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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ld traveler Nina Oct 07. 2020

부부의 언어

그들의 언어에는 숨겨진 뜻이 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점심을 먹던 중 작은 언쟁이 발생했다.     


오늘의 주제는 인도어 골프 연습장연간 회원권의 등록 여부였다. 


골프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아빠는 인도어 골프 연습장에서 매일 두 시간 이상을 국가대표 선발을 앞둔 운동선수처럼 맹렬히 연습한다. 만 65세 이상인 아빠는 경로우대라는 우리나라의 제도가 무색할 정도로 열심이다. 아마 싱글 진입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러한 아빠의 열성에 힘입어 엄마도 함께 골프 연습을 함께 해오고 있다.      


부모님 이야기로는 60대에 진입한 부부가 골프를 함께 치는 일은 굉장히 드물고, 부부끼리 짝을 맞추어 두 부부가 골프를 함께 치는 일은 정말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하였다. 골프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장비를 갖추는 데도 돈이 들지만, 매번 인당 몇십 만원씩인 라운딩을 간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꽤 부담스러운 운동임이 틀림없다. 그만큼 재미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빠가 현재 다니고 있는 골프 연습장은 연간 회원권이 150만 원 정도 하는데, 1인 단독으로 등록하면 140만 원, 2인이 함께 등록하면 120만 원에 등록을 할 수 있다. 그러니 120만 원에 등록하는 기회와 엄마와 함께 연습하고 싶은 아빠는 이 할인가를 알자마자 엄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일 가지는 않을 것 같으니 쿠폰으로 끊겠다는 엄마의 반론도 일리는 있었다. 


물론 그녀의 반대는 단지 가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평소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은 엄마는 눈 뜬 채로 밤을 지새운 날이면 다음날 두 배로 피곤함을 느끼기 일쑤였기 때문에 전날의 숙면 여부가 다음날의 컨디션을 결정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에는 골프 연습 가기 힘들겠다고 생각한 엄마는 자주 가야 이득인 연간 무제한 회원권이 마뜩잖게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여러 가지로 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 데 생활비로 식료품이 아닌 당신의 골프 연습장 연간 회원권을 끊는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평소 절약 정신이 투철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물건을 쟁취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엄마와 좋아하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아빠의 가치관 차이로 평소에도 걸핏하면 부딪히기 일쑤였다. 사실 두 분 모두 깊이 따지고 보면 잘살아보잔 마음인 건 매한가지이지만, 양쪽의 입장 차가 뚜렷하고 한 치의 양보가 없어 중간에 조율하는 중재자 입장에서는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며칠 뒤, 아빠가 골프 연습 후 연간 회원권을 두 명 등록했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여보, 이거 내가 가족 생활비 계좌 말고 내 개인 계좌에서 결제했으니 걱정하지 마. 

내가 당신 연간 회원권 생활비로 결제하면 부담스러워하고 고민할 거 같아서 그냥 했어.”     

아빠의 얼굴에는 첫 월급봉투를 가져다주는 마냥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 서려 있었다.      


“당신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했데? 이제 맨날 당신이 골프 연습하러 가자고 떼쓰겠네?”

표현하는 걸 어색하게 생각해 내놓은 무심한 말과는 달리 엄마의 얼굴엔 웃음이 만연했다.    

  

“아빠가 살기 참 *폭폭하다. 내 개인 계좌로 결제도 해줬는데 이렇게 엄마가 생색을 낸다.” 


“내가 언제 당신 보고 개인 계좌로 등록해달라고 했어? 당신이 나랑 가고 싶으니까 한 거지! 

 솔직히 말해봐, 당신 내가 생활비 계좌에서 등록하면 안 할 거 같아서 당신 카드로 한 거지? 호호호”


“뭐야~~~ 아빠가 엄마랑 같이 다니고 싶어서 결제해 준 거네!!

 근데 결제도 해주고 같이 가자고 졸라야 하고 아빠 신세가 참 처량하다. 하하하”


“ 자기 팔자지, 뭐!! 호호호(엄마의 웃음소리)”     




엄마, 아빠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서로를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는 소리만 들어서는 알 수 없는 숨겨진 속뜻이 있는 것이다. 

우리 집의 재정경제부 장관인 엄마는 가정의 형편에 자신의 골프 연간 회원권이 누가 될까 두려운 것이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아빠는 엄마가 본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돈이 좀 들어도 괜찮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중간에서 어떻게 중재를 해줘야 하나 하다가 문득 부부의 사랑이 느껴서 나도 모르게 싱긋 미소가 흘렀다. 


무릇, 행복이란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온다.     






*폭폭하다: [형용사] 몹시 상하거나 불끈불끈 화가 치미는 듯하다. 전북 지방의 방언.

                 속상해서 가슴이 답답할 때 쓰는 말.

*제목 사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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