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의 첫 문장은 ‘고통’이었다.

불안의 기원

by 정원



기억이란 걸 하기 시작한 아주 어린 순간부터

내 생은 온통 폭력이라는 이름의

얼룩으로 가득했다.


걸음마 다음으로 학습한 것은, 고통이었다.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아야 할 어린아이는

태어나며 터뜨린 울음을 꽤 오래도록

이어가야만 했고,

그다음으로는

일그러진 얼굴을 숨기는 법을 배워야 했다.


웃음, 행복, 사랑—

그런 단어는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유일한 미스터리는

어린 시절 사진 속의 아이가

왜 그렇게도 밝게 웃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일 뿐이다.




12월의 어느 겨울날,

한 아이가 태어났다.


태어날 그 순간만큼은,

정말 축복받으며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기를 바란다.


아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부쩍 자라

네 살이 되었다.


그즈음,

어린이집에 갑자기 나타난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살던 동네를 떠나 아주 멀리 이사를 간다.


엄마를 따라 도착한 그 집에는

낯선 남자와 낯선 향이 있었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그 향은

코로 스며들어 폐를 감쌌고,

그 순간부터 나는

내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엄마의 말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지만,

단 하나만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빠라고 불러.”


낯선 아저씨에서

‘아저씨’라는 호칭조차 벗겨질 만큼

나에겐 불가능한 말이었다.


“아빠”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래서 나를 미워했을까.


나의 오랜 불안의 근원은

어쩌면 바로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오래도록 불안했다.
불안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저때부터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어린 나는
왜 그리도 일찍
울음보다 웃음을 먼저 학습해야 했을까.

살아가는 나는 내내,
불안을 숨기기 위해
더 자주, 더 크게 웃곤 했다.

늘 죽고 싶단 말을 달고 살던 나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오래도록
살고 싶었나 보다.





기억 속의 나.
너무 밝아, 낯설고 미안했던 그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