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자주 밤을 닮을 때

문장의 완성, 삶을 견디는 자리

by 정원


오늘은 이 노래와 함께 하루를 열어본다.
모브닝 – 「낙화」



“무엇을 주저하는가 무너지지 말아라
/ 봄이 돌아오듯 희망을 다시 피울 수 있게”


#1. 공허가 먼저 깨어난 아침



오늘은 이상하게 더 일찍 깼다.

늦게 잔 날일수록 더 먼저 눈을 뜨게 되는 건 왜일까.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밀린 집안일을 마치고

샐러드도 넉넉히 만들어 냉장고를 채워두었다.


영양을 보충할 식량과,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은 마련되었지만—

정작 나는 텅 비어버린 기분이다.


수면의 질이 하루를 좌우한다는 말,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잠이 없어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다.

오늘 아침, 그 모든 말들이

가볍지 않게 다가왔다.





#2. 쓸수록 비어가는 게, 당연한 거지



요즘의 나는,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는 와중에도

매일 3~4시간씩 글을 쓴다.


누군가 “쓰는 삶이 좋냐”라고 물으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문장을 써낼수록,

마음은 더 텅 비어버린다.

깊은 층을 파고들수록,

그 안이 얼마나 오래 비어 있었는지를

점점 더 명확히 알아가기 때문일까.


한때는 믿었다.

계속해서 쓰다 보면

언젠가는 그 공허가 조금씩 메워질 거라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쓰는 일은

상처를 빠르게 아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벌어진다.

더 깊어진다.

그리고 그 깊이 속에서

나는 견디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3. 씩씩하게, 솔직해져 보겠습니다



쓴다는 일은, 씩씩한 척이다.

무너지지 않은 얼굴로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마음을

문장이라는 그릇에 조심스레 담는 일.


매번 똑같은 말 같지만

사실은 매일 조금씩 다르게 아프고,

조금씩 더 무너지며,

그걸 애써 모른 척 한 채로 써 내려간다.


사실은 너무 힘든데,

글 속에선 “조금 힘들었다”라고 줄여 말하고,

사실은 울음을 겨우 그쳤는데,

글에선 “괜찮아졌다”라고 써버린다.


누구보다도 연약해서

글을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씩씩한 척, 살아 있는 척,

무뎌진 척, 괜찮은 척—


그렇게

‘척’으로 이어 붙인 문장들이

지금의 나를 간신히 떠받친다.


수많은 단어들 사이를

유영하고, 낚아채며

오늘도 쓴다.


매일, 내일은

‘진짜’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4. 죽고 싶단 말 내뱉지 않기, 1일 차



수없이 말하고 싶었던 오늘이었다.

그 말 하나로 마음의 무게를 덜 수 있다면,

수십 번은 더 내뱉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끝내 삼켰다.

입 밖으로 뱉는 순간,

‘죽음’이라는 단어는 현실에 더 가까워질 테니까.

나는 그 고비를 넘어섰다.


울컥하는 순간들,

숨이 막히는 오후,

고개 숙인 채 혼자 견뎌낸 침묵들.


그 모든 고비를 지나,

오늘 나는

부정의 언어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죽고 싶단 말 내뱉지 않기, 1일 차.

나의 작은 승리.


그리고,

무너진 순간마다 기특했던

오늘의 기록.





#5. 삶이라는 이름의 업무일지



직장에서 나의 위치는 ‘최전선’에 있지만,

나의 자리는 언제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누군가가 부르면

언제든 곧바로 튀어나올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다.

그럴 수 없는 이유를 곰곰이 돌아보면,

결국 모든 것을 돌아보아야 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많은 말을 듣고,

그보다 더 많은 감정을 받아내고,

단순한 응대가 아닌,

지속 가능한 장기전을 펼쳐야 한다.


이 일은 단발성 반응이 아니라

관계의 균형을 세우는 일이고,

작은 서비스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존중’을 설계하는 일이다.


일을 삶에 빗대어 보면,

비슷한 점들이 많다.


둘 다 매뉴얼은 없고,

무수한 변수를 감당해야 하며,

때로는 감정까지 삼켜야만 지속할 수 있다.


삶이 그렇듯,

일 또한 한 사람의 무게로는

감당하기 벅찰 때가 많다.

그럴 땐 잠시 멈춰도 된다는 말보다,

“그래도 계속 가야 한다”는 말이 먼저 들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는 말 대신

‘일한다’는 말로 하루를 버틴다.

출근이 곧 생존이고,

감정노동이 곧 관계의 연습이니까.


삶과 일이 닮았다는 말은,

어쩌면 지금 내 삶이

너무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삶이라는 이름의 업무일지를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순간,

덜컹이는 버스에 온몸을 맡긴 채

흘리듯 써 내려가고 있나 보다.





#6. 나의 밤은 유난히 길다.



나의 하루는

늘 남들보다 길다.

특히나, 밤이라는 시간이.


어둠을 타고나서 그런가.

평생 어둠 속을 헤엄치며

겨우 살아온 나는

아직까지도 밤이 길다.

어두운 날이 잦다.


그 긴 시간 동안,

주로 하는 특별한 일은 없다.

그저 하루를 조용히 돌아보고,

잔잔한 음악을 듣고,

쓰고, 또 쓴다.


남들은 잠들었을 시간에

나는 겨우 나와 마주한다.

불 꺼진 방 안에서

하루치의 감정을 하나씩 건져 올리고,

어둠을 조금씩 달래 본다.


말을 아껴둔 마음이

문장으로 조금씩 흘러나올 때,

나는 오늘도 나를 놓지 않았다는 걸

조금은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의 밤은,

긴 어둠 끝에 도착한

가장 솔직한 나로 완성된다.






#7. 불안은, 이유 없이 오지 않았다



출근 전의 짧은 여유시간 동안에,

사건 기록을 들여다볼 일이 있었다.


딱히 무언가를 깊이 들여다본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마음 한편이 불편하고,

이유 없이 불안했다.


왜 그랬을까—

돌아보니, 그 때문이었다.

기억을 건드린 조각 하나,

완전히 덮이지 않은 장면 하나가

아무 말 없이 하루를 흔들고 있었던 거다.


내가 불안한 이유는 늘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더 고립되고, 더 버거워진다.


하지만 오늘은

‘괜스레’ 불편했던 하루가,

결국 이유 없는 건 아니었다는 것만으로

조금은 나를 이해해 주기로 했다.


이제 막 시작된 사건과,

드러나기 시작한 고통의 형상 앞에서

쫄지 말자.

이번엔, 당당해지자.


여전히 어둠이 우세를 점한 것 같아도—

결국, 빛은 모든 것을 품을 것이다.





#8. 내가 가진 이름 때문이었다



인생이 왜 이리도 고된 것인지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켜켜이 쌓인 고통 앞에서

나는 같은 질문을 자꾸 반복한다.


“왜 나여야 했을까.”

“언제쯤 끝이 날까.”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걸까.”


그리고,

그 질문을 더 깊어지게 만든 건

어쩌면 내가 가진 이름 때문이었다.


‘생존자’

‘자립청년’


살아남은 사람,

스스로 서야만 하는 사람.


이름은 나를 설명하는 줄 알았는데,

점점 나를 고립시키는 말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희망의 표식일지 몰라도,

내겐 살아남았다는 책임이 되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 이름이 자랑이 아니라

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온전히 부정할 수 없다.

왜냐면,

그 모든 무게를 안고서라도—

나는 여전히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름들을 선택해서,

또 다른 아픔을 만나러 나선다.






#9. 다시 살 수 있는 사람, 다시 쓸 수 있는 사람



나만이 가진 강점이 하나 있다.

그건,

무한한 시간을 지녔다는 것.


지나간 날들에 매여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나는

끊임없이 과거를 살아내며

살고, 또 살고, 또 살아내는 중이다.


아마도

생존자들이라면

혹은 긴 밤을 지나는 사람들이라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언제든 과거로 미끄러지고,

그 속에서 다시 몸을 일으켜

오늘로 돌아온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처음부터 다시 살아간다.


그리고 그만큼,

쓸 수 있다.

한 번도 끝나지 않은 감정들을

다시 꺼내고,

다시 바라보고,

다시 쓰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건 아마도—

버텨왔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이자,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장 분명한 가능성이다.





#10. 그리울 수 없는 사람의 밤



비가 오려는 밤이었다.

귀갓길은 눅눅했고,

보도블록 틈 사이로 바퀴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나는 그 작은 생명체들 앞에서

얼어붙은 듯 한참을 서 있었다.

무섭고, 어두웠고,

그 순간의 나는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 채 혼자였다.


결국,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고

조용히 숨을 돌린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낸 것이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나는 그리워할 얼굴이 없다.

보고 싶은 이름도,

돌아갈 자리가 되어주는 사람도 없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겐 온기지만,

나에겐 오래전 사라진 풍경이고,

다신 울리지 않는 벨소리 같은 것이다.


그래서

무서운 밤길도,

서러운 침묵도,

결국 나 혼자 지나와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도착했고,

지금 이 밤,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울 수 없는 사람의 밤을,

이렇게 또 살아냈다.


언젠가—

그리워할 사람,

딱 한 사람쯤은

조심스레 품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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