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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ld traveler Nina Jul 12. 2020

지금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어야 했다

완벽할 것만 같았던 나의 세계일주 실패기

2020년 1월 31일,

남들이 새해 목표를 세우거나 또는

재점검해 보는 그 시점


나는 10년이 넘게 다닌 첫 직장을 퇴사했다.

퇴사 목표는 나름 명확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나만의 버킷 리스트, 1년간 나 홀로 세계일주.



세계 어딘가에 내 발자취를 남기는 건 언제나 설렌다 © kelsoknight, 출처 Unsplash



‘그만두어야겠다’라는 생각은 몇 년 전부터 하고 있었음에도 그걸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내 앞에 닥칠 여러 가지 차가운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했다. 당장 매달 따박 따박 통장에 찍히던 많지는 않지만 날 먹여 살리던 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출 것이며, 퇴사 후 1년간 여행을 다녀와서의 나의 이후 커리어에 대해서도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수십 번을 다시 생각해보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지만 결론은 같았다. 여러 날 동안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이런저런 생각에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고 일을 하는 내내 온갖 잡생각들이 떠올랐다. 모든 퇴사자들이 이렇게까지 힘든 걸까 싶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건 부모님이었다. 결혼도 안 한 막내딸이 10년간 잘만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운다고 하니 많이 놀라셨다. 이직이 아니라 퇴사 후 여행을 한다니 더욱더 반대하셨다. 당연했다.



자식의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 © thiiagocerqueira, 출처 Unsplash


어느 날 저녁,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왜 이렇게 하고 싶은 지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자식의 안정적인 미래를 원하는 부모님 앞에서 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문득 나도 모르게 서러움에 복받쳐 내 얼굴에는 장맛비가 내렸다.


하지만 이미 마음먹은 자를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결국 그날 이후로 퇴사하기로 결심하고 가족들을 차츰 설득해 나갔고, 회사에도 드디어 사직 의사를 밝혔다.

1, 2년 잠깐 다닌 회사가 아닌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해 10년 이상을 다닌 나의 첫 직장이기 때문에 그들과 나는 애증의 관계였다. 회사도 나를 붙잡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붙잡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나의 미래를 걱정하며 애정 어린 조언과 세상 살아가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가며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좋기도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 같았다.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니 날아갈 거 같았다. 

그쯤이었다.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병한 것은. 한국의 어느 누구도 감염되지 않았고 인접국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세계 일주를 떠나기 전에는 꼭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었다.

복잡한 아시아나 세계일주 항공권 최종 루트를 계속 수정하느라 바빴고, 떠나기 전에 황열병, 장티푸스 등의 예방 접종이라던지, 퇴사하고 떠나기 전에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다. 정신이 없었다.



떠나는 길은 언제나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한다. © quadratmedia, 출처 Unsplash



러시아 블라디 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동유럽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던 나는 매일 횡단 열차 기차 예매 홈페이지와 스카이스캐너에서 최저가 블라디 보스톡 항공권을 검색하며 설레고 즐거웠다가, 매일 늘어나는 코로나 환자의 규모를 뉴스로 접할 때마다 우울했다. 마치 조울증에 걸린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천지 교인들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규모 감염사태가 발생했고, 코로나 19 사태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2월 중순 국내 확진자만 100명이 넘고 세계로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것을 목도하고는 그냥 떠날까, 말까를 수백 번을 고민하다가 여행을 가려는 욕심을 당분간은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코로나는 전 세계에 소리 없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가 없어졌고, 이제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COVID19 공포에 전세계는 패닉상태였다. © claybanks, 출처 Unsplash
지금은 지구인이라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 northwoodn, 출처 Unsplash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만 갔다.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했던 나의 첫 세계일주는 완벽히 실패했다.


외국인 여행자로 타국에서 아무도 모르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끙끙 앓다가 죽고 싶지는 않았고, 동양 여자라는 이유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흉으로 취급받고 싶지도 않았다.


완벽할 줄만 알았던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난데없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발목 잡혔다. 영화 같은 재난은 이미 내 앞에 펼쳐졌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재앙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았으며 속수무책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나는 원래의 계획과 목표를 유연하게 수정해야 했다.




중국인은 '위기'를 두 글자로 쓴다. 첫 글자는 '위험'이고, 둘째는 '기회'의 의미다.위기 속에서는 위험을 위험을 경계하되, 기회가 있음을 명심하라.
- John F. Kennedy -


코로나 위기 속에서 세계일주라는 발칙한 도전은

잠시 연기되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를 알아 가는 기회로 삼고

새로운 것들에 한번 도전해 볼까?



사진찍기도 그 중에 하나^^ © celal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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