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널 위하여

by 단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새벽을 생각한다. 그의 이름은 이산. 1923년 생이다. 새벽 4시에 눈을 뜬 산 할아버지는 새벽기도 갈 준비를 한다. 바지런히 옷을 갈아입고 교회로 향한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다 보면 종종 들개나 고라니를 마주치기도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익숙하다는 듯이 갈 길을 간다. 할아버지에게 고라니나 들개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살다 보면 더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할아버지가 새벽기도에 간 사이 손자 소망은 눈을 뜬다. 할아버지는 손자 믿음, 소망, 사랑이와 함께 산다. 소망은 할아버지의 온기가 남아있는 침대에 올라가 다시 잠을 청한다. 할아버지의 침대는 유독 따듯하다. 보들보들한 극세사 이불 사이로 풍겨오는 할아버지의 냄새가 좋다. 깜깜한 어둠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동안 할아버지는 기도하고 믿음소망사랑은 단잠을 잔다.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옷을 갈아입고 마을 한 바퀴를 돌며 산책하러 간다. 그의 걸음은 빠르지 않지만 단단하다. 오랜 시간의 산책으로 다져진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종아리에 부담이 가지 않게 걷는다. 그렇게 걸으면 아무리 오래 걸어도 종아리가 아프지 않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침 7시이다. 뉴스와 인간극장을 보며 아침 식사를 시작한다. 아침 메뉴는 언제나 곰탕 혹은 추어탕이다. 이가 좋지 않은 할아버지는 밥을 항상 질게 한다. 그 덕에 믿음소망사랑도 매일 질은 밥을 먹어야 했다. 어린 시절 질은 밥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소망은 이제 고슬고슬한 밥이 좋다. 조금 덜 익어도 괜찮다. 질은 밥보다는 그게 낫다.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는 토마토를 드신다. 그리고 요구르트도 빼먹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소망은 나에게 알려준다.

"냉장고에는 항상 요구르트가 가득했어. 할아버지가 매일 드셨거든. 우리는 항상 그거 얼려서 요구르트 뒤를잘라서 갉아 먹었어. 그렇게 먹으면 진짜 맛있는 거 알지??"


소망이 들려주는 할아버지 이야기 중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매일, 항상, 언제나. 매일 새벽기도를 가셨어. 항상 추어탕이나 곰국을 드셨어. 언제나 요구르트가 가득했어. 소망의 기억 속 할아버지는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하루를 살아 내신다. 아주 부지런하게. 어느 하나도 빼먹지 않고. 매일 저녁 6시에는 6시 내 고향을 통해 할아버지의 고향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고향도 다녀오시고, 9시에는 9시 뉴스를 보며 세상 곳곳에 일어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신다. 이렇게 매일 성실하게 반복되는 하루 중 가장 성실하게 하신 일은 바로 기도이다. 할아버지는 아침을 먹고 밭을 가꾼 후에 점심 먹기 전까지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기도를 하신다. 소망은 지금도 할아버지가 기도하시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중얼중얼 알아들을 듯 알아들을 수 없었던 그 목소리가. 소망은 할아버지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형과 함께 학교를 가기 전에도, 학교를 다녀와서도 할아버지는 언제나 기도를 하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아침 먹기 전에 기도하고 점심 먹기 전에 기도하고 저녁 먹기 전에 또 기도한다. 중간중간 성경 읽기도 놓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산 할아버지의 오랫동안 반복된 기도로부터.


그 오랜 기도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늘에 닿은 기도는 땅 어느 곳으로 떨어졌을까. 세 남매의 모든 걸음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보고 듣는 모든 곳에,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할아버지의 오랜 기도가 열매를 맺어 지금의 세 남매를 만들었을 것이다. 소망이 그렇게 고백하듯이. 소망이 삶의 순간순간에 할아버지의 기도를 느끼듯이.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순간에 나는 산 할아버지의 기도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듣고 자란 소망을 오래 바라보며 나를 이루는 것이 나만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그럼 조금 용기가 난다.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기도에 기대어 무엇이든 사랑할 용기를 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성공으로부터 한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