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끔찍했던 악몽의 시작은 태권도에서부터.

한 아이의 세계가 부서지던 날

by 정원



* 이 글에는 트라우마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기억은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이 글이 아주 조금이라도 불편하시거나 아픔을 자극한다면 읽기를 멈춰주세요.


지나온 시간이기에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안전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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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허약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엄마는 나를 태권도장에 보내었다. 그럼에도 자주 아팠던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일까,

첫 기억이 새로운 집이나 유치원이 아닌

태권도장인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나는, 태권도에 가는 시간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좋아했다. 함께 운동하는 장난꾸러기 친구들이 좋았고, 엄하지만 다정한 사범님과 매일 보는 관장님이 포근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몸도 약하고 유난히 말 수가 적던 나는,

활기차게 뛰어노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태권도장 한 구석에 웅크린 고양이처럼 앉아있던 때가 잦았다.

관장님은 그런 내게 다가와 많은 시간을 보내주셨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자 말 수가 없던 나도 관장님 앞에선 수다쟁이처럼 변해갔고, 몇 년을 같이 살아도 낯선 아저씨보다 익숙하고 편한 존재로 여겨졌다.

도장을 오갈 땐 늘 사범님께서 운전해 주시는 차량을 타고 다녔는데, 어느 날은 사범님께서 하원하는 다른 아이들만 데리고 차량 운행을 나가셨다.


“동작이 조금 부족해서,

관장님께서 개별 지도를 해주신대.”


사범님의 말에 어리둥절했지만, 곧 보인 관장님의 모습에 안정감을 느꼈다. 익숙한 공간, 좋아하던 관장님,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방금까지 우렁찬 기합 소리로 가득 찼던 태권도장에는 어느새 정적만이 가득했다. 크고 텅 빈 태권도장에 덩그러니 남겨진 관장님과 나, 처음으로 관장님이 어렵게 느껴졌다.


관장님은 얼어붙은 내 손을 꼭 잡고 괜찮다는 듯

관장실로 이끄셨다.

“아까 배운 물구나무서기, 다시 해보자.”

낑낑대며 다시 시도했지만,

역시나 잘 되지 않고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속으로는 친구들도 다 잘 못했는데

왜 나만 남기셨을까 의아하긴 했지만,

다음번엔 ㅇㅇ이를 시킬 거라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물구나무서기는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켜만 보시던 관장님의 손길이

이윽고 내 몸에 닿기 시작했다.


발목에서 허벅지로, 허리로.

몸에 닿은 손길에는 점점 더 거침이 없어졌고,

내 몸 위를 사정없이 헤집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관장님은 물구나무서기를 더 잘하려면 하의를 벗어야 한다며, 내 바지를 직접 끌어내렸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른의 말은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렇게, 벌거벗은 채로

나는 다시 물구나무를 섰다.


살결 위로 닿는 손길이 너무 뜨거워,

마음이 일렁였다. 겁이 났다.


“이번엔 한 번에 못서면 벌을 줄 거야”


관장님의 말에 나는 숨을 꾹 참았다.

두 다리를 꼿꼿이 세우려 애썼지만,

중심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그때, 내 허벅지를 감싸 안은 팔.

등 뒤에서 느껴진 무게감.

관장님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숫자 열까지 세.”


“하나… 둘… 셋… 넷…”


그 순간,

낯선 한기가 내 등을 타고 흘렀다.

곧이어 찾아온 통증에,

나는 숫자를 잇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몸이 무언가에 꿰뚫린 듯, 아프고 또 아팠다.


말을 하면, 비명을 지르면,

더 큰 벌이 주어질까 봐

나는 팔을 물어 입을 틀어막았다.


설명할 수 없는 공포의 시간이 지난 후,

관장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물로 얼룩진 내 얼굴과 몸을 닦고선 바지를 입혀주었다.


“네가 잘못해서, 관장님이 벌을 준 거야.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지?”

그제야 나는 숨을 내쉬었다.


관장실을 나오며

눈앞에 펼쳐진 도장을 빙 둘러보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좋아했던 이 공간이 낯설고 미웠다.


나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저녁 엄마가 내 몸을 씻겨주던 중,

붉게 부어오른 아래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지 똑바로 말해.”

엄마의 분노는, 예상과 달리 나를 향했다.


나는 겁에 질린 채,

태권도장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엄마는 말없이 전화를 걸었다.

그 한 통의 전화로 도장에 다시 나갈 일은 없어졌다.



그날 이후 검은손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저는 아동기부터 성폭력을 겪어온 생존자이며,
제도 밖에서 자립을 시작해야 했던 청년입니다.

이 글은, 그런 제 삶의 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이 고장 난 세계 위에서
언젠가 탱고를 추길 바라며—
매일, 살아내는 중입니다.

지금도,
이 이상하리만치 맑은 하늘 아래에 서서
어딘가로 건너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길의 끝에서,
조금은 덜 아픈 내가
나를 기다려주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