. 하지만 좋은 것만 불러오지는 않잖아. 널 사랑하면서 얼마나 많은 슬픔과 아픔과 두려움을 느꼈는지 몰라. 아마 그건 너도 그렇겠지. 나 자신만을 사랑할 때는 느낄 필요 없었던 아주 다양하고 모호한 감정들을 느꼈겠지. 너무나 이기적인 나 자신에게 놀라면서. 그럼에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상대에게 더 놀라면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절대 너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거야. 애초에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럼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 이해할 수 없으니까 사랑할 수도 없는 걸까. 그런데 나는 더 노력할 수는 있어. 너를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어. 사랑은 나에게 더 노력할 힘을 줘. 어떤 노래에서 사랑은 노력한다는 게 아니라는데, 그게 무슨 방구같은 소리인지. 사랑에 노력을 쏟지 않으면 대체 어디에 쏟는다는 거야.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정말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야. 하지만 나는 너라서 해. 사랑은 너를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일인가 봐. 아무리 노력해도 지치지 않는 건가 봐.
오늘 싸웠어도 내일 다시 장난치며 전화하는 우리를 보며 이런 게 사랑인가 하는 생각을 해. 너와 반복하는 싸움과 사랑과 장난 속에서 나는 매일 다시 태어나. 그래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너에게 하고 싶어.
하지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